400만원만 부담하면 나머지를 보험사가 떠안는 현행 약관에 비해 가해자의 책임이 훨씬 무거워지는 구조다.
작년 11월 전북 전주에서 운전자 A씨는 혈중 알콜농도 0.152% 만취상태에서 운전을 하다 좌회전 차선에서 신호대기 중이던 차량을 추돌했다.
피해자는 자동차보험 상해 '8급'에 해당하는 '경상'을 입고 치료를 받았으며, 차량도 일부 부서졌다. 간단한 골절상과 수술이 필요 없는 외상이 8급에 해당한다.
보험사는 피해자의 부상에 대한 보상, 즉 대인(對人) 보상 900만원과 차량 파손에 대한 보상, 즉 대물(對物) 보상 280만원을 합쳐 총 1천180만원을 지급했다.
현 약관에 따라 가해자 A씨는 대인(對人) 부담금 한도인 300만원과 대물 부담금 한도 100만원을 합쳐 총 400만원을 부담했다.
나머지 780만원을 보험사가 떠안았다.
새 표준약관을 적용하면 A씨는 8급 상해에 대한 의무보험 영역(대인1) 보상금 300만원과 나머지 임의보험 영역(대인2) 보상금 600만원 전액을 합쳐 총 900만원 전부를 부담해야 한다.
여기에다 대물 보험금 280만원은 의무보험 보장 한도인 2천만원 이하이므로 부담 한도인 100만원을 내고 나머지 180만원을 보험사가 보장한다.
따라서 새 약관을 적용할 때 A씨의 부담은 총 1천만원으로 현행 약관의 2.5배가 된다.
◇ "8급이하 경상이면 음주운전자가 대인 보험금 전액 부담해야 하는 구조"
인대가 늘어나는 등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12급 경상 사고라도 대인 보상금이 300만원이 넘어가게 되면 가해 운전자가 내는 부담금은 수백만원이 늘어날 수 있다.
예를 들어 뺑소니 사고 피해자가 12급 경상을 입고 500만원의 보험금을 받아갔다면 현행 약관에서는 가해자가 부담금 상한액인 300만원만 부담하고 나머지 200만원은 보험사의 몫이다.
12급 상해는 인대가 늘어나거나 타박상이 생기는 가벼운 부상에 해당한다.
새 약관을 적용하면 가해자가 대인1 영역에서 120만원을 내고, 나머지 임의보험 영역인 대인2 영역의 380만원도 전액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므로 500만원 전액을 물어줘야 한다.
보험사는 대인 보상금을 전혀 부담하지 않는다.
업계 관계자는 "단순하게 보면 8급 이하 경상이라면 대체로 대인 보험금 전액을 가해자가 내게 되는 구조로 바뀌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음주·뺑소니 사고에 따른 보험금 부담이 줄어들게 되면 다른 가입자의 보험료를 내릴 여력이 생긴다.
전날 당국이 다음달부터 시행되는 새 표준약관을 발표하면서 업계의 보험금 지급이 연간 약 700억원 줄어 보험료를 '0.5% 낮추는 요인'이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표준약관 개정에 따라 앞으로 일반 가입자의 보험료가 내려가지는 않는다.
올해 2월 보험료 인상 때 음주·뺑소니 사고 부담금 강화에 따른 효과가 이미 반영됐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당국이 이러한 표준약관 개정 방향을 보험료 인상률 결정에 반영하라는 의견을 제시해 올해 초 인상률이 낮아진 것"이라며 "이번 개정에 따른 추가 보험료 인하 계획은 없다"고 설명했다.
다른 관계자도 "2월 보험료 인상 때 당국이 각사의 계획보다 인상률을 0.6%P가량 낮추라는 가이드라인을 업계에 비공식으로 제시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