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TV '하이드 지킬, 나'의 현빈(33)과 MBC TV '킬미, 힐미'의 지성(38)이 그 주인공이다.
현빈이 맡은 구서진과 지성이 분한 차도현은 둘 다 공교롭게도 다중인격자다.
현빈 캐스팅설을 둘러싸고 논란에 휩싸였던 '킬미, 힐미'가 결국 지성과 손을 잡았다는 사실도 극을 이끄는 두 배우의 연기에 눈길이 가는 요인이다.
7가지 인격을 소화하기도 버거울 텐데 시청률 1위를 지켜내느라 분투할 지성과 5년 만의 복귀작이라는 점과 판세 역전의 부담감에 시달릴 후발주자 현빈, 두 배우의 연기를 뜯어보는 재미가 적지 않다.
◇ 어쩜 이리 닮았나…차도현과 구서진
'킬미, 힐미'보다 2주 늦게 방송을 시작한 '하이드 지킬, 나'는 강한 기시감을 풍긴다.
똑같이 로맨틱 코미디에 멜로를 버무린 두 작품의 많은 부분이 겹치는 탓이다.
연예기획사 ID엔터테인먼트 부사장인 차도현과 복합테마파크 원더랜드 상무인 구서진은 모두 어디 하나 빠질 것 없는 재벌가 젊은이다.
이들은 어릴 적 아주 깊은 상처를 입은 뒤 둘 이상의 인격이 있는 해리성 정체장애(다중인격장애)를 앓게 됐다.
회사 경영권을 둘러싼 가문의 암투 때문에 자신의 병을 속 시원히 외부에 알리지 못한 채 외롭게 싸운다는 점도 같다.
차도현 근처에는 육촌형 차기준(오민석 분)이, 구서진 근처에는 사촌형 류승연(한상진)이 '범의 아가리'를 벌린 채 주인공들의 동태를 살핀다.
차도현과 구서진이 그나마 의지하는 사람들은 24시간 보필하는 비서(안 실장·권 비서)와 오랫동안 자신을 지켜본 주치의(석호필 박사·강희애 박사)다.
과거 상처와 연관된 여자주인공이 갑작스럽게 나타나 다른 인격들의 출현 혹은 강화를 촉발하는 '트리거'로 작용한다는 점도 두 남자 주인공의 공통점이다.
"한 연기자가 7개 캐릭터를 기막히게 소화했다는 것이 과연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느냐"는 지성의 지난 5일 제작발표회 발언은 시청자들의 기대를 낮추려는 방책이었을까.
1999년 SBS TV '카이스트'로 데뷔해 벌써 연기 경력 17년 차인 지성의 연기력은 '킬미, 힐미'에서 만개했다.
지성은 극 중 상처 많은 도련님인 차도현과 과격하고 뇌쇄적인 신세기, 구수한 전라도 남자 페리 박, 어린 아이 나나, 자살을 시도하는 음울한 고교생 안요섭, 날라리 사생팬 안요나, 아직 베일을 벗지 않은 Mr.X 등 7개 인격을 부여받았다.
인격을 능수능란하게 넘나드는 지성의 연기를 보다 보면 소매 폭을 한번 휘저을 때마다 얼굴이 순식간에 달라지는 중국 기예인 변검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킬미, 힐미'가 눈만 어지러운 드라마가 아닌 데는 아이라인이나 안경 등 외양 변화에만 의존하지 않고 인격 하나하나 소홀함이 없는 지성의 연기가 큰 몫을 한다.
차도현과 신세기가 깨진 거울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장면에서부터 차도현이 슬픔을 억누른 채 "제가 괴물이 되어가는 걸까요"라고 호소하는 장면, 뾰루지를 발견한 안요나가 "지긋지긋한 비립종"이라고 투덜대는 장면에 이르기까지 어색함이 없다.
온라인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인격들의 출연 분량을 늘려달라는 애청자들의 요구들이 잇따른다. 지성에게 출연료를 7배 줘야 한다는 의견도 자주 눈에 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