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한 상태에서 물을 페트병째 들이마신 뒤 '끄어억' 하는 트림과 함께 빈 병을 우그러뜨리는 연기를, 파혼한 직장 후배를 밑도 끝도 없이 구박하다가 "호텔 뷔페, 기대했어"라고 실토하는 연기를 예지원 말고 누가 저렇게 천연덕스럽게 할까.
예지원(43)이 tvN 월화극 '또 오해영'에서 주체할 수 없는 매력을 발산 중이다.
예지원의 4차원 캐릭터야 익히 아는 바다. 이번에는 완전히 농익은 캐릭터 플레이로 '또 오해영' 인기를 견인 중이다.
◇ 기괴함 섞인 사랑스러운 캐릭터 연기
"회사에서는 과하게 엄한 '마녀 상사'이지만, 저녁에는 과거 향수를 못 이겨서 프랑스어를 하고 하룻밤에 맥주 3만㏄를 먹는 특별한 여인이에요."
남주인공 박도경(에릭 분)의 누나이자, 여주인공 오해영(서현진)의 직장 상사 박수경을 연기 중인 예지원은 최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또 오해영'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낮과 밤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 박수경의 가장 큰 매력이다.
대기업 외식사업본부 이사 박수경의 추상같은 카리스마는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악마 편집장에 뒤지지 않는다. 그는 밤이 되면 머리를 풀어헤친 채 혼자 술집을 전전한다.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는 많다. 하지만 기괴함이 섞인 사랑스러운 연기는 예지원의 독보적인 영역이다.
예지원의 매력은 6회에서 절정에 달했다.
이날도 만취한 채 귀가한 산발의 마녀가 남동생 친구인 이진상(김지석)에게 준엄한 목소리로 "외계인이 올 것 같니, 안 올 것 같니"라고 묻다가, 머리를 살짝 걷어올린 뒤 "언제 온대냐"고 물을 때의 사랑스러움은 오해영의 그것을 능가한다.
◇ '올미다'와 비교 재미도…예지원 "최미자와 박수경은 달라"
극 중 박수경의 나이는 44살이다. 1973년생인 예지원과 같은 또래다.
예지원은 30대부터 드라마와 영화에서 다양한 노처녀 캐릭터를 연기해 왔다.
예지원 하면 특히 12년 전 방송된 KBS 2TV 시트콤 '올드 미스 다이어리'의 32살 방송국 성우 최미자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최미자가 만약 지 PD를 만나지 못했다면, 10여 년이 흐른 지금의 박수경이 됐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하는 시청자도 있다.
'또 오해영'을 집필하는 박해영 작가의 전작이 '올드 미스 다이어리'라는 점도 두 캐릭터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게 한다.
예지원은 이에 대해 "최미자와 박수경은 다르다"면서 "최미자는 (급을 따지면) B급 혹 C급 성우이고 일을 못해서 구박받고 따돌림도 당하는 캐릭터였지만, 박수경은 이사이고 일을 잘한다는 차이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 박수경 개인사 드러나며 흥미↑…연하남 로맨스도 기대
'또 오해영'이 진행되면서 마냥 엉뚱한 캐릭터인 줄 알았던 박수경의 아픈 개인사도 조금씩 드러나는 중이다.
박수경이 매일 밤 머리를 풀어헤친 채 술독에 빠져 사는 것은 헤어진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이기지 못해서였다.
"당신과 같이 술을 마시던 집에 홀로 앉아 당신을 기다리다가도, 이런 몰골을 들키면 어쩌나 싶어 또 머리를 풀어 얼굴을 가립니다"고 읊조리는 박수경의 고백은 시인 도종환의 연가(戀歌) 이상으로 슬픔이 가득했다.
박수경이 외계인을 애타게 기다리는 것을 두고서는 '외계인'이 옛 연인을 뜻하는 게 아니냐는 등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tvN 관계자는 22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외계인이 와서 지구가 다 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후 겪는 상실감이 크다는 점을 부각한 장면"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