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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동호회·취미 : 이북음식매니아] 담백함을 즐기며 '완냉'…"北 지역음식 투어 희망"

장종호 기자

입력 2019-06-03 10:30

수정 2019-06-04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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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백함을 즐기며 '완냉'…"北 지역음식 투어 희망"
북한 음식을 좋아해 뭉친 동호회 '이북음식매니아'. 한 회원은 면 위에 제육이나 편육을 올려 함께 먹으면 평양냉면을 더욱 맛있게 즐길 수 있다고 전했다. 사진제공=이북 음식 매니아 회원 정영민

#. 지난해 4월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 회담의 만찬 메뉴에 옥류관 냉면이 오르자 서울시내 냉면전문점들 앞은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 올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두번째 만난 북미 정상은 배속김치를 곁들인 소고기 등심구이 등의 메뉴로 만찬을 즐겼다.

이처럼 정상회담 특수를 타고 북한의 대표 음식들이 전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으며, 국내에서도 자연스레 북한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런 가운데 북한 음식을 경험해보고 싶은 이들이 모여 만든 '이북 음식 매니아' 동호회가 주목받고 있다. 동호회로부터 북한 음식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심심한 냉면 육수는 간장 때문…호기심과 그리움에 동호회 활동

'이북 음식 매니아'의 회원은 현재 약 900명 가량. 남녀의 비율은 5대5이며, 주 연령층은 40~50대이다.

순수 동호회인 이 곳은 매 짝수 달 3번째 주말에 정기모임을 갖고 있으며, 종종 지역별로 번개모임을 열어 '완냉(냉면 한 그릇을 다 비우는 일)'을 한다.

이들이 북한 음식으로 뭉친 이유는 무엇일까.

회원들은 '호기심'과 '그리움'을 우선 꼽는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회원들은 아직 가보지 못한 미지의 땅인 북한 음식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일부 새터민 회원들은 고향땅의 입맛을 잊지 못해 동호회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동호회 '이북음식 매니아'의 대표인 고요한씨(개인사업)는 "평소 냉면을 좋아해 자주 먹던 중에 냉면의 원산지인 북한 음식까지 관심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새터민(북한 이탈주민) A씨는 "고향이 그리울 때마다 생각나는 음식을 먹고 싶어서 가입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밖에 다른 회원들은 "냉면 맛집을 찾다가", "냉면집 개업을 위해", "북한 음식 요리가 궁금해서" 등의 동호회 활동 이유를 들었다.

동호회는 북한 음식 전문점에 대한 정보를 포털 검색이나 TV를 통해서 접하기도 하지만 주위의 추천, 회원간 정보 공유 등을 통해 얻는다.

고 대표는 "새로 영업을 시작한 전문점이 있으면 회원들이 방문해 위치 및 가격 뿐만 아니라 맛에 대한 평가와 사진을 함께 게시한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판매하고 있는 북한 냉면은 실제 고유의 맛과 차이가 있다는 평가가 많다.

가장 큰 차이점은 심심한 국물 맛에 있다. 북한 냉면의 경우 고사성어인 '대미필담(大味必淡, 정말 좋은 맛은 담백한 것)'에 딱 어울리는 음식이라는 것.

평양냉면 육수의 경우 한국과 북한 모두 소고기·돼지고기·닭고기 등을 우려내 동치미 국물을 섞는 것에 있어서는 비슷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간을 소금으로 주로 하는 반면 북한에서는 무와 간장을 넣어 끓인 물로 소금을 대신한다. 이로 인해 북한식 평양냉면이 더 담백하고 심심한 맛이 느껴지는 것이라고 한 새터민은 귀띔한다.

또다른 차이점은 한국의 경우 육수를 얼린 채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인 반면 정통 평양냉면은 얼음이 없는 찬 육수 그대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흔히 함흥냉면은 비빔냉면을 대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북한의 회국수가 한국에 정착하면서 이름이 바뀐 경우다.

회국수가 남한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더 매콤한 비빔냉면으로 개조된 음식이라는 것. 북한식 정통 회국수에는 주로 명태회무침이 고명으로 올라가지만 한국에서는 명태회 뿐만 아니라 간재미 등 다른 생선무침이 가미되기도 한다.

사실 북한식 정통 함흥냉면은 평양냉면처럼 물냉면이지만 면발의 차이가 있다.

평양냉면은 메밀에 녹말을 넣어 국수로 뽑아내는 반면에 함흥냉면은 감자의 전분을 이용해 면을 만든다.

한 새터민은 "그동안 북한 정통 냉면은 조미료를 사용하는 남한식 냉면과 맛의 차이가 분명했지만 최근엔 북한에서도 조미료를 사용하기 시작해 앞으로 맛의 변화가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냉면에만 치중 아쉬워…교류땐 북한의 지역 음식 맛보고 싶어

회원들이 느끼는 한국에서 영업중인 북한 음식 전문점에 대한 아쉬움은 무엇이 있을까.

이들은 북한 음식점들이 너무 냉면에만 치중돼 있다는 점을 꼽는다.

고 대표는 "재료의 차이 뿐만 아니라 너무 한국식으로 개량돼 정통의 맛을 보지 못한다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다른 회원은 "한국화된 식당은 메뉴의 가격이 너무 비싸게 책정돼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해외에서 맛본 북한 음식도 한국에서와 큰 차이는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회원은 "구색만 갖췄을 뿐 북한 정통의 맛은 기대하기 힘들다"면서 "현지 국가의 입맛에 맞춘 외화벌이 수단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회원들은 북한 음식을 맛있게 먹는 노하우가 있을까.

이에대해 고 대표는 "냉면이나 만두의 경우 먼저 아무 것도 가미하지 않고 그대로 본연의 맛을 보고 이후 면에 식초를 살짝 둘러서 먹으면 맛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고 전했다.

또다른 회원은 "제육이나 편육을 시켜 냉면 위에 얹어서 함께 먹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선주후면(先酒後麵)'을 꼽는 이도 있었다.

이는 '먼저 술을 마시고 국수를 먹는다'는 의미이며, 조선 후기 평양의 명물을 소개하는 고서에도 '고기안주에 술을 마신 뒤 취기가 오르면 속풀이로 냉면을 먹는다'고 소개돼 있다.

한 회원은 "그 맛이야 말로 진정한 평양냉면의 진수"라고 설명했다.

동호회는 최근 경색된 남북관계가 서둘러 진전이 있기를 기대한다.

이들은 "북한 방문이 활성화되면 평양·함흥·해주 등 지역별 원조 냉면의 맛을 보고 싶다"면서 "또한 옥류관 평양냉면 뿐만 아니라 지역별 특색있는 음식을 경험하고 싶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회원들은 특별한 즐거움도 경험한다.

고 대표는 "회원들 모두 북한 음식이라는 공통된 주제로 모였기 때문에 대화가 잘 통하며 이를 통해 인간애를 서로 나누고 있다"면서 "냉면 하나로 밤새며 토론할 때 새로운 재미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회원분이 북한 음식점을 오픈하는 경우도 있는데 다른 회원들이 응원하고 격려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고 대표는 "북한 음식이 일부 실향민과 새터민만의 음식이 아닌 전 세대가 경험하고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북한 음식이 낯설어도 한 두번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접하다보면 종종 생각나는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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