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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OFF]'쪽대본'이 아니라 가능했던 벤투의 '웰메이드 드라마'

박찬준 기자

입력 2022-12-07 06:56

수정 2022-12-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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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대본'이 아니라 가능했던 벤투의 '웰메이드 드라마'
한국 축구대표팀 벤투 감독이 6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 스타디움 974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전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패한 뒤 손흥민과 포옹을 하고 있다. 도하(카타르)=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2022.12.06/

[도하(카타르)=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쪽대본'은 없었다. 그저 작가가 처음부터 생각한 대로, 그렇게 극이 이어졌다. 재밌을 때도, 재미없을 때도 있었지만, 작가는 개의치 않았다. '내용을 이렇게, 저렇게 바꾸라'는 팬들의, 방송국의 요청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마지막 회가 다가와도 초조함은 없었다. 배우들은 드라마의 힘을 믿으며 헌신적인 연기를 이어갔고, 결국은 '시청률 대박'으로 마무리됐다. 벤투호의 4년은 이처럼 잘 만든 한 편의 '웰메이드 드라마'였다.



2022년 카타르월드컵의 성공은 적어도 '기적'이 아니다. 명확한 철학에 따른 정확한 목표, 이를 실행하기 위한 정교한 계획과 준비,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한치도 흔들리지 않는 일관성을 통해 만들어진 '당연한 결과'였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능동적이고 지배하는 축구'라는 철학에 따라, 4년 동안 일관된 방향으로 팀을 이끌었다. 선수 선발부터 기용, 전술까지, 그만의 명확한 기준을 철저히 따랐다. 때때로 이 확고함이 너무 세, 완고함을 넘어 '고집불통'의 이미지를 만들기도 했다. 팬들, 전문가들과 대척점에 서기도 했지만, 그의 해답은 언제나 '마이 웨이'였다.

역설적이게도 벤투 감독의 '고집불통'은 카타르에서 빛을 발했다. 과거 월드컵의 키워드는 '임기응변'이었다. 준비는 짧았고, 변화는 많았다. 세계적인 스타들을 상대하기도 벅찬 선수들 입장에서는 압박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내가 무슨 축구를 하고 있는지 모를 때도 있었다. 흔들릴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자신의 기량을 100%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은 달랐다. 선수들은 이구동성으로 "즐기겠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일관성'이 만든 변화였다. 벤투호는 한국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월드컵에 맞춰 '4년'을 유지한 팀이었다. 일관된 스타일을 지닌 '하나의 팀'으로 만들어졌다. 당연히 선수들은 이 팀의 구조, 분위기는 물론, 장단점까지 훤하게 꿰찰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벤투 사단'의 힘은 빛났다. 세분화된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된 벤투 사단은 몸푸는 방법부터 경기를 준비하는 방법까지, 디테일하고 체계적인 프로그램으로 무장했다. 한 섹션이 넘어갈 때마다 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고, 정확한 메시지를 줬다. 선수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고, 이는 막연한 두려움을 뛰어넘어 자신감으로 돌아왔다.

조별리그에서 보여준 우리의 경기력은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이고, 그 열매는 12년만의 월드컵 16강이었다. 사실 대한축구협회 내부에서도 벤투의 길에 대해 노골적으로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기도 했지만, 벤투식 축구에 대한 선수들의 믿음은 절대적이었다. '캡틴' 손흥민(토트넘)은 "우리는 의심을 한 적이 없는데 많은 분들이 의심을 하셨다. 지난 4년의 시간은 우리에게 너무 소중했다"고 했다. '황태자' 황인범(올림피아코스)도 "외부적으로 흔들리는 일들과 말들이 있었지만, 내부적으로 잘 뭉치고 서로를 믿고 해왔다. 16강은 그 보상이었다"고 했다.

벤투 감독은 떠났다. 이제 새로운 4년을 준비할 때다. '포스트 벤투'가 누가 될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벤투의 시스템'을 어떻게 계승할지다. 이재성(마인츠)은 "4년 동안 한 감독님 아래서 꾸준히 준비할 수 있다면 세계 무대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게 가장 큰 성과다. 감독님이 오시면서 우리에게 철학을 공유해주셨고, 힘들어도 철학을 버리지 않으셨고, 이 철학을 이해시키기 위해 전문적인 시스템을 도입하셨다. 그래서 우리도 감독님을 믿고 따라갈 수 있었다. 그게 이번 월드컵에서 보인 좋은 경기력의 원동력이 됐다"고 했다. 김진수(전북)는 "누가 오시든 한국 축구를 위해 이렇게 길게 준비를 하고, 그만의 색깔을 한국 축구에 입혀서 준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선수들의 말에 이미 답이 있다. 명확한 철학의 설립과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전문적인 지도자의 선임과 프로그램의 구축, 그리고 완성될 때까지의 믿음과 시간을 주는 것, 이것이 벤투호가 한국축구에 준 '성공 공식'이다.

도하(카타르)=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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