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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감독, 선수들 체면 위해 칼 빼들었다

김용 기자

입력 2014-04-24 07:59

수정 2014-04-24 18:21

김기태 감독, 선수들 체면 위해 칼 빼들었다
8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프로야구 롯데와 LG의 주중 3연전 첫 번째 경기가 열렸다. 경기 전 LG 김기태 감독이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고 있다. 부산=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4.04.08

"우리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가오' 떨어지는 모습은 보이지 맙시다."



먼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사과의 말부터 전한다. '가오(かお·顔)'라는 말은 '폼, 체면' 등을 의미하는 속어이다. 일본어에서 얼굴이라는 의미를 가진 '가오'에서 유래했다. 웬만해서는 기사에 담아서는 안되는 단어인 줄 잘 안다. 하지만 LG 트윈스 김기태 감독의 야구를 설명하려면 이 단어를 동원할 수밖에 없다. 김 감독이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기 때문이다. 이 설명 이후에는 체면이라는 단어로 바꿔 쓰도록 하겠다.

김 감독이 23일 전격 사퇴했다. 아무리 팀이 어렵다고 해도 지난해 팀을 정규시즌 2위로 이끈 감독이 18경기를 치르고 자진 사퇴의 뜻을 밝혔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김 감독의 스타일을 안다면,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프로선수, 지도자로서 체면과 자존심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잃어서는 안된다는 그만의 야구 철학이 이런 빠른 결단을 내리게 했다.

김 감독이 선수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바로 '체면'이다. 예를 들면, 에이스인 류제국이 투구 내용이 좋지 않았다. 그러면 다음날 훈련을 마치고 지나가는 류제국을 불러 세운다. 그리고 '제국아, 너 어제 체면 많이 떨어졌다'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어준다. 끝까지 류제국을 밀고 가다 실점이 늘어났다. 김 감독은 "우리팀 에이스다"라는 말 한 마디로 교체 타이밍에서 그를 고집한 이유를 밝힌다. 다음 등판에서 체면을 꼭 세우라는 메시지다.

말로만 하는 게 아니었다. 실제로 선수들의 먼 미래를 바라봤다. A 투수가 전날 불펜에서 나와 결정적인 순간에 적시타를 허용했다. 선수로서 자신감이 땅으로 꺼지는 순간이다. 보통 감독들은 이렇게 무너지는 투수들을 믿지 않고 다음 경기에 등판시키지 않거나, 2군으로 보낸다. 하지만 김 감독은 다음날 경기에 바로, 전날 안타를 때린 타자를 상대하게 한다. 이 승부에서 그 선수를 넘어 자신의 체면을 세우라는 의미다. 한 경기 승패, 그리고 한 시즌 결과를 놓고 얘기한다면 이는 굉장히 무모한 작전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1패, 2패가 시즌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 초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김 감독의 생각은 확고했다. 당장 팀 성적과 자신의 거취도 중요하지만, 그 선수가 아픔을 스스로 극복하는 것으로 더 큰 선수가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대구에서 삼성과의 시범경기 2연전이 열리던 때였다. 김 감독은 강상수, 박석진 투수코치와 함께 모처에서 소주잔을 기울였다. 어느 정도 술이 들어가자 김 감독은 두 코치에게 "올해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갑자기 꺼내더니 "우리가 조금 힘든 일이 있어도, 절대 체면 떨어지는 모습을 남들 앞에서는 보이지 말자"고 말했다. 감독 입장에서 팀 사정을 잘 알고, 그리고 프로야구 판도를 봤을 때 분명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그 위기가 찾아올지 몰랐다.

선수들이 심기일전 하겠다며 모두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경기장에 나왔다. 김 감독 입장에서는 참 미안한 일이었다. 자신의 잘못 때문에 선수들이 체면을 구겼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아닌 김 감독 입장에서 큰 수치였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팀은 바뀔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 '체면'을 위해 칼을 꺼내들었다. 김 감독은 때가 됐다고 확신이 섰을 때,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지는 식의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주변의 만류 같은 건 소용 없었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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