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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체육]'유도★스타'조준호는 왜 생활체육속으로 들어갔을까

전영지 기자

입력 2019-04-25 17:54

수정 2019-04-26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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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스타'조준호는 왜 생활체육속으로 들어갔을까
25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 와와유소년스포츠클럽에서 런던올림픽 유도 동메달리스트 조준호 양평군청 코치가 국민체육훈장 거상장, 올림픽 동메달과 나란히 포즈를 취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 출신으로서 생활체육과의 상생을 추구하는 대표적인 청년 지도자다. 성남=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9.04.25/

"한 명의 슈퍼스타보다 더 많은 사람이 스케이트를 신기 원한다."



2012년 런던올림픽 남자유도 동메달리스트 조준호 양평군청 유도팀 코치(31)가 방송, 인터뷰에서 즐겨 인용하는 네덜란드 빙상대표팀의 모토다. 25일 오전 경기도 분당 백현동에 자리잡은 '유도형제' 조준호-조준현의 '와와유소년스포츠클럽'을 찾았다. 200평 남짓 드넓은 도장에 올림픽 메달리스트 조준호의 이름도, 사진도 눈에 띄지 않았다. "메달을 안 걸어놨네요" 했더니 조 코치가 답했다. "이름값으로 가르치는 게 아니니까요. 아이와 부모님에게 제가 올림픽 메달리스트라는 사실은 중요치 않아요. 얼마나 잘 가르치느냐가 중요한 거죠. 저를 보고 오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보고 오니까요."

조 코치는 모든 것을 쏟아낸 런던올림픽 1년 후 은퇴했다. 2016년 리우올림픽 여자대표팀 코치로 일했고, 2016년 말부터 수원시청에서 은퇴한 '국대 출신 쌍둥이 동생' 조준현과 함께 분당에 '와와스포츠클럽'을 열었다. 20대 청년 올림피언의 첫 도전은 시련이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자부심으로 시작한 유도장은 마음같지 않았다. 인근 태권도장은 아이들이 넘쳐나는데 유도장은 파리를 날렸다. "어릴 때 다니던 유도장은 무서운 관장님 한마디면 모든 것이 끝났었다. 나는 유도도 잘하고 올림픽도 나가고 방송에도 많이 나왔으니 잘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시장조사도 안했고, 제대로 된 프로그램도 없었다." 한달에 1000만 원씩 적자가 쌓였다. 조 코치는 "정말 참담했었다. 한강에 갈 뻔했다"고 돌아봤다.

지난해 초 미국에서 스포츠클럽을 성공적으로 운영해온 '시드니올림픽 국가대표' 한지환 관장을 만나고 온 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조 코치는 그를 '마스터'라고 칭했다. 아이들을 위한 유도 프로그램을 전수받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칭찬', 긍정적인 동기 부여(Positive Motivation)다. 조 코치는 "처음에 아이가 엄마손을 잡고 들어오면 계약자인 부모 눈을 보고 이야기했다. 지금은 다르다 . 아이가 오면 무릎 슬라이딩으로 아이 눈부터 맞춘다. 그리고 하이파이브를 한다. 관계형성의 시작이다. '진짜 잘한다'고 칭찬해준다. '차렷할 수 있어?' 물어보고 아이가 동작을 하면 '와, 정말 멋지다'고 칭찬해준다. 우리 프로그램은 모두 칭찬을 통해 움직인다"고 했다. "우리 클럽 사범이 되기 위한 제1의 조건은 칭찬을 잘하는 것"이라며 웃었다. "요즘 부모들은 바쁘다. 아이들은 다 칭찬 결핍이다. 어린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코칭법은 '칭찬 '"이라고 했다. 비글처럼 까불거리는 아이들도 칭찬에는 순한 양이 된다. 아이들에게 맘껏 뛰놀고, 폭풍칭찬도 받고, 멋진 검은 띠도 딸 수 있는 '행복한 유도장'은 가장 오고 싶은 곳 1순위가 됐다. 1년만에 200여 명의 아이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숙제 안하면 유도 끊을 거야"가 가장 무서운 말이다. 부모님이 들려주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는 가장 듣기좋은 말이다.

그런데 조준호-조준현 형제는 왜 생활체육 속으로 들어갔을까. 조 코치가 3가지 이유를 전했다. "첫째 안 다치고 재미있게 유도를 배우게 하고 싶었다. 수영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한다. 물에 있는 시간보다 땅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다. 낙법과 호신술도 필수다. 둘째, 배드민턴, 탁구 등 저변 넓은 몇 종목을 제외하고는 올림픽 메달에만 목을 맨다. 메달을 만들어내려면 네덜란드 빙상팀처럼 저변 확대가 선행돼야 한다. 선수촌 스파르타 시스템은 잘 갖춰졌으니 생활체육으로 눈을 돌리면 시너지가 더 날 것이라 생각했다. 셋째, 결국 동호인 풀이 커져야 내 밥그릇도 커진다. 메달리스트는 4년만 지나면 잊혀진다. 일본, 프랑스의 유도 레전드는 영원히 기억된다. 생활체육이 잘 가꿔져 있기 때문이다. 엘리트 선수들이 사랑받기 위해서는 생활체육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 구구절절 옳은 이야기였다.

와와스포츠클럽에서 국가대표, 엘리트 선수가 나올 수 있을까. 이미 성과는 나타나고 있다. 재능 넘치는 아이들을 유도부가 있는 학교로 연결해주고 있다. 조 코치는 "초등학교 4학년 여학생이 있는데 재능이 엄청나다. 본인도 유도를 정말 좋아한다"고 귀띔했다.

인터뷰 중 조 코치는 '믿음의 승부'라는 미식축구 영화의 한 장면을 보여줬다. 코치가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아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한계를 뛰어넘게 이끄는 과정은 뭉클했다. 안대로 눈을 가리고 동료를 등에 업은 채 50야드를 기어가는 아이 옆에서 코치는 쉴새없이 칭찬하고 응원하고 지지한다. 피니시라인까지 함께 가며 끝까지 열정적으로 소리친다. 안대로 한계를 가린 아이는 100야드를 통과했다. 자신의 한계를 넘었다. 조 코치는 지도자로서 한계에 부딪칠 때마다 이 영상을 돌려본다고 했다.

올해 초 양평군청 코치로 부임한 후 스포츠클럽의 살림을 동생인 조준현 코치가 도맡아하고 있다. 조 코치는 용인대 직속 선배 채성훈 양평군청 감독과 함께 '유도 생활체육인들과의 상생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있다. 우선 양평군청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유도교실을 열 예정이다. 이후 군내 동호인, 학생들까지 대상을 넓혀가는 것이 목표다. 바쁜 일상을 쪼개 동생과 함께 '한판TV'유튜브 채널도 운영중이다. 구독자가 4만7000여 명에 달한다. 다함께, 더 멀리, 더 행복하게 가는 길을 알고 있다.

체육 현장에서 목도한 20~30대 엘리트 선수, 지도자들의 의식 변화는 확실하다. 상생을 위한 철학 또한 분명하다. 이들이 이끌어나갈 5년 후, 10년 후 대한민국 스포츠 세상은 분명 다를 것이다. 분당=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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