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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우 기자의 제철미식기행= 봄멸치>

김형우 기자

입력 2017-04-24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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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우 기자의 제철미식기행= 봄멸치>
멸치회무침

4월 하순, 새봄의 연둣빛 잎사귀가 제법 무성해졌다. 이제 만방에 봄이 가득하다. 아침저녁은 섭씨 15도, 한낮은 20도 안팎이니 정말 쾌적한 날씨다. 떠나기에 좋은 계절, 봄꽃이 흐드러지게 핀 경치구경도 좋지만 계절의 별미를 맛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이즈음 맛볼 수 있는 미식거리를 꼽자면 '봄멸치'를 빼놓을 수 없다. 우리의 남동해안, 그중에서도 부산광역시 기장 앞바다에서는 요즘 봄멸치잡이가 한창이다. 선단을 이룬 대변항 소속 멸치잡이배가 새벽부터 분주하게 움직인다.

맛을 놓고 보자면 '작다고 무시하지 말라'는 말이 봄멸치에 딱 어울릴 성 싶다. 멸치(蔑致)는 결코 보잘 것 없는 멸어(蔑魚)가 아니다. 요즘 대변항 등에서 맛볼 수 있는 싱싱한 멸치는 어른 손가락보다 굵고 길다. 때문에 잔멸치만 떠올렸다가 막상 갓 잡은 대멸을 보면 어엿한 생선임을 인정하게 된다. 남해안 사람들은 멸치를 '고래보다 더 맛나다'고 자랑이다. 비록 크기는 작지만 바다의 봄 느낌이 가득 담긴 별미이기 때문이다.

봄멸치는 살이 부드럽고 기름이 오른 까닭에 유독 맛이 좋다. 따라서 예로부터 계절의 진미로도 통했다. 파닥파닥 은빛 비늘 반짝이는 싱싱한 대멸(大蔑)은 부드럽고 고소한 게 횟감으로도 그만이다. 또 시래기를 넣고 얼큰하게 지져낸 찌개는 밥반찬으로도 제격이다.

멸치는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도 애용한 생선이었다.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밝은 빛을 좋아해 어부들이 밤에 불을 밝혀 유인하여 그물로 떠서 잡는다. 국이나 젓갈을 만들어 먹거나 말려서 먹는다'고 적고 있다.

유자망으로 잡은 대멸은 거친 조류를 따라 이동하는 관계로 운동량이 많다. 때문에 단련된 육질에 지방도 적당해 횟감으로 좋다. 어른 가운데 손가락 보다 더 큰 대멸은 주로 뼈만 발라내고 그냥 회로 먹거나 무쳐 먹는다. 특히 미나리와 양배추, 깻잎, 당근, 상추 등을 넣고 매콤한 초고추장에 무쳐 먹는 맛이 괜찮다.

'입에서 살살 녹는다'는 표현이 곧잘 어울릴 멸치회는 의외로 손이 많이 간다. 멸치를 회로 먹기 위해서는 멸치 비늘을 털어야 하고, 머리와 지느러미를 떼고, 내장을 꺼내고, 뼈를 발라내야 한다. 특히 멸치 살이 부드럽다 보니 조심히 다뤄야 한다. 때문에 멸치 20kg짜리 한 상자를 숙련된 아주머니가 손질하는데 2시간 이상이 걸린다.

손질 해둔 멸치회는 하얀 육질에 불그스름한 기운이 있는가 하면 등 푸른 생선에서 나타나는 갈색의 육질이 띠처럼 이어진다. 때문에 작지만 먹음직스럽다. 맛이 부드러운 듯 고소한 게 한두 번 우물거리면 혀끝에서 사라지고 만다. 비린내 대신 고소한 고등어의 맛도 살짝 느껴진다. 멸치회무침의 경우 회와 함께 아삭하게 씹히는 미나리도 맛의 포인트이다. 상큼한 향에 비릿한 맛이 잠재워진다.

대변항 사람들은 멸치회를 기장생미역에 싸먹는 것도 별미라고 일러준다. 짭짤한 미역의 식감과 어우러져 갯내음을 듬뿍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생멸치 찌개도 맛있다. 흔히 멸치를 국물 내는 데 쓰는 정도로 알고 있지만 멸치도 어엿한 찌개감이다. 된장을 푼물에 시래기를 깔고 생멸치를 넣어 매콤하게 끓여낸 멸치찌개는 밥반찬은 물론 술안주로도 좋다. 그 맛이 민물 잡어탕이나 꽁치찌개와는 또 다른 깊은 풍미가 있다.

멸치찌개의 조리과정이 간단치는 않다. 무, 다시마, 멸치를 넣고 미리 만들어 둔 육수에 된장을 풀고 시래기를 깐 다음 한소끔 끓여낸다. 이후 생멸치를 얹고 고춧가루를 듬뿍 뿌려 보글보글 끓여낸다. 얼큰한 국물맛 이상으로 멸치의 부드러운 육질도 기대 이상이다. 뼈째 씹어도 무난하다. 멸치찌개의 압권은 시래기다. 찌개의 모든 맛이 한데 스며든 맛 덩어리로 최고의 밥도둑에 다름없다.

요즘 대변항 포구 곳곳에는 멸치 굽는 냄새가 진동 한다. 연탄불에 올려놓은 싱싱한 멸치는 지나칠 수 없는 유혹이다. 그 맛이 양미리나 꽁치와는 또 다른 고소함이 있다.

기장 대변항은 부산역에서 버스로 1시간 남짓 거리다. 이른 아침 서울서 KTX를 타면 점심엔 풍성한 포구의 정취 속에 멸치의 부드러운 속살을 접할 수 있으니 삼삼오오 나설 만한 코스다. 김형우 문화관광전문 기자 hwkim@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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