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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인터뷰] 한비야 "예순의 결혼…상사였던 남편, '면도칼' 같았어요"

박현택 기자

입력 2018-01-22 12:15

수정 2018-01-22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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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비야 "예순의 결혼…상사였던 남편, '면도칼' 같았어요"


[스포츠조선 박현택 기자] '이 남자 앞에서는 벌벌 떨었어요'



'바람의 딸', 국제구호활동 전문가 한비야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교장이 결혼했다.

한 교장은 작년 11월 10일 서울의 한 성당에서 네덜란드 출신 긴급구호 전문가 안토니우스 반 쥬드판 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가족과 '절친' 30여명 만을 초대해 치른 스몰웨딩. 언론에 떠들썩하게 알리지 않았다. 그림 같은 결혼식보다는 '한비야 답게' 작지만 의미있는 자리로 평생의 연을 맺었다. 한비야는 22일 스포츠조선에 "엉덩이에서 불이 난다"며 웃었다. 신혼의 단꿈보다는 박사과정 논문 작성에 열중하느라 책상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그의 말 역시 한비야 다웠다.

한비야와 남편의 첫 만남은 1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비야는 "남편과는 2002년 겨울, 아프가니스탄 북부 헤라트의 긴급구호 현장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중동지역 전체 팀장이었고, 나는 '햇병아리'였다. '보스의 보스'였으니 꽤 높은 분이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일터에서의 남편, 당시 '보스'는 눈물이 없었다. 그는 구호현장에서 마음 약해지곤 하던 한비야에게서 눈물을 걷어간 사람이다. 한비야는 "부모를 잃은 아이, 배고픔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면 감정적인 눈물을 흘리곤 했는데, 그것이 그들에게 '거짓희망'을 줄 수 있는 것임을 안토니우스로부터 배웠다"고 말했다.

이어 "마치 '면도칼'처럼 매우 엄격하고 무서운 분이었다. 남편이 된 지금은 자상하고 다정한 사람이지만, 당시 잠시의 실수로 몇 만명이 피해를 볼 수 있는 직책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열정과 프로정신이 강했던 분"이라고 소개했다.

한비야는 이어 "당시 중동 지역에 긴급 구호 상황이 빈번하게 벌어졌다. 이라크 전쟁도 있었고, 이란에서는 큰 지진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안토니우스를 현장에서 자주 만나게 되었고, 그에게 업무적으로 자문을 구하고, 가르침을 얻었다. 내게 '프로페셔널 멘토'가 되어줬던 분"이라며 "이후에는 서아프리카의 말리에서 근무 중 안토니우스를 다시 만났다. 세계의 많은 구호 현장과 협력회의에서 공용어인 영어를 사용하는 반면, 말리는 문건과 회의를 불어로 진행했기 때문에 적지않은 난항을 겪고 있었던 시절"이라며 "마침 안토니우스가 영어와 불어, 독어까지 구사하는데다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어, 다시 한번 큰 도움을 얻었다"고 말했다.

'천생연분' 이라는 기자의 말에 크게 웃은 한비야. 인연은 끝이 아니었다. 그는 "결정적으로 안토니우스와 나를 '부부'로 맺어 준 것은 UN이었다"며 "2012년, UN 자문위원으로 근무하고 있을 당시, 뉴욕과 제네바에서 회의를 많이 했는데, 마침 안토니우스가 국제기구 디렉터로서 제네바에서 근무 중 이었다. 자연스럽게 6개월에 한번씩 그를 만나게 됐다"며 "하루는 안토니우스가 '이 분야는 점점 더 프로페셔널해 진다'며 석사 학위를 권유했다"고 말했다.

한비야는 멘토의 조언을 따랐고, 터프츠 대학(Tufts Unibersity의 플래쳐 스쿨 (Fletcher School)에서 인도적 지원에 관한(Master of Arts in Humanitarian Assistance) 석사 학위를 얻었다.

한비야는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훌륭했던 선택"이라며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KOICA), 외교부 국제개발협력위원회, UN 자문위원회 등에서 활동할 때 '어깨너머로 배운 현장'의 생생함뿐 아닌 '학위를 바탕으로 한 연구'가 뒷받침 되었을 때, 나의 주장이 정책으로 반영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됐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실 공부를 하느라 엉덩이에 불이 날 지경인데,(웃음) 좋은 성과를 위해 이렇게 박사과정까지 공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부부는 당분간 네덜란드와 한국을 오가며 지낼 예정이다. 긴급구호 전문가인 두 사람은 최근의 남북 관계와 관련해 북한에서 국제 사회에 인도적 지원을 요청하면 한걸음에 달려갈 계획. '바람의 딸'은 '남편의 국제적 지식과, 나의 한국적 감각'을 보태어 실질적인 북한 지원 사업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한비야는 "20~30대에 만나 아이를 낳고, 사는 것이 전통적인 모습의 가정이라면, 나와 남편은 60이 넘은 나이에 만났다. 남편과 함께 책을 쓰려고 하는데, 제목은 '환승역에서'라고 정해뒀다"며 "현장에서 서로의 '베스트'뿐 아니라 '워스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았음에도 좋은 친구사이가 된 우리는 '진정한 친구'다. 앞으로 30년동안 '짭짤하고 행복하게' 살면서, '유명해지기'보다 '내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에 대해 계속 공부 할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한 교장은 약 7년간 세계 오지 마을을 다니며 겪은 경험을 담은 여행기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등을 통해 오지 여행가이자 국제 난민 운동가로 이름을 알렸다.

2009년 한국대학신문과 캠퍼스라이프가 전국 200여개 4년제 대학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2011년 코이카 자문위원을 거쳐 현재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ssale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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