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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허웅, 왜 태극마크는 강력한 촉매제였나

류동혁 기자

입력 2015-10-0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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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허웅, 왜 태극마크는 강력한 촉매제였나
안양 KGC와 서울 삼성의 2015-2016 프로농구 경기가 7일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렸다. KGC 이정현이 득점을 성공한 후 기뻐하고 있다. 안양=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5.10.07/

2012년 8월이었다. KGC는 대만 전지훈련 겸 존스컵에 참가하고 있었다.



프로 3년 차에 접어든 주전 슈팅가드 이정현은 한창 기량이 성장하고 있는 시기였다.

슈터가 많지 않던 프로에서 이정현은 잠재력이 뛰어난 슈팅가드였다. 장, 단점이 엇갈렸다. 1m91의 높이와 파워가 돋보였다. 여기에 안정적인 슈팅력이 인상적이었다. 수비도 괜찮았다. 좋은 BQ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좀 느렸다. 외곽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부분에서는 흠 잡을 데가 없었다. 때문에 국가대표급 슈터로 성장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었다.

당시 필자는 이정현과 인터뷰를 했다. 박찬희가 군에 입대한 상황에서 주로 식스맨으로 뛰었던 이정현이 키 플레이어였따. 외곽의 김태술과 함께 보여주는 긴밀한 호흡이 팀 성적에서 중요했기 때문이다.

여러 얘기를 하던 중 '국가대표 욕심은 없나.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면 병역혜택도 누릴 수 있다. 그럴 잠재력은 충분한 것 같은데'라고 물었다. 그러자 이정현은 손을 저으며 "제가 대표팀을요? 에이 농담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그리고 시즌을 치렀다. 2012~2013시즌 이정현은 평균 31분27초를 뛰면서 11.7점, 3.6리바운드, 3.1어시스트, 1.5스틸을 기록했다. 국내 선수 중 슈터로서 특급 수치였다. 그는 상무에 입대했다.

지난 시즌 막판 소속팀에 복귀했다. 올해 아시아선수권대회 대표팀 선수로 발탁됐다.

사실 그리 많이 뛰진 못했다. 백업으로 나섰다. 중국과 중동의 활동력이 좋은 빅맨들은 스크린 수비를 할 때 그냥 스위치해 버린다. 운동능력이 좋고 활동폭이 넓다. 때문에 내외곽 수비가 가능하다. 매년 그랬던 전술이다.

순발력이 약간 떨어지는 이정현은 슈팅 찬스를 제대로 잡지 못했다. 그리고 한국은 6위를 했다.

이정현은 복귀전이었던 7일 안양 삼성전에서 무려 33점을 폭발시켰다. 기량은 원래 뛰어난 선수. 가장 강렬했던 점은 자신감이었다.

자신감을 바탕으로 여유가 있었다. 내외곽을 휘저으며 사실상 경기를 지배했다. 경기가 끝난 뒤 개인적으로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대표팀에서 많이 뛰지 못했다. 하지만 대표팀 연습경기와 아시아선수권대회 외국의 빅맨들과 겨루면서 얻은 경험과 자신감이 있었다. 오늘 좀 더 여유있게 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했다.

그는 "확실히 대표팀에서 느끼는 게 많았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사실 상대팀에서 스위치 수비를 해버리니 느린 내가 슈팅기회를 전혀 잡지 못했다. 양)동근이 형과 (조)성민이 형은 장신들 틈에서도 슛을 언제 쏴야할 지 언제 돌파해야 할 지를 알고 있었다. 그런 부분을 많이 배웠다"고 곱씹었다. 이정현은 "전 국가대표팀은 이제 안될 것 같아요"라고 머리를 쥐어짜기도 했다.

하지만 그 다음 말이 매우 의미심장했다. 그는 "아시아권에서 통하려면 어떻게 할 지에 대해 고민해 봤어요. 한계가 있지만, 순발력을 좀 더 키우든지, 아니면 제 나름의 특기를 더욱 극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라고 했다.

3년 전, 미지의 국가대표팀에 대한 두려움과 체념이 이젠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려는 기회를 만들어줬다.

사실 대표팀을 경험한 뒤 자신감과 여유가 배가되는 케이스를 흔히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선수가 양동근이다. 2008년 나고야 동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양동근은 대표팀에서 주희정 뿐만 아니라 이정석에게 밀렸다. 파워와 수비력은 좋았지만, 리딩에 약점을 보였던 시기였다.

당시 그는 필자에게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며 고민을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력한 발전계기를 만들어줬다. 이후, 그는 "대표팀은 나와 상관없는 곳인 줄 알았다. 항상 나보다 잘하는 선수가 들어가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대표팀에서 경기를 치러보니,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자신감 뿐만 아니라 자신의 발전과제를 제시하는 전환점이 됐다. 여자프로농구 박혜진 역시 똑같은 얘기를 했었다.

33점을 폭발시킨 이정현 외에도 '대표팀' 때문에 확 달라진 선수가 있다. 동부 허 웅이다. 지난 시즌 가능성을 보였던 허 웅은 매 경기 30분 이상 뛰면서 평균 15.6득점, 3.4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있다. 게다가 48.6%의 3점슛 성공률과 90.5%의 자유투 성공률을 기록하고 있다. 완벽히 업그레이드됐다. 지난 시즌 뭔가 쫓기는 듯한 경기운영을 보였던 허 웅은 올 시즌 매우 여유로우면서도 시야가 넓어진 모습. 게다가 승부처에서 스크린을 받은 뒤 미드 레인지 부근에서 던지는 정확한 점프슛은 에이스의 풍모마저 느끼게 만든다.

허 웅 역시 비 시즌 동안 다녀왔던 U-대표팀의 경험이 자신이 달라진 가장 큰 계기라고 말했다. 이런 예를 보면 확실히 대표팀 상비군 제도를 통한 빈번한 국제대회 경험은 많은 이점을 가져온다.

이런 선수들의 '돌출'이 일상화되면 김영기 KBL 총재가 그토록 강조했던 '경기 흥미도'는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설령, 저득점이 나와도 상관없다.

올림픽 지역예선이나 올림픽, 그리고 월드컵과 같은 큰 대회에 티켓을 확보하는 것은 그래서 더더욱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농구 강국들과 평가전을 곁들이면 선수들의 기량 발전을 강력히 유도하는 촉매제로 충분하다. 설령 대패를 한다고 해도, 더욱 의미 있는 경험과 자극을 국내 농구에 줄 수 있다. 사실 이런 부연설명을 붙이는 것 자체가 입 아픈 일이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KBL과 KBA는 이런 움직임이 전혀 없다. 선수들은 자신의 기량을 발전시켜야 할 자극제나 동기부여 기회가 거의 없다. 결국 국내 선수들의 기량은 정체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된다. 10년 넘게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조롱 섞인 비난을 받는 한국 농구의 현실이다. 문제가 뭔 지, 가야할 길이 뭔 지는 다 나와있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그 결과는 '도돌이표 참사'다. KBL, KBA의 고위 수뇌부 뿐만 아니라 모든 농구인 들이 처절하게 반성해야 할 문제다. 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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