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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소녀같을 줄 알았던 송혜교도 나이를 먹더라

김겨울 기자

입력 2014-08-27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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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소녀같을 줄 알았던 송혜교도 나이를 먹더라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으로 3년 만에 국내 스크린에 복귀하는 배우 송혜교가 인터뷰에 응했다.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감독 이재용)은 열일곱에 아이를 낳은 부모와 열일곱을 앞두고 80세의 외모를 가진 선천성 조로증에 걸린 아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극 중 밝고 씩씩하지만 언제 세상을 떠날 지 모를 아들로 인해 두근두근한 인생을 살아가는 미라 역을 열연한 송혜교가 개봉을 앞두고 소감을 밝혔다. 삼청동=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

마냥 사랑스런 소녀로 남을 줄만 알았던 송혜교. 그도 나이를 먹긴 먹나보다.



외모 얘기? 아니다. 송혜교는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조로증 아들을 둔 엄마 미라의 고교 시절을 연기하기 위해 교복도 입었다. 아이돌 가수를 꿈꾸는 당돌한 열일곱 소녀로 등장해도, 외모만 봐서는 어색함이 없었다. 세월이 유독 그녀의 외모만 비껴간듯 했다. 90년대 하이틴 드라마 '나 어때', 2000년대를 강타한 '가을동화' 속 뽀얀 피부와 초롱 눈망울의 주인공이던 송혜교, 그의 동안 미모는 여전히 싱그러웠다.

다만 인터뷰를 하면서 발견했다. 20여 편에 가까운 크고 작은 작품들을 해오고, 가끔 세간의 주목을 끄는 논란의 중심에 섰던 그에게 그만큼 삶의 무게와 깊이가 내려 앉아 있었다.

'요즘 힘들죠?' 인터뷰가 시작되고, 이 한 마디를 던졌다. 그러자 송혜교의 표정은 죽을 죄를 저지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지난 21일에 이어 사과가 이어졌다. "정말 죄송하다. 그냥 참. 바보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 후회스럽기도 하고, 나 자신에게 실망스럽고, 나는 모르니까 담당자한테 관리하는 분께 맡기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이 너무 바보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내 불찰로 시작된 일이라 모두 다 내 책임이다. 거기에 대해서 드릴 말씀은 없고, 있어서는 안될 일 하나가 터진 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이 너무 크다."

영화를 홍보를 위한 인터뷰. 수많은 땀방울이 모여 완성된 작품의 개봉을 앞둔 시점이라 마음이 더 힘들다. "사실 이 자리에 내가 나와야 하는 건지 아닌지 고민도 많았다. 차라리 내가 보이지 않는게 영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안했던 것은 아닌데, 나 혼자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이 영화에 모든 공을 들인 분들이 너무나 많고, 고민이 많이 됐다. 나로 인해 (대책) 회의까지 하더라. 다들 내가 숨거나 피하지 않고 책임을 다하고 혼날 것은 혼나고 사죄할 것에 대해서는 사죄하고 지킬 것은 지키라는 말을 했고 그래서 인터뷰 장소에 나오게 됐다."

그 뒤로도 그녀의 사과와 고백은 한참 이어졌다. 솔직히 이 인터뷰에 오기 전까지 송혜교에 대해 오해가 있었다. 하이틴 스타로 톱스타로 줄곧 성공가도만 달려오던 그녀에게 과연 쓴 소리를 해줄만한 주변 사람이 있을까. 그냥 좋은 게 좋다고, 주변에서 달콤한 이야기만 하지 않았을까. 그런 우려에 대해 솔직하게 물었다.

"생각하시는 것 처럼 주변에서 따뜻한 말만 하지는 않더라. 내가 분명 잘못한 거니까 숨는 방법도 있고 당장 피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러기엔 너무 책임감이 없는 게 아니겠느냐고 오히려 앞에 서서 사과하라고 하더라. 감싸는 분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한참 후에야 작품 이야기로 넘어갔다. '두근두근 내 인생'은 17살에 아이를 가진 미성년자 부부가 조로증 아들을 먼저 보내야 하며 겪는 슬픔을 담은 작품이다. 송혜교는 화장기 없는 얼굴로 조로증 아들과 철없는 남편(강동원)의 뒷바라지를 꿋꿋하게 해내는 억척 아줌마로 등장한다. 슬픔을 참기에는 너무 어리고, 슬픔을 맘껏 표현하기에는 쉽지 않은 강퍅한 현실 속에서 송혜교는 특유의 생기발랄한 에너지를 보여줬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자마자 결정했다. 이재용 감독님과 언젠가 한 번 작업해보고 싶었다. 시나리오가 뻔한 신파가 아니라, 감독의 특유의 고급스런 구성이 들어가있어 마음에 들더라. 코믹 요소도 있고 그동안 우울한 쪽이나 무거운 역할을 많이 해온 터라 미라라는 캐릭터가 더 하고 싶더라. 강단도 있고, 털털하고, 어떤 면에서는 선머슴 같기도 하고."

