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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우 기자의 제철미식기행=영덕 옛날식 불고기>

김형우 기자

입력 2017-11-06 16:08

<김형우 기자의 제철미식기행=영덕 옛날식 불고기>
경북 영덕의 옛날식 불고기

짧은 가을이 아쉽기만 하다. 벌써 입동(11월 8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사계절은 '제철미식거리'라는 보물을 쏟아 내주니 계절의 변이가 마냥 섭섭하지만은 않다.



겨울에 들어서면 동해안 영덕 포구일원에는 싱싱한 대게가 등장한다. 하지만 앞으로 한 달, 12월 초순까지는 이른바 '물빵'이라고 해서 속이 덜찬 대게가 주로 잡힌다. 그러니 초겨울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속이 꽉 찬 국산 대게보다는 러시아산이나 홍게가 더 많다.

정작 대게 맛을 보기 위해 경북 영덕을 찾았어도 대게나 해산물만을 여러 끼니 맛보기에는 좀 지겹다. 영덕에는 이 같은 아쉬움을 달랠 만한 괜찮은 메뉴가 있다. 불고기다. 동해안을 찾아 웬 불고기인가 싶겠지만 영덕의 한 식당에서 내는 옛날식 한우불고기맛은 나름의 풍미가 있다. 특히 경북지방은 예로부터 한우가 유명한 곳이다. 경주, 군위, 상주, 안동, 영주 등지에서는 육질 좋은 한우가 많이 생산된다.

대체 영덕의 '옛날식' 불고기는 어떤 맛일까. 가장 큰 차이는 식감이다. 요즘 시중에서 맛보는 불고기는 얇게 켠 육질이 마냥 부드럽기만 하다. 하지만 영덕의 것은 씹을 거리가 있다. 고기를 좀 더 도톰하게 자르니 육질이 더 쫄깃거리고 구수하다. 거기에 3년산 황소육을 쓰고 있다니 육질이 살짝 질긴 편이다. 이를 두고 식성에 따라서는 맛에 대한 평가가 분분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번 그 맛을 본 이들은 '오히려 옛날 소고기 식감이 느껴져 좋다'고도 평가한다.

불고기는 대체로 양념 맛이다. 영덕의 옛날식 불고기의 양념은 단출한 편이다. 간장에 마늘다짐, 설탕, 실파와 양파가 전부다. 얇게 썰어둔 살코기와 양념을 버무려 접시에 내오면 손님들이 사골육수를 부어가며 불고기를 조리해 먹는다.

불고기에 당면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집도 당면과 시금치, 팽이버섯을 듬뿍 준다. 시금치의 파릇한 기운이 불판에서 익어 가는 소고기와 어우러져 더 먹음직한 시각적 효과를 준다. 계란 노른자도 이 집 불고기의 특징이다. 잘 익은 불고기를 계란 노른자와 간장 소스에 함께 찍어 먹는 맛이 부드럽고 고소하다.

불고기의 백미는 불판 가장자리에 보글보글 끓고 있는 달큰한 국물이다. 육수와 갖은 양념이 고루 섞인 국물에 밥을 비비고 볶아 먹는 맛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영덕의 옛날식 불고기는 굽는 불판이 좀 다른데, 불고기 전용 냄비로 양은 냄비에 가깝다. 편편 넓적한 바닥의 가운데는 산처럼 우뚝 솟아 있고, 냄비의 턱은 높여 육수를 듬뿍 넣고 끓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맛깔스런 육수에 구운 불고기를 촉촉이 적셔 먹기가 편하다.

친정어머니로부터 딸로 이어지는 60여 년 손맛이라는 이 집의 밑반찬은 콩나물 무침과 김치 등 단출한 편이다. 이들 밑반찬과 야채 등을 넣고 함께 볶는 퓨전식 불고기도 맛이 괜찮다.

불고기는 조선 정조대왕 시절, 18세기 후반부터 조선 상류사회에 처음 보급된 것으로 알려진다. 요즘 아이들이야 심드렁하게 여길 법한 음식이지만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아무 때나 맛볼 수 없는 특식이었다. 그래서일까. 더 맛난 음식이 지천에 널린 시절을 만났음에도 장년세대에게 불고기란 여전히 각별하게 다가온다. 음식은 무릇 추억이 절반이기 때문이다. 김형우 문화관광전문 기자 hwkim@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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