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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캡틴' 염기훈의 아름다운 '정권교체' 뒷이야기

최만식 기자

입력 2018-01-11 21:16

'영원한 캡틴' 염기훈의 아름다운 '정권교체' 뒷이야기
수원의 영원한 형님 염기훈이 4년간 찼던 주장 완장을 벗었다. 그의 팔뚝을 지켜온 '청백적' 완장은 이제 김은선이 맡는다.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물러날 때를 알아야지요."



수원 삼성의 베테랑 염기훈(35)은 팬들 사이에서 '영원한 캡틴'이라 불린다.

K리그에서 도움, 슈퍼매치 등에 관련해 숱한 기록을 갖고 있지만 이들 못지 않게 의미있는 장외 기록이 있었다.

수원 구단 최초의 4년 연속 주장이다. 수원처럼 전통있는 클럽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장기 집권'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경기력, 인성 등 여러 방면에서 선수, 코칭스태프로부터 신임을 얻어왔다는 방증이다.

그런 염기훈이 올해 아름다운 '정권 교체'를 선택했다. 수원 구단은 그동안 주장 선임에 있어 '선수단 직선-추천' 방식을 적용했다. 선수단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자는 전통이다. 이 방식대로라면 염기훈의 주장 연임은 별 무리가 없었다. 그동안 염기훈이 주장으로서 보여준 자세에 대해 수원 선수들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다.

팀이 위기에 처했을 때 대표로 나서 비난 화살을 감수했고, 구단이 서정원 감독 재계약을 두고 미적거릴 때는 재계약 지지 발언으로 '총대'를 메는 등 카리스마를 보여왔다.

하지만 최근 서 감독과의 면담을 통해 '용퇴'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염기훈은 "어린 후배들이 나를 점점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중요한 시기인데 선수단 의견을 수렴해 코칭스태프에 전달하는 주장은 연결고리가 될 수 있는 중간 고참급이 맡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표팀에서 다시 꽃피우고 있는데 벌써 늙었다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나는 괜찮은데 어린 후배들이 거리감을 느끼는 것 같아서…, 때마침 물려줘도 괜찮을 좋은 후배가 있어서 더 늙었다는 소리 듣기 전에 물러난다"며 웃었다.

염기훈이 서 감독의 요청을 받고 '후계자'로 낙점한 이는 작년에 제대 복귀한 김은선(30)이다. 염기훈은 "김은선은 내가 오래 전부터 지켜봐온 후배이고, 주장으로서 부족함 없다는 판단이 섰다"면서 "(김)은선이는 나와 성격도 다른 것 같아 더 기대된다. 김은선은 나보다 더 쓴소리를 할 수 있고, 그런 만큼 어루만져 줄 수 있는 포용력도 갖고 있다"고 '낙점' 배경을 설명했다.

"올해 새로 들어온 선수가 많아 내부 결속이 더욱 강조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듯 새 주장도 좋을 것 같다"는 염기훈은 지난 4년 동안 FA컵 우승과 '수원더비 눈물사건'을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꼽았다. 이 가운데 2016년 10월 수원FC와의 더비에서 패한 뒤 강등 위기까지 몰렸을 때 성난 팬들 앞에 나서 눈물로 호소했던 일을 더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염기훈은 "그때 정말 힘든 시기였다. 선수생활을 하면서 축하받기 위해 팬 앞에 선 적은 있어도 좋지 않은 일로 나선 게 처음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주장으로서 팬들께 너무 죄송하다"면서도 "그때의 경험이 수원 선수단에 약이 됐던 것처럼 앞으로 후배 주장이 나같은 일을 겪지 않길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제 홀가분하다"는 염기훈은 막상 내려놓으려고 하니 서운한 점도 문득 떠오른다며 농담을 던졌다. "지난 4년 동안 들어오는 선수보다 나가는 선수가 더 많았어요. 올시즌 들어 전력 보강이 가장 잘 된 것 같은데 제가 주장을 맡을 때 그렇게 지원해줬으면 좋았을텐데…. 아닙니다. 한편으론 제가 주장에서 떠나니까 선수 보강이 잘되고 있네요. 뭐죠? 이 기분. 완장 내려놓길 잘한 것 같으면서도 서운한 느낌은?"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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