미라는 욕도 잘하는 캐릭터. "작품에서 욕하는 역할은 처음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주변에 욕 잘하는 언니가 많다. 그 언니들이 많이 가르쳐줬다. 아주 찰지게 하는 욕을 배웠다."

실제 송혜교도 욕을 할까. "20대 때는 전혀 못했다. 하지만 30대 때는 친한 사람이 시비 걸어오면 가끔 할 때도 있다.(웃음)"

영화 속에서 미라는 교복을 입고 마냥 아이같은 고민에 휩싸일 때 예쁜 옷 한 벌 마음대로 사입을 수 없는 처지다. 아이를 통해서 얻은 기쁨도 크지만 희생도 클 수밖에 없다. 특히 내가 아닌 아이가 아픈 부모는 오죽할까.

"아무래도 아들 아름이가 조로증이니까. 그 병을 가지고 있는 아이가 태어난다면, 영화를 촬영하면서 그 생각을 안해본 건 아니다. 내가 미라처럼 어린 나이에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너무 무섭고, 나는 미라처럼은 못했을 거 같다. 하지만 지금 내 나이에 그랬다면 그건 조금 다를 거 같다. 헤쳐나갈 길, 방법을 조금 알지 않을까. 여튼 실제 나라면 하기 어려운 선택일 것 같다."

그리곤 송혜교는 자신의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이 작품 하면서. 20대 때는 '나도 가정을 꾸리고 싶다. 아기를 낳고 싶다'란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30대가 되니까 인터뷰 자리라서가 아니라 연기에 재미를 느껴지기 시작하더라. 작품에 대한 욕심도 생기고 20대 때 많은 작품을 하지 못한 게 후회가 들더라. 그리고 결혼해 본 언니들한테 그닥 행복한 이야기를 듣지 못한 것도 있다."

연기에 대한 생각이 이어졌다. "연기자로서 늦은 감이 있긴 하다. 20대 때는 마냥 사람들이 좋아해주고, 좀 의무적으로 연기를 했던 적이 있다. 그저 '이 작품 빨리 끝내고 어디 가야지' 이런 생각이 꽉 차 있었다. 창의적, 능동적으로 해야지 이런 생각 보다는 '이 씬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란 생각이 컸다고 할까. 그때는 선배들이 '현장에 있을 때가 제일 좋다'라고 한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일하는 현장인데 그게 뭐 그리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제서야 연기에 대한 재미를 조금씩 알겠더라. '이 씬을 어떻게 만들어갈까'하는 떨림도 생기고, 현장에 있는 게 왜 즐겁고 재밌는 일인지 알겠더라. 요즘은 내 씬이 끝나고 상대 배우들이 연기하는 것을 보기도 하고, 다 마치고는 술 한 잔 하기도 하고, 그런 내 일들 모두 재미가 있다."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없다. 많이 얻는 사람이 감사를 모른다면 사람들은 결국 곁에서 떠나기 마련. 그녀의 진심이 궁금했다.

"일찍 사회에 나왔고, 고등학교 때부터 데뷔를 해 또래들에 비해 큰 돈을 벌었다. 매번 말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바로 내 옆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그들과 함께 남에게 상처주지 말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게 내 소망이다. 대중의 사랑이라는 것은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인지 충분히 알고, 대중의 사랑이 있기에 내가 있다는 것도 잘 안다. 그것은 정말 바꿀 수 없다. 그래서 너무 죄송하다."

그렇게 송혜교 인터뷰의 시작과 끝은 사과로 수미쌍관을 이뤘다.

그녀가 현재 휩쓸린 파도의 크기. 어느정도일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다만 그녀는 이미 쉽게 꺾어지는 꽃이 아닌 뿌리깊은 나무의 생명력의 무게를 아는 배우가 되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그의 행보를 지켜봐야 할 이유이자 가치다. 송혜교는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다.

김겨울기자 winte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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