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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천하] '복면무사'들은 어떻게 주말 저녁을 평정했나

최보란 기자

입력 2015-07-29 09:14

수정 2015-07-30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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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면무사'들은 어떻게 주말 저녁을 평정했나


[스포츠조선 최보란 기자] '무릇 예능천하를 읽지 않은 자와는 '무도'를 논할 수 없다,했다.' 지상파 채널은 물론, 신흥 세력으로 떠오른 종편과 케이블 채널까지 현대 예능은 춘추전국시대. 시청률 경쟁이 과열될수록 예능인들의 삶은 더 치열해지는 법. 난세가 영웅을 낳는다고 했던가. 9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유재석,강호동,신동엽, 이경규,이휘재를 비롯해 윤종신, 유희열, 성시경에 이르기까지 흥망성쇠로 본 예능 영웅담을 펼쳐본다.



을미년(2015) 4월, 주말 예능 전장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복면 무사가 홀연히 등장했다. '복면가왕'이라는 이름의 그는 음악쇼인지, 토크쇼인지 헷갈리는 정체성으로 보는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미스터리 음악쇼'라 스스로를 소개했으나, 그 이름이 생소하여 힘과 기술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키가 어려웠다.

전장에는 일찌감치 영역을 나누고 싸움을 벌이던 두 장수가 있었는데, 한국방송파의 '슈퍼맨이 돌아왔다'와 서울방송파의 '아빠를 부탁해'였다. 이들이 방심한 틈을 타 등장한 '복면가왕'은 그야말로 '복병'이었다. '복면가왕'은 마치 변검이라도 보여주듯이, 매번 화려한 가면에 수상한 이름을 지닌 자들을 내보냈다. 이들의 알쏭달쏭한 정체로 궁금증을 자극하고, 듣기 좋은 노래로 귀를 현혹해 상대의 혼을 쏙 빼놓았다. 그의 무공은 가벼이 볼 것이 아니었다.

'복면가왕'의 공격술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었는데, 첫 번째는 '변장술'이다. 형형색색의 가면으로 노래하는 이의 정체를 감추니 보는 이들마다 궁금해 했다. 가면 모양은 물론, 이름 또한 기발해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자체검열 모자이크', '황금락카 두통썼네', '철물절 김사장님' 등이 그 예다. 가면은 외형만 화려한 것이 아니었다. 노래를 부를 때 불편함이 없도록 인체공학적인 설계까지 살폈다니'명품'이 따로없다. 이 가면은 남자를 여자로 바꾸는 둔갑술(백청강)까지 선보여 보는 이들을 놀라게 했다.

두번째는 목소리를 바꾸는 '변성술'이었다. 가면 쓴 자들은 얼굴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 목소리까지 바꾸는 신공을 선보였다. '복면가왕'은 승부보다는 과정에 무게를 두는 음악 예능. 출연자들도 우승하겠다는 의지보다는, 정체를 숨기고 함께 무대를 즐기겠다는 생각으로 참가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 목소리가 많이 알려진 가수들의 경우에는 기존에 보여주지 않은 곡조에 도전하거나 음색을 바꿔 부르니, 정체를 알고 봐도 놀랍더라.

세번째는 '조명술'이다. 가면 뒤에는 예상을 뛰어넘는 출연진들이 등장했다. 알만한 사람 다 아는 안재모와 홍석천이었건만, 목소리만 듣고는 누구도 그 정체를 쉽게 맞히지 못했다. EXID 솔지, 스피카 김보아, 여자친구 유주 등 숨어있던 보물들도 자태를 드러냈다. 재야에 숨어 있던 고수들을 발견하는 조명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 이 조명술 덕에 존재감을 드러낸 가수들은 또한 '복면가왕'의 내공에 보탬이 되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예능이다.

