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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의 차도현과 현빈의 구서진, 누가누가 끌리나

입력 2015-02-0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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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의 차도현과 현빈의 구서진, 누가누가 끌리나


수요일과 목요일 밤 10시가 되면 안방극장은 두 남자가 내뿜는 열기로 달아오른다.
SBS TV '하이드 지킬, 나'의 현빈(33)과 MBC TV '킬미, 힐미'의 지성(38)이 그 주인공이다.
현빈이 맡은 구서진과 지성이 분한 차도현은 둘 다 공교롭게도 다중인격자다.



현빈 캐스팅설을 둘러싸고 논란에 휩싸였던 '킬미, 힐미'가 결국 지성과 손을 잡았다는 사실도 극을 이끄는 두 배우의 연기에 눈길이 가는 요인이다.
7가지 인격을 소화하기도 버거울 텐데 시청률 1위를 지켜내느라 분투할 지성과 5년 만의 복귀작이라는 점과 판세 역전의 부담감에 시달릴 후발주자 현빈, 두 배우의 연기를 뜯어보는 재미가 적지 않다.

◇ 어쩜 이리 닮았나…차도현과 구서진
'킬미, 힐미'보다 2주 늦게 방송을 시작한 '하이드 지킬, 나'는 강한 기시감을 풍긴다.
똑같이 로맨틱 코미디에 멜로를 버무린 두 작품의 많은 부분이 겹치는 탓이다.
연예기획사 ID엔터테인먼트 부사장인 차도현과 복합테마파크 원더랜드 상무인 구서진은 모두 어디 하나 빠질 것 없는 재벌가 젊은이다.
이들은 어릴 적 아주 깊은 상처를 입은 뒤 둘 이상의 인격이 있는 해리성 정체장애(다중인격장애)를 앓게 됐다.
회사 경영권을 둘러싼 가문의 암투 때문에 자신의 병을 속 시원히 외부에 알리지 못한 채 외롭게 싸운다는 점도 같다.
차도현 근처에는 육촌형 차기준(오민석 분)이, 구서진 근처에는 사촌형 류승연(한상진)이 '범의 아가리'를 벌린 채 주인공들의 동태를 살핀다.
차도현과 구서진이 그나마 의지하는 사람들은 24시간 보필하는 비서(안 실장·권 비서)와 오랫동안 자신을 지켜본 주치의(석호필 박사·강희애 박사)다.
과거 상처와 연관된 여자주인공이 갑작스럽게 나타나 다른 인격들의 출현 혹은 강화를 촉발하는 '트리거'로 작용한다는 점도 두 남자 주인공의 공통점이다.

◇ 변검 뺨치는 '킬미, 힐미'…만개한 지성의 연기력
"한 연기자가 7개 캐릭터를 기막히게 소화했다는 것이 과연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느냐"는 지성의 지난 5일 제작발표회 발언은 시청자들의 기대를 낮추려는 방책이었을까.
1999년 SBS TV '카이스트'로 데뷔해 벌써 연기 경력 17년 차인 지성의 연기력은 '킬미, 힐미'에서 만개했다.

지성은 극 중 상처 많은 도련님인 차도현과 과격하고 뇌쇄적인 신세기, 구수한 전라도 남자 페리 박, 어린 아이 나나, 자살을 시도하는 음울한 고교생 안요섭, 날라리 사생팬 안요나, 아직 베일을 벗지 않은 Mr.X 등 7개 인격을 부여받았다.
인격을 능수능란하게 넘나드는 지성의 연기를 보다 보면 소매 폭을 한번 휘저을 때마다 얼굴이 순식간에 달라지는 중국 기예인 변검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킬미, 힐미'가 눈만 어지러운 드라마가 아닌 데는 아이라인이나 안경 등 외양 변화에만 의존하지 않고 인격 하나하나 소홀함이 없는 지성의 연기가 큰 몫을 한다.
차도현과 신세기가 깨진 거울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장면에서부터 차도현이 슬픔을 억누른 채 "제가 괴물이 되어가는 걸까요"라고 호소하는 장면, 뾰루지를 발견한 안요나가 "지긋지긋한 비립종"이라고 투덜대는 장면에 이르기까지 어색함이 없다.
온라인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인격들의 출연 분량을 늘려달라는 애청자들의 요구들이 잇따른다. 지성에게 출연료를 7배 줘야 한다는 의견도 자주 눈에 띈다.

◇ 아직은 '어게인 시크릿가든'…부담 큰 현빈
'하이드 지킬, 나'가 지난 21일 밤 베일을 벗었을 때 주인공 구서진은 현빈의 전작인 '시크릿 가든'(2010) 속 백화점 CEO 김주원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구서진을 꼼꼼히 뜯어보면 김주원 같은 '상처 많은 까다로운 재벌남'을 넘어 병적으로 예민하고 날이 선 모습이다.
다른 인격의 출현을 막고자 죽을 힘을 다해 수도승처럼 살았던 인물을 표현하기 위한 현빈의 계산이다.

'킬미, 힐미'와 비교하면 '하이드 지킬, 나'의 남자 주인공 인격은 구서진과 로빈, 2개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현빈이 짊어진 부담은 적지 않다.
'킬미, 힐미'의 7개 인격은 저마다 개성이 또렷해서 연기자가 격마다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하다.
반면 구서진과 로빈은 다른 듯하면서도 많이 닮았다는 점에서 현빈의 연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킬미, 힐미'에서는 지성의 팔색조 변신에 시선이 쏠린다면 '하이드 지킬, 나'에서는 현빈이 아버지 구명환(이덕화)에 애증을 느끼는 로빈을 표현하는 모습에 관심이 간다.

회사 경영에만 관심이 있는 구명환은 로빈에게 "아무도 안 반기는데 왜 또 기어나왔느냐. 넌 구서진 인생을 갉아먹는 기생충"이라고 독설을 퍼붓고 로빈은 "이름도, 나이도, 부모님도, 기억도, 구서진 것이 아니라 온전히 제 것"이라고 항변한다.
구명환과 마주 선 로빈이 허상의 존재라기보다 찬밥 신세인 서얼처럼 느껴지는 지점이 흥미롭다.
이처럼 로빈이 구서진의 제2인격이 아닌 동등한 주체로 다가오면서 아직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둘의 대립과 공존이 기대를 모은다.
그러나 현빈이 장고 끝에 선택한 '하이드 지킬, 나'의 시청률은 좋지 않다. 지난 29일 방송은 '킬미, 힐미' 시청률(11.5%)의 반 토막에 가까운 6.6%로까지 내려앉았다.

이를 두고 '마법의 성' 뮤직비디오를 떠올리게 하는 몽환적이기만 한 그림과 늘어지는 이야기 전개를 탓하는 쓴소리들이 적지 않지만, 작품의 최종적인 결과는 연기자가 지는 것이기도 하다.
다른 인격이 멋대로 저지른 일 때문에 곤경에 빠지는 차도현과 구서진은 최근 여자 주인공들과 동거를 시작했다.
차도현과 구서진이 각각 정신과 의사 오리온(황정음)과 서커스 단장 장하나(한지민)의 도움으로 조금씩 변하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되찾게 되는 과정이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다.
후발주자인 '하이드 지킬, 나'가 이제야 본격적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가운데 두 배우 중 누가 최종적인 승자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airan@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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