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고교 시절 제법 알아주던 유망주였다. 지동원(아우크스부르크) 김영욱(전남) 등과 함께 광양제철고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그의 등번호는 10번이었다. 2011년 K리그 신인드래프트 클럽 우선지명에서도 전남의 선택을 받았지만 그의 행선지는 아주대였다. 이 과정이 꼬이며 그는 끝내 학교를 중퇴했다. 일본 무대 등을 노크했지만 이마저 여의치 않았다. 그에게 손을 내민 것이 내셔널리그였다.
2012년 당시 인천코레일(현 대전코레일)의 김승희 감독이 고병욱에게 기회를 줬다. 고병욱은 내셔널리그에서 성인무대 데뷔에 성공했다. 내셔널리그 정상급 선수로 거듭난 고병욱에게 두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2015년 전남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다. 돌고 돌아간 클래식. 하지만 고병욱은 전남에서 5경기 출전에 그쳤다. 다시 한번 선택의 기로에서 선 고병욱은 내셔널리그를 택했다. 서보원 코치의 러브콜을 받아 경주한수원의 유니폼을 입었다.
우여곡절은 고병욱을 더 강하게 했다. 멘탈적으로 더욱 강해졌다. 어용국 감독은 "고병욱은 기본기 부터 근성까지 있는 선수다. 운동장에서 두려움 없이 뛴다. 눈치를 안본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고병욱은 "내셔널리그는 힘들었을때 나에게 자신감을 줬다. 나에게는 특별한 리그"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