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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우 기자의 제철 미식기행= 밴댕이>

김형우 기자

입력 2017-05-22 16:21

<김형우 기자의 제철 미식기행= 밴댕이>
밴댕이회

보리가 누릇누릇 익어가는 오뉴월은 맛난 별미거리가 쏠쏠하다. 광어, 도미, 꽃게, 갑오징어… 이름만 들어도 침이 고이는 싱싱한 해산물이 제 맛을 자랑하는 때다.



특히 강화, 부안, 군산 등 서해안 주요 포구에서는 이 무렵 '밴댕이'가 맛있는 미식거리로 등장한다. 밴댕이는 비록 작고 볼품없지만 산란기를 맞아 기름기가 오르는 음력 5~6월에 가장 맛이 좋다. 그래서 '변변치 않지만 때를 잘 만났다'는 것을 빗댄 '오뉴월 밴댕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밴댕이는 길이가 15~20cm 남짓한 작은 바닷물고기이다. 납작 길쭉한 게 멸치보다는 약간 크고, 짙푸른 등에 은백색의 배가 제법 등 푸른 생선의 꼴을 갖추고 있다. 밴댕이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역(汽水域)에서 동물성 플랑크톤을 먹고 사는데, 오뉴월이 산란시기다.

밴댕이는 비린내도 덜하고 그 맛이 고소해서 횟감이나 구이, 젓갈 등으로 먹는다. 말린 것으로는 주로 국물을 내는데, '디포리'가 그것이다.

군산에서는 밴댕이를 '반지'라고도 부른다. 이곳에서는 잘 익은 갓김치에 반지회를 싸먹기도 하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입에서 사르르 녹는 듯 한 부드러운 육질과 갓김치의 매콤 알싸한 맛이 어우러져 입 안 가득 침이 고인다. 특히 붕장어탕 집에만 들러도 탕 한 그릇을 시키면 맛보기로 반지회를 줄 만큼 즐겨 먹는 생선이다. 더 먹고 싶다면 제대로 한 접시를 시켜야 하는데, 일단 몇 점 오물거리면 더 안 시키고는 못 배길 만큼 풍미가 있다.

흔히 속 좁은 사람을 두고 '밴댕이 소갈딱지' 같다는 말도 따른다. 하지만 그 사정을 따져 보면 밴댕이로서는 대단히 억울할 불명예다.

밴댕이는 유달리 수압의 차를 이기지 못하는 물고기이다. 때문에 그물에 잡힌 밴댕이가 물 밖으로 나오면 쉽게 속이 터지고 만다. 이는 밴댕이의 속이 좁은 것이 아니라 속이 약하기 때문인데, 그래서 잡은 후 12시간이 지난 밴댕이는 주로 젓갈용으로 쓴다. 이런 연유로 냉장고가 없던 시절 밴댕이회는 뱃사람이 아니면 맛보기 힘들 정도로 귀한 별미였다. 요즘에는 성어기에 잔뜩 잡아둔 밴댕이를 급랭 시켜두었다가 연중 맛을 보고 있다.

밴댕이는 우리 조상들도 즐겨 먹었다. 조선시대에는 밴댕이를 '소어(蘇魚)'라고 불렀는데, 경기도 안산 포구에 사옹원 소속의 '소어소(蘇魚所)'까지 두었다. 이처럼 궁중에 밴댕이를 진상했을 정도니 작지만 그 맛을 제법 인정받은 물고기인 셈이다. 이익의 '성호사설'에 따르면 소어소는 고려시대부터 운영되었다고 한다.

밴댕이는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도 등장한다. 박지원은 '열하일기'에 자신의 입장을 '반당(伴當)'으로 적었다. 연암은 1780년 청나라 건륭제의 70세 생일 축하사절단 일원으로 북경을 찾게 된다. 이는 정식 외교관 신분이 아니었지만 8촌형인 정사(正使: 대표) 박명원의 후광 덕분이었다. 연암은 자신이 특별한 소임 없이 중국 사신단 일행으로 따라갔던 것을 한가롭게 유람하는 사람, 건달(반당)에 비유했던 것이다.

'사신을 따라 중국에 들어가는 이들은 호칭을 하나씩 얻는다. 통역은 '종사'', 군인은 '비장', 나처럼 한가롭게 유람하는 자제 군관은 '반당(伴當)'이라고 한다. 그런데 반당은 '밴댕이'라는 물고기와 우리말로 소리가 같아서 놀림거리가 됐다'고 적었다.

조선의 왕족인 옥담 이응희도 '옥담사집'에서 밴댕이 맛을 예찬했다.

'단오가 가까워지면 밴댕이가 어시장에 가득 나오는데, 은빛 눈이 마을 여기저기 깔리는 듯하다. 상추쌈으로 먹으면 그 맛이 으뜸이고, 보리밥에 먹어도 맛이 대단하다'고 적고 있다. 김형우 문화관광전문 기자 hwkim@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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