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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빵' 이어 '검정고무신'…히트에도 웃지 못한 원작자

입력 2023-03-26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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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빵' 이어 '검정고무신'…히트에도 웃지 못한 원작자
[연합뉴스 자료사진]

1990년대 인기 만화 '검정고무신'을 그린 이우영 작가가 캐릭터 업체와의 저작권 분쟁 도중에 세상을 등지면서 문화예술 업계에 만연한 불공정한 계약 문제가 다시금 수면으로 떠올랐다.



협상력이 약한 창작자를 상대로 저작재산권을 영구·일괄 양도 받는 식의 계약 관행 자체에 문제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정부는 '제2의 검정고무신' 사건을 막겠다며 만화를 포함해 문화체육관광부 관할 15개 분야 표준계약서 82종을 전면 재점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의무가 아닌 표준계약서만으로는 문제를 바로잡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 '구름빵' 뮤지컬·'검정고무신' 애니 성공해도 웃지 못하는 원작자
누구나 이름을 아는 인기 작품을 만드는 것은 모든 창작자의 꿈일 것이다.

하지만 히트작을 만들고도 그 과실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창작자들이 있다.

대표적인 인물은 동화책 작가 백희나다.

백 작가는 신인 시절인 2003년 동화 '구름빵'을 그렸고, 출판사 한솔교육과 출간 계약을 맺으며 '저작인격권을 제외한 저작재산권 등 일체의 권리를 한솔교육에 양도한다'는 내용의 계약서에 서명했다.

출판사가 일정 금액만 지급하고 저작물을 이용해 얻는 수익을 모두 가져가는 이른바 '매절계약'이다.

당시 백 작가가 받은 돈은 850만원에 불과했고, 이후 지원금을 포함한 총수입이 2천만원에도 못 미쳤다.

출판사 측은 '구름빵'이 40여만부 팔리면서 20억여원의 매출을 올렸고, 애니메이션·뮤지컬·캐릭터 상품으로 2차 사업화를 하면서 수천억원의 가치를 창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백 작가는 저작권 침해 금지 소송을 제기했지만 2020년 원고 패소 판결이 확정됐다.

'검정고무신'의 이우영 작가도 캐릭터 업체 형설앤과 사업권 설정 계약을 맺은 뒤 저작권 분쟁을 겪어왔다.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이 작가는 2007년 형설앤과 포괄적·무제한·무기한으로 저작물 관련 사업을 할 수 있다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검정고무신'은 2020년과 2022년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고, 대형 유통업체와의 협업 등 다양한 사업이 진행됐음에도 이 작가의 수입은 15년간 1천200만원에 불과했다고 대책위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는 비단 출판업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한음저협)도 매절 계약의 문제를 지적했다.

한음저협은 "분야를 막론한 국내의 많은 창작자가 대형 미디어 사업자에게 헐값에 저작권을 넘기거나 이용 허락을 하게 해주는 등의 매절 계약을 사실상 강요당하고 있다"며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저작권 등록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 뒤늦게 팔걷은 정부…"표준계약서 손보고 저작권 독소조항 제거"
이 작가의 별세를 계기로 만화업계에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도 뒤늦게 조치를 강구하고 나섰다.

한국만화가협회 등은 대책위를 결성했으며, 웹툰협회는 '이우영법'이라는 이름으로 저작권법 개정에 나서겠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우선 문화체육관광부는 만화 분야 표준계약서를 개정해 2차적 저작물 작성권 관련 내용을 구체적으로 넣고, 업계에 만연한 저작권 관련 불공정 관행을 근절할 계획이다.

만화·웹툰 창작자를 대상으로 저작권 교육을 확대하기로 했다.

연 80명에서 500명으로 교육 인원을 늘리고, '알기 쉬운 저작권 계약사례 핵심 가이드'(가칭)를 마련한다.

박보균 문체부 장관은 24일 신일숙 한국만화가협회장, 김병수 지역만화단체연합 대표 등과 만나 "작가들이 저작권에 낯설어하는 풍토에서 갑질 독소 조항의 그물에 빠져 창작의 열정이 꺾이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하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실태 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내부 회의에서 "출판사나 콘텐츠 제작사의 약관에 저작권, 2차 저작권에 관한 불공정 조항이 있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표준계약서 개정만으로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성주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최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표준계약서가 하나의 수단이기는 하지만 만능은 아니다"라며 "의무화도 불가능하고 콘텐츠라는 분야가 계속 발전하는 가운데 표준계약서가 이를 모두 담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heeva@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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