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에 임한 이대호. 김영록 기자
[대구=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김)원중이가 대단하다. 21년 동안 포수 한번도 안해본 선배가 앉아있는데, 고개 한번 안 젓고 사인대로 던지더라. 세이브해줘서 고맙다."
강렬한 포수 데뷔전이었다. 2001년 데뷔 이래 처음 포수 마스크를 쓴 이대호는 특유의 순발력과 유연성을 살려 '승리 포수'가 됐다.
8일 롯데 자이언츠는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9대8 대역전극을 만들어냈다. 3-7로 뒤지던 롯데는 7회와 9회 3점씩을 추가하며 기어코 승부를 뒤집었지만, 마지막 이닝에 나설 포수가 없었다. 여기서 최고참 이대호가 마스크를 자청했다.
"(오)윤석이가 먼저 준비하고 있었다. 포수는 한번도 안해본 친구다. 자칫 경기가 잘못되면 윤석이가 욕먹을 것 아닌가. 난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포수를 해봤고, 그때 송승준 선배 공을 받았기 때문에 직구가 무섭진 않았다. 그래서 내가 나가겠다 했고, 감독님이 믿고 맡겨주셨다."
이에 대해 허문회 감독은 "혹시 다칠까봐 난 말렸는데, 이대호가 '내가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공을 받는 것만 생각했는데, 볼배합까지 정말 잘하더라. 고참으로서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줬다. 정말 좋은 추억을 만들어줬다.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경기다. 고맙다"라며 감동을 숨기지 않았다.
제아무리 '야잘잘(야구는 잘하는 사람이 잘한다)'이라지만, 이대호로서도 23년만에 앉아보는 포수는 두려운 자리였다. 이대호는 "윤석이보다 내가 낫겠다 싶었고, 어쩌다 놓쳐서 혼이 나도 내가 받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이겨서 다행"이라며 "나도 긴장해서 집중이 잘됐나보다. 바운드볼이 2개나 들어왔는데, 공이 잡히더라. 하늘이 도왔다"며 웃었다.
"사인 알지도 못하고, 어?든 내가 포수인데 싶어 벤치 보지도 않았다. (김)원중이가 뭘 잘 던지는지, 이 타자한테 뭘 던지면 좋겠다 정도는 나도 알고 있으니까. 원중이가 내가 원하는 대로 잘 던져주더라. 생전 포수 안보던 선배가 요구하는대로 고개 한 번 안 흔들고 잘 막아줘 고맙다."
경기 후 이대호에겐 지인들의 축하가 폭주했다고. 이대호는 "만루홈런 쳤을 때보다 연락이 많이 왔다. '이제 포수로 몇년 더하자' 하더라. 좋은 추억이 생겼다"며 껄껄 웃었다.
앞으로 또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다시 마스크를 쓰겠다는 속내도 드러냈다. 이대호는 "없는게 가장 좋겠지만, 선수로서 준비는 해두겠다. 한번 받아봤으니 한번도 안해본 사람보단 낫지 않겠나. 그땐 감독님께 어제보다 더 편하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미소지었다.
롯데는 KBO리그 10개 구단 중 최하위로 처져있는 상황. 하지만 이날 경기는 '터닝 포인트'가 되기에 충분한 임팩트를 지닌 경기였다. 이대호는 "이렇게 한경기 한경기 쌓아올리면 위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고참의 희생정신과 간절함 속에 팀 전체가 하나로 똘똘 뭉친 결실이었다.
대구=김영록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