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프로축구 사상 첫 700경기 출전의 대기록을 세운 뒤 "아들과 같은 무대에서 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던 전남 드래곤즈 골키퍼 김병지(45)에게 '아들이 상대팀으로 나와 슛을 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막겠다"고 답했다. 그만큼 그에게 슛을 막는 것은 타고난 천직인 셈이다. 김병지의 아들 태백(17) 군은 언남고에서 프로 선수의 꿈을 키우고 있다.
700경기 출전 기록을 세운 뒤 '777경기 출전'을 다음 목표로 내걸었던 김병지를 7월31일 전남 드래곤즈 구단 숙소에서 만나 그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 "용접공 출신은 와전된 것"= 김병지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마산공고를 다니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소년의 집(현 알로이시오 고등학교)으로 전학을 갔다. 그는 "축구를 할 수 있다는 이유로 학교를 옮겼다"고 회상했다.
키가 크지 않아 운동을 2년간 쉬었던 그는 그 사이에 키가 20㎝나 훌쩍 컸고 당시 소년의 집에서 골키퍼를 구한다는 소식에 미련없이 전학을 결심한 것이다.
김병지는 "그때 3층 침대 10개를 한 방에 넣고 30명이 좁은 공간을 같이 썼다"며 "전학생에 대한 텃세도 있었고 생활 면에서 쉽지 않을 때였다"고 돌아봤다.
소문이 무성했던 그의 '주먹' 솜씨를 물어봤다. 김병지는 웃으며 "국민학교 때 싸움 좀 잘하다가, 중학교 때는 키가 안 커서 조용히 지냈다"고 설명한 뒤 "(키 20㎝가 갑자기 큰)고등학교 때 싸움해서 진 적은 없는 것 같다"고 확인해줬다.
고등학교를 나온 뒤에 용접공으로 일했다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그건 조금 비약이 됐다"고 쑥스러워했다.
김병지는 "마산공고 다닐 때 용접 기능사, 소년의 집으로 옮겨서는 선반 기능사 자격증을 딴 것은 사실"이라며 "이후 1988년 10월에 LG산전에 입사해서 1990년 1월까지 다녔는데 내가 있던 곳은 검사실이었다"고 설명했다.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제작에 쓰이는 각종 부품을 검사하는 곳에서 일했기 때문에 실제로 용접을 할 일은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LG산전 사내 축구부에서 경기 감각을 익히던 그는 상무 테스트에 응시해 합격, 본격적인 엘리트 선수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김병지는 "당시 상무 홍속렬 감독님이 저의 순발력이나 민첩성을 잘 봐주셔서 입단할 수 있었다"며 "상무에서 주전으로 뛰면서 전역 후 울산 현대에 입단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에게 "홍 감독과 같은 분이 아니었으면 '오늘의 김병지'가 가능했겠느냐"고 묻자 "정말 감사한 분이 많이 계시지만 나는 어떻게든 되기는 했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답했다.
김병지는 "지금 생각해도 축구를 하려는 열정이 정말 대단했기 때문"이라고 자신의 과거를 평가했다.
당시 이운재와 국가대표 골키퍼 주전 경쟁을 벌였으나 김병지는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김병지는 "그때 생각에는 '내가 낸데' 그런 거였다"고 말했다. '내가 김병지인데'라는 자존심이었다는 것이다.
흔히 월드컵을 앞두고 열린 평가전에서 공을 몰고 필드 플레이를 하다가 위기를 맞는 바람에 거스 히딩크 감독의 눈 밖에 났다는 말이 많았지만 김병지는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고 내가 지혜롭지 못했던 탓"이라고 자책했다.
그는 이미 13년 전의 일이었지만 그때 이야기를 조심스러워 하는 듯했다. '국민 영웅'이 된 히딩크 감독이나 당시 라이벌로 평가받은 이운재를 의식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김병지는 "그때는 나에 대한 자신감이 너무 커서 그랬는지 옷깃을 바짝 세웠던 것 같다"고 웃으며 "그래도 지금 내가 아직도 현역으로 뛴다는 사실을 히딩크 감독이 알면 '아리까리해(아리송해)'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 보면 내가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하는 것도 그때 깨달은 바가 많았기 때문"이라며 "선수는 물론 기량이 기본 바탕이 돼야 하지만 그밖에 구단이나 감독, 팬들과의 관계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을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김병지는 터키와의 3-4위 전에는 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 한국은 독일과의 준결승에서 패해 3-4위전으로 밀려났고 이후 '한 경기에도 출전하지 못한 김병지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여론이 팽배했다.
그러나 마지막 경기에서도 김병지는 벤치를 지켜야 했고 김병지는 "그때 내가 뛰었더라면 히딩크 감독님도 팬들의 공감을 더 얻어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