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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화식전` 해설서 4종 확인…"이윤 추구 긍정"

입력 2021-05-11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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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화식전` 해설서 4종 확인…"이윤 추구 긍정"
[안대회 교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조선 후기 지식인들이 중국 역사서 '사기'(史記) 중 상업과 재산 증식에 관한 이야기를 모은 '화식열전'(貨殖列傳)과 이에 관해 해설을 덧붙인 주석서 최소 4종을 집중적으로 필사해 유통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의로움을 중시하고 사익을 멀리하는 삶을 추구했다고 알려진 조선 식자층이 상공업과 이윤 추구를 죄악시한 사회 분위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화식열전에 주목한 것으로 분석된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20세기 이전 조선 독서계에서 사기 화식열전에서 독립한 단행본 '화식전'(貨殖傳)이 상당히 많이 필사됐고, 서로 다른 저자가 저술한 주석본이 4종 이상 혼란스럽게 필사돼 유포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현존하는 화식열전 주석서만 40∼50건은 된다"고 11일 밝혔다.

사마천이 편찬한 고대 사서 '사기'는 130편으로 구성되며, 그중 다양한 인물의 전기를 의미하는 열전(列傳)이 70편이다. 화식열전은 사마천 집안 내력을 정리한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 바로 앞에 실린 열전 69편이다.

안 교수는 화식열전과 주석서 필사본이 조선에서 널리 유통되기 시작한 시기를 18세기 중·후반으로 추정하고, 화식열전 주석서 간행은 중국에서도 20세기 이후 일어났다는 점에서 이례적 현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사기'가 동아시아에서 널리 읽힌 책이지만, 단일 편을 뽑아 주석을 달아 유통한 책으로는 '항우본기'(項羽本紀) 외에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학계가 지금까지 많은 도서관과 개인이 보유한 화식열전 주석서 내용에 관심을 거의 기울이지 않았으나, 18세기 조선사회 변화를 알려주는 중요한 저작으로 재평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이 펴내는 학술지 '대동문화연구'에 잇따라 발표한 논문에서 "조선 후기 경제와 경영, 지리와 역사, 문학 분야의 여러 경향과 맞물려 주석서가 산출됐다"며 "18세기 조선에서 화식열전 주석서가 다수 나온 것은 상공업을 억압하는 사회적 관습에 대한 반작용이 크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복고주의 팽배로 인해 고전에 대한 독서 욕구가 심화하면서 문체가 매우 독특하고 역사적 고증 작업이 필요해 읽기 어려운 화식열전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졌다고 덧붙였다.


그는 논문에서 화식열전을 그대로 옮긴 필사본 외에 주석서 4종에 대한 분석을 시도했다.

화식열전 주석서는 여러 글을 묶은 책에 실리기도 했고, 단행본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화식열전 주석서가 포함된 책은 명나라 '사찬'(史纂)을 바탕으로 만든 서적과 고전 6편에 대한 주석을 단 '경사주해'(經史註解) 등 2종이며, 단행본으로는 문인 정양흠이 18세기 후반에 편찬한 것으로 추정되는 책과 작자 미상 서적 2종이 있다.

안 교수는 주석서 4종에서 두루 나타나는 특징으로 한문을 읽을 때 편의상 다는 문법 요소인 구결과 문장의 중요한 곳에 찍는 점인 평점이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필사본 다수는 질 좋은 종이에 정성스럽게 글씨를 적었고, 많이 읽은 흔적도 발견됐다고 덧붙였다.

정양흠이 쓴 책을 제외하면 주석서 3종의 저자는 명확히 알 수 없으나, 조선 후기에 명망 있던 학자 김창흡의 글을 모아 1732년 간행한 문집 '삼연집'(三淵集)에 실린 화식열전 분석 글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안 교수는 설명했다.

이어 김창흡은 이목구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천하 사방에서 다양한 물산을 찾아다니는 실태를 화식열전 요지로 파악했다고 평가했다.

안 교수는 주석서들이 화식열전 중 '욕'(欲), '왕래'(往來), '낙'(樂) 같은 글자를 중요한 대목으로 이해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이익 추구 욕망을 자연스러운 인간 본능으로 보고 긍정적 논의를 펼친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18세기에 재산 축적 방법과 부자 유형을 서술한 '해동화식전'(海東貨殖傳)과 '택리지'(擇里志), '북학의'(北學議) 같은 중상주의 저술이 잇따라 나오고, 화식열전 주석서가 유통된 것을 보면 당대 일부에서 상업을 인간사에서 중요한 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psh59@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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