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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酒먹방] 명인의 집념으로 되살아난 전주 이강주

입력 2021-06-18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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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인의 집념으로 되살아난 전주 이강주
조정형 명인이 이강주 증류 과정을 시연하고 있다. [전주 이강주 제공]

배 이(梨)·생강 강(薑)·술 주(酒).
'이강주'는 이름 그대로 배와 생강을 넣어 숙성시킨 전통주다. 백미와 누룩으로 빚은 약주를 증류한 뒤 배, 생강, 울금, 계피와 꿀을 넣어 숙성시킨다.
개성 넘치는 재료들이 한데 어우러져 내는 맛과 향은 알싸하면서도 부드럽다.



배의 청량한 맛과 생강의 톡 쏘는 향, 매우면서도 달콤한 계피의 독특한 향취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이강주는 '고아내려 만든다'라는 의미로 이강고(梨薑膏)라고도 불렸다.
조선 시대부터 상류층에서 즐겨 마셨던 고급술로, 다양한 문헌에서 그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조선 순조 때 문신 이해응은 '계산기정'에서 조선 최고의 술 중 하나로 이강주를 추천했고, '동국세시기'와 '경도잡지' 등에도 우리나라 5대 명주로 이강주가 등장한다.
육당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이강주를 죽력고, 감홍로와 함께 조선 3대 명주로 꼽았다.
조선 시대 대표적인 가면극인 봉산탈춤에도 이강주가 등장한다.

조선 3대 명주로 꼽힐 만큼 유명했던 이강주는 그러나 일제강점기 가양주 말살 정책으로 '밀주'로 전락했다.
해방 이후에도 쌀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순곡주 생산이 금지되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 갔다.
이렇게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이강주를 되살린 사람이 조정형 명인(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6호)이다.
올해 여든 한살인 조 명인이 주류업계에 입문한 것은 1964년. 전북대학교 농화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졸업과 동시에 삼학소주에 영입된 이래 보배소주, 한일소주, 백화양조 등을 돌며 25년간 주류회사 공장장으로 일했다.
하지만 희석식 소주에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일까? 굵직굵직한 회사에서 술을 만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라져가는 전통주에 매달렸다.



'전통주'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 전국의 도서관을 뒤져 관련 자료를 수집했다.
잘 나가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전국을 돌며 '밀주'라고 불리던 술을 빚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가 제법을 확인하고 자료화하기도 했다.
"집안에서 반대가 심했지. 아버지는 나를 미친놈이라고 했어. 전통주를 하겠다며 멀쩡한 회사에 사표를 내고 집까지 팔아먹었으니. 허허."
그러다 오전에만 근무하고 오후에는 연구에 매진해도 좋다는 제안을 받고 제주도 한일소주에 다시 취업했다. 이때 실험 삼아 빚은 전통주가 200여 종에 달한다고 한다.
수년간 수집하고 정리한 자료를 바탕으로 1991년에는 '다시 찾아야 할 우리술'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미친놈'처럼 전통주에 매달렸던 드라마틱한 조 명인의 젊은 시절 이야기는 1993년 TV 드라마로 만들어져 방영되기도 했다.



조 명인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1987년이다.
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뒤늦게 전통주 살리기에 나선 정부는 이강주, 문배주, 안동소주 등 주요 전통주 제조법을 보유한 이들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생산과 판매는 이보다 3년 뒤인 1990년에야 허용됐다.
조 명인이 전주에 양조장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이강주 생산에 나선 것도 이때부터다.
오랜 세월 전통주 연구에 매달렸던 조 명인이 수많은 술 가운데 이강주를 선택한 것은 이 술이 집안 대대로 빚어온 가양주였기 때문이다.
한양에 살던 조 명인의 6대조가 전주에 내려와 부사(군수)를 하면서 이강주를 빚어 손님을 대접하곤 했다고 한다.
집안 대대로 빚어 온 술이지만, 복원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아버지, 어머니의 기억에만 있을 뿐, 데이터로 남아 있는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배, 생강, 울금, 계피를 각각 언제, 얼마나 넣어야 맛이 좋은지 수백 번, 수천 번 실험을 하면서 데이터를 만들었다"며 "지금의 제조법은 수십 년 시행착오를 거친 결과"라고 말했다.



여러 가지 재료가 들어가는 만큼 이강주 제조법은 복잡하다.
쌀과 누룩으로 빚은 약주로 증류주를 내리는 것까지는 일반 증류식 소주와 별 차이가 없다.
일반 증류식 소주라면 증류된 소주를 숙성하는 것으로 공정이 끝난다. 하지만 이강주는 여기서부터 제조가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증류주를 네 개의 술통에 나눠 담고 배와 생강, 울금, 계피를 각각 넣어 1년가량 침출시키면서 숙성한다.
이렇게 네 가지 부재료를 넣고 숙성한 술의 침전물을 걸러낸 뒤 블렌딩해 알코올 도수를 맞추고 1년간 2차 숙성을 거쳐 병에 넣으면 이강주 25도 제품이 완성된다.
알코올 도수가 더 높은 38도 제품은 증류를 한 차례 더하고, 재료를 침출시킨 뒤 걸러내는 과정도 한 차례 더 해 총 3년 숙성시킨다.
도수가 높은 만큼 부재료의 맛과 향이 더 진하게 우러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들어가는 부재료의 비율은 술을 담그는 시기에 따라 달라진다. 수확기냐 아니냐에 따라 원료의 맛과 향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게 바로 수십 년 걸쳐 축적해 온 명인의 노하우인 셈이다.

사라져가는 이강주를 되살렸지만, 반드시 '원형 그대로'를 고집하지는 않는다.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시대 흐름에 따라가는 유연함도 그는 지니고 있다.
조 명인은 "어머니가 빚었던 이강주는 배, 생강, 울금, 계피가 많이 들어가 술이 매우 진하고 걸러도 침전물이 생겼지만, 요즘 사람들은 이런 술을 선호하지 않는다"면서 "세대 변화에 맞춰 좀더 맑은 술을 만들기 위해 걸러내는 작업을 여러 차례 반복한다"고 설명했다.
이강주가 수백 년의 세월을 넘어 이 시대에도 사랑받는 이유가 이런 유연함에 있는 건 아닐까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6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isunny@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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