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1983년 1월 발표한 소설 '헛간을 태우다'를 각색한 작품으로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 온 세 젊은이 종수, 벤, 해미의 만남과 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그린 영화 '버닝'(이창동 감독, 파인하우스 필름 제작). 한국 영화로는 유일하게 제71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버닝'이 16일 오후 6시(현지시간) 프랑스 칸 뤼미에르 극장에서 열린 공식 상영회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됐다.
이날 공개된 영화에서 가장 관객의 눈길을 끄는 이는 단연 주인공 종수 역의 유아인이었다. 후줄근한 옷과 무기력한 얼굴로 가장 먼저 얼굴에 등장하는 낯선 그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차가운 화명을 가득 채운 낯선 잿빛의 종수는 점점 '스타 유아인'의 모습을 지우고 공허하고 텅빈 청춘의 모습으로 관객의 가슴 속에 파고든다.소설가를 꿈꾸지만 유통회사를 전전하며 점점 자신의 꿈과 멀어져 가는 종수. 답답하고 답이 없는 가족. 나이질 것 같지도, 나아질 수도 없는 현실 속에 살던 그는 어느 날 어린 시절 친구였던 혜미(전종서)를 만나게 되고 잿빛 인생에서 잠시나마 따뜻한 미래를 바라보기도 한다. 혜미의 좁은 자취방에 스며드는 햇빛 바라보고 또 바라보는 것처럼. 시종일관 무표정하고 무기력한 종수의 표정에서 수줍게 사랑을 느끼는 청년의 예민함을 미세한 표정과 눈빛의 변화만으로 표현해내는 유아인의 연기는 감탄을 자아낸다.
유아인의 이런 연기가 놀라운 건 그가 이전에 보여줬던 스타일의 연기와 180도 다르기 때문이다. 2015년 영화 천만관객을 동원한 영화 '베테랑'(류승완 감독)을 비롯 '사도'(이준익 감독), SBS '육룡이 나르샤', tvN '시카고 타자기' 등 그동안 출연했던 유아인의 연기는 화려하고 강렬했다. 하지만 '버닝'에서 유아인은 크고 강렬하고 센 표현 하나 없음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연기로 최대한의 표현력을 보여줬다.앞서 유아인은 칸서 영화 공개에 앞서 4일 한국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이 같은 연기를 예고한 바 있다. 그는 '버닝'에서 선보인 연기를 "어떤 강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이었다"며 "어린 나이에 데뷔해 비교적 많은 작품을 해왔는데, 그러다보니 화려한 표현, 다이나믹한 표정 등에 대한 강박이 있었다. 잘하고 싶어서 안달하고 애쓰던 순간들, 그걸 전달하기 위해서 표현에 대한 강박이 생겼고 강박으로 인해 외향적으로 변한 제 관성에서 벗어나려 했다. 감독님도 그걸 벗어나서 느낌 위주로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연기하는 게 이번 연기에 과제였다"고 설명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