단기간에 무림의 고수로 급부상한 '복면가왕'은 사실 이름 없는 떠돌이 무사였다. '복면가왕'은 일찍이 박원우, 안영란, 문아름이라는 세 작가들이 의기투합해 기획했는데, 그 가능성을 알아보고 선뜻 영입하는 문파가 없어 3년을 표류했다고 한다. 이때 '복면가왕'의 진가를 알아보고 작가들을 지금의 민철기 PD와 연결시켜 준 이가 있으니, 붐이라는 자였다. 박 작가는 그날의 기억을 더듬어 "붐의 연결로 우연한 기회에 MBC에서 파일럿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여러 코미디와 음악 프로그램을 연출했던 민철기 PD가 우리의 편이 돼 주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코믹 감성과 화려한 쇼 연출이 어우러져 오늘의 '복면가왕'이 되었다"고 회상했다.

민철기 PD는 본래 코미디를 연출하겠다는 의지로 방송가에 입문했다. '복면가왕' 간담회에 복면을 쓰고 등장한 것만 봐도 코미디에 대한 그의 애정이 짐작된다. 음악 예능에 대한 민 PD의 감각은 이미 '웃고 또 웃고'(2011)에서 '나도 가수다'라는 코너를 통해 한 차례 드러난 바 있다. '나는 가수다'를 패러디한 이 코너를 선보였는데, 정재범(임재범), 방정현(박정현), 옥수역(옥주현), 이소다(이소라), 천엽(정엽) 등이 등장해 큰 웃음을 선사했다. 이처럼 일찍이 음악과 코미디의 결합을 꿈꾼 민 PD와 '복면가왕'의 만남은 필연이 아닐까.

아무리 기획이 좋고 연출이 좋아도 출연진들의 활약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을 수 없는 법. '복면가왕'은 지금껏 5명의 가왕을 탄생시켰다. 파일럿 방송의 솔지(자체검열 모자이크)를 비롯해 1~2대 가왕 루나(황금락카 두통썼네), 3대 가왕 진주(딸랑딸랑 종달새), 4~7대 가왕 김연우(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 노래왕 퉁키 등, 아이돌부터 베테랑 가수까지 그 면면이 다양하다. 활동 분야나 인지도에 상관없이 누구든 목소리 하나로 왕좌를 차지할 수 있으니, 노래 좀 한다하는 이들이 '복면가왕'으로 모여들 수밖에 없겠다.

특히 김연우의 경우 뛰난 무려 4연속 가왕에 등극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처음엔 쉬쉬했던 그의 정체는 무대가 반복되면서 점차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정체를 알고도 말하지 못하니 '예능판 홍길동'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그는 뮤지컬부터 창까지 '복면가왕'에서 볼 것이라 예상치 못한 무대들을 선보여 감히 대적할 자가 없었다. 이에 정체가 들통나고도 한동안 왕좌를 지켰다. 그의 저력은 '복면가왕'의 내공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었다. 그런 그를 꺾고 가왕이 된 '노래왕 퉁키'는 어떠할지, 또 그를 꺾을 다음 가왕은 누가될지. '복면가왕'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는 끝이 없다.

이렇듯 살펴보니 '복면가왕'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혜성이 아니라, 오랫동안 때를 기다렸다가 마침내 솟아난 화산이다. 3년을 숨죽여 기다려 온 복면무사가 때를 만나 불길을 뿜어내니, 운증용변(영웅호걸이 기회를 얻어 일어남)이라 할 만하다. 특히 '복면가왕'의 얼굴은 아직까지 다 드러나지 않았기에, 복면 안에 또 어떤 매력을 감추고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여담이지만, '복면가왕'은 오는 9월3일 생중계되는 제42회 한국방송대상 시상식에서 연예오락TV 부문 작품상을 받는다 한다.시상식에는 보통 메인 연출자가 나와 상을 받아 가는데, 민 PD가 이 때문에 뜻하지 않게 고민에 빠졌다는 소문이다. '복면가왕' 제작발표회 당시 패널인 김구라가 "시청률 20%를 넘으면 PD의 얼굴을 공개하겠다"는 공약을 걸었기 때문.(현재 자체 최고 시청률은 16.3%, 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시상식 때까지 시청률이 20%를 넘어설지는 또 모를 일이나, 현재로선 민 PD가 시상식에서 얼굴을 드러낼지도 은근히 시선이 모아지는 대목이다.(계속)

ran613@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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