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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최숙현 사건,징계 비껴간 '가짜 팀닥터'…'비인기종목' 채용 허점이 빚은 참극

전영지 기자

입력 2020-07-07 11:01

수정 2020-07-07 12:15

故최숙현 사건,징계 비껴간 '가짜 팀닥터'…'비인기종목' 채용 허점이 빚…


6일 밤 대한철인3종협회 스포츠 공정위원회가 고(故) 최숙현 선수에게 가혹 행위를 한 혐의를 받는 지도자, 선수에 대한 중징계를 결정했다. 경주시청 김 모 감독과 '여자 선배' A선수가 영구제명, '남자 선배' B선수가 10년 자격정지의 중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폭행, 폭언 등 혐의에 잇달아 연루된 일명 '팀 닥터' C씨만 유독 징계를 피했다.



자칭 '팀 닥터'인 운동처방사 C씨는 대한철인3종협회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공정위 규정상 징계 대상이 아닌 탓이다.

6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서 고인에게 폭력을 가한 '그 사람', 끔찍한 녹취록 목소리의 주인공으로 지목받고 있는 의문의 '팀 닥터'는 의원들 사이에 중요한 화두였다. 팀 닥터에 대한 잇단 질의에 고 최숙현 사망사건 특별조사단장을 맡은 최윤희 문체부 2차관이 "팀 닥터에 대한 정보는 없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이 부분에 대해선 정보가 없다"고 답하자 도종환 문체위원장이 "이 자리에 나오신 책임 있는 분들이 모르면 회의를 어떻게 진행하느냐. 누가 답변 좀 해보시라"며 격분했다.

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감독과 선수들이 완강히 혐의를 부인하는 가운데, 고인과 고인의 동료, 감독과 선수들이 유일하게 공통적으로 '가해자'라 말하는 이가 팀 닥터다. 고 최숙현 선수의 고소장에 "체중이 늘었다며 20만 원어치 빵을 사오게 한 다음 고소인 포함 다른 여성선수들에게 사온 빵을 억지로 먹고, 토하게 하는 식고문" "뉴질랜드 전지훈련 현장에서 이빨을 깨물라고 한 후 고소인을 포함한 선수들을 반복해서 구타하고 욕설, 협박한 가혹행위" 등 주요 혐의의 중심에 어김없이 그의 이름이 흘러나온다.

고인에 대한 C씨의 폭력을 말렸다고 주장하는 김 감독은 "2008년 경산의 ○○내과에서 일할 때 처음 알게 됐다. 병원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격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지난 5월 조사과정에서 운동처방사 2급 자격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정식 면허증도 없이 병원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하고, 스스로 '닥터'를 사칭했다면 이 또한 심각한 위법 행위다. 6일 고 최숙현의 동료로 직접 기자회견에 나선 2명의 선수들은 "팀 닥터는 자신이 대학교수라고 말했으며 수술을 하고 왔다는 말도 자주 했다"고 증언했다.

취재 결과 C씨는 경북 대구 경산 일대 학교, 실업팀, 지도자, 선수 사이에서 꽤 알려진 인물이다. 한 관계자는 "쉽게 말해 선수들 마사지를 해주는 트레이너다. 경산의 한 병원에서 실력이 뛰어나다고 입소문이 났다. 본인도 그 부분에 있어 자신감이 넘쳤다. 특히 철인 3종처럼 부상이 잦고 근육이 뭉치는 종목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이를 과시하고, 선수들을 좌지우지하게 되면서 본인이 코치, 감독 이상의 권력을 휘두르게 된 것같다"고 비정상적인 상황을 설명했다.

'비인기 종목 중에서도 비인기 종목'인 철인3종의 현장은 열악하다. 관심과 감시의 눈길과도 거리가 먼, '그들만의 리그'다. 말 그대로 '철인'의 종목인 선수단의 경기력 유지, 부상 관리를 위해 전문 트레이너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지방 체육회 예산으로는 어림도 없다. 재정적 이유로 감독, 코치 외 추가 인력인 트레이너의 정식 고용은 힘든 것이 대다수 비인기 종목 팀들의 현실이다.

이 부담은 결국 고스란히 선수와 부모에게 돌아간다. 감독이 팀 운영 예산을 전용해 이 비용을 빼내거나, 선수들이 치료비용을 갹출해 트레이너의 월급을 맞추는 비정상적 구조가 발생한다. 실제로 고인을 비롯한 선수 부모들이 월 100만원의 치료비를 입급했다. 여준기 경주시 체육회장은 "돌아가는 시스템을 몰랐다. 처음에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다가, 나중에는 개인비용을 지급하고 운동시간에 받았다. 관리가 미비했다"고 답했다. 왜 체육회에 정식으로 트레이너 고용을 요청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김 감독은 "전지훈련 때 요청했지만 예산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감독으로서 더 노력해서 선수들에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했는데 제 잘못"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감독이나 선수가 정식 공모나 채용 절차 없이 '알음알음' 트레이너를 데려오고, 지역 체육회도 몰랐던 '2급 운동 처방사'가 버젓이 '팀 닥터' 행세를 하고 선수 위에 군림하는 어이없는 일은 이렇게 시작됐다. 선수의 몸을 직접 만지고, 선수의 컨디션과 경기력을 좌우하는 전문직인 만큼 트레이너의 자질과 자격 검증은 선수 보호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절차다.

이 용 의원실에 따르면 경주시청을 거친 선수는 27명, 현재 폭력에 노출된 적이 있다고 답한 이만 무려 15명 이상이다. 현재 지병 치료 중인 것으로 알려진 '운동처방사' C씨는 연락 두절, 행방이 묘연한 상황이다. 대한철인3종협회는 C씨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을 준비중이다. 경주체육회는 7일 "C씨를 성추행 및 폭행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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