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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냉대받은 마크롱…힐러리처럼 '러스트벨트'에 발목?

입력 2017-04-27 11:25

노동자 냉대받은 마크롱…힐러리처럼 '러스트벨트'에 발목?
(런던=연합뉴스) 황정우 특파원 = 23일(현지시간) 치러진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1, 2위를 차지한 중도신당 '앙마르슈'(전진)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와 극우 국민전선(FN) 마린 르펜 후보는 프랑스를 동서로 양분하며 결선에 진출했다. 프랑스 내무부가 공개한 지역별 최다득표자 분포현황을 보면 마크롱은 프랑스 서쪽에서, 르펜은 프랑스 동쪽을 거의 휩쓸었다. 2017.4.24

프랑스 대선 후보인 에마뉘엘 마크롱(39) 후보가 고향 유세에서 노동자층의 냉대를 받자 내달 7일 대선에서 이변이 연출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현재 여론 조사상으로는 마크롱이 경쟁자 마린 르펜(48) 후보를 큰 표차로 앞서지만 지난해 미국 대선 때 '샤이 트럼프'가 발현한 것처럼 여론조사에 반영되지 않은 '샤이 르펜'이 막판에 결집하며 예상을 뒤집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시각이다.



이런 우려는 지난 26일(현지시간) 마크롱이 고향인 프랑스 북부 소도시 아미앵에서 르펜과 맞붙었다가 '판정패'를 당한 이후로 더욱 커지고 있다.

이날 마크롱은 아미앵을 찾아 노조대표들과 비공개 면담을 했는데 그사이 예고 없이 이 지역에 있는 미국계 가전기업 월풀의 공장을 방문한 르펜은 마크롱이 노조대표를 만나고 있다는 점을 꼬집으며 마크롱을 '친기업 인사'로 몰아붙였다.

마크롱이 황급히 계획을 수정해 월풀 공장을 찾았지만 노동자들은 "대통령 마린 르펜" 등의 구호를 외치며 금의환향한 마크롱을 노골적으로 냉대했다.

이 월풀 공장은 이전 계획이 잡혀 있어 공장 근로자 290여명과 협력업체 직원들이 내년에 일터를 잃을 상황에 놓여 있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이 친기업 공약을 내건 마크롱에 반감을 갖고 있다.




이 일을 두고 일각에선 바닥 민심을 보여준다며 마크롱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미국에서도 쇠락한 공업지역을 일컫는 '러스트 벨트'의 표심이 결국 여론조사 지지율이 더 높았던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발목을 잡고 트럼프 대통령 당선을 결정지은 전적이 있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이런 '러스트벨트' 노동자층에선 르펜 선호 현상이 뚜렷하다.

아미앵의 1차 투표 득표율을 보면 르펜이 30.4%로 마크롱(21.7%)을 압도했다.




노동자 계층에선 글로벌 투자은행 출신으로, 경제장관을 역임한 마크롱을 친기업적 인사로 여겨진다.

실제 마크롱은 경제장관으로 재직 당시 35시간인 주당 근로시간 연장과 정규직 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노동법 개정안을 추진한 바 있으며 이번 대선에서도 법인세를 33.3%에서 25%로 낮춰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경제 공약을 내걸었다.

마크롱은 또 근로시간에 대해 주 35시간을 유지하되 유연성 확대를 허용하고 추가 근무 시 사회보장 혜택을 삭감하지는 않겠다고 해 사실상 근로시간 연장을 가능케 했다.

이는 르펜이 공공분야 계약 시 프랑스 기업에 우선권을 주고 소상공인들에게 대출 이율을 낮춰주는 등 친 노동자적 공약을 내건 것과 대조적이다.

공무원 채용에 있어서도 마크롱은 경찰 공무원 1만명 채용만 내세웠지만 르펜은 1만5천명 신규 채용과 프랑스의 나토 탈퇴에 따라 군병력을 5만명 증대하겠다고 밝혔다.

반이민, 반난민을 기치로 내건 극우 성향의 르펜은 프랑스 국민에게 우선권을 주기 위해 외국 노동자를 고용하면 과세하고, 외국에 있는 프랑스 기업 제품의 수입에 세금을 부과한다는 공약도 냈다.
르펜은 공장에서 "나는 일자리를 잃고 구매력이 없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 프랑스인을 위한 후보"라며 노동자 계층의 대변인임을 자처했다. 이어 트위터에 "내가 있으므로 이들의 일터는 문을 닫지 않을 것"이라는 글을 올리며 자신이 노동자 편에 서 있다는 사실을 재차 강조했다.




이런 뚜렷한 공약 차로 지난 23일 치러진 1차 투표에서 두 후보의 지지층이 분명하게 나뉘었다.

마크롱은 중산층이 주로 거주하는 파리와 수도권에서 높은 지지율을 얻었지만 르펜은 노동자 비중이 높은 북부, 동부, 남부 등에서 우세했다. 이는 마크롱의 지지율 밀집도가 떨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프랑스 언론인 안느 엘리제베스 무테는 지난달 BBC와 인터뷰에서 과거에는 러스트벨트의 많은 유권자가 좌파에 투표하곤 했지만 이번엔 달랐다면서 "그들은 트럼프 지지층과 브렉시트 지지층과 같다. 세계화가 그들을 매우 나쁘게 만들었다고 느낀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 르펜은 소속정당인 국민전선(FN)에 덧씌워진 극우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당수직까지 내던지며 대선 결선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어 마크롱이 안심할 수 없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르펜은 1차 투표 직후 공영방송에 출연 "나는 더는 FN 당수가 아니다"라며 당 대표 사임 의사를 밝히고 "나는 당론에 구애받지 않겠다. 국민 없이, 국민에 반해 행동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대중의 반감을 희석하기 위한 승부수를 띄웠다.

lucid@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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