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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 결산②]'야구의 신'은 우승 순간, 이정후의 손을 들게 했다

이원만 기자

입력 2018-09-03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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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의 신'은 우승 순간, 이정후의 손을 들게 했다
연합뉴스

'오늘 밤 주인공은 너야 너!'



수많은 논란과 비판 여론에 휩싸인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야구대표팀에도 내세울 만한 성과가 있었다. 역대 야구대표팀 중에서 가장 응원을 받지 못한 '선동열 호'지만 반짝이며 빛난, 모든 이들로부터 박수와 응원, 사랑을 받은 스타가 있었다. 어쩌면 금메달보다 더 값진 소득, 앞으로 최소 10년은 한국 야구대표팀의 주역으로 활약하게 될 이정후(20·넥센 히어로즈)의 국제대회 경쟁력을 확인했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금메달로 마친 야구대표팀은 머지않아 2020년 도쿄올림픽 준비 체제로 개편될 것으로 예상된다. 비록 이정후는 아시안게임 대표팀 막내였지만, 2년 뒤 올림픽에서는 팀의 주역이 될 것 같다. 나이를 떠나 실력으로 그걸 보여줬다.

이런 이정후의 미래를 예고하는 흥미로운 장면이 지난 1일 결승전이 펼쳐진 자카르타 GBK야구장에서 나왔다. 마치 '야구의 신'이 이정후를 향해 '오늘 밤 주인공은 너야!'라고 선언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일본과의 결승전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이정후가 끝내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것도 자리를 이동해 서 있던 외야 우측 코너,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자리에 있었음에도 모든 시선을 이정후에게 쏠리게 했다.

3-0으로 앞선 한국의 9회초 마지막 수비. KBO리그 최강의 마무리 정우람이 2루 땅볼과 중견수 뜬공으로 쉽게 아웃카운트 2개를 잡아냈다. 마지막 아웃 하나만 잡으면 아시안게임 3연속 우승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일본 타석에는 3번 마츠모토 대신 대타 지비키가 나왔다. 볼카운트 1B2S에서 정우람이 던진 공을 지비키가 받아쳤다. 타격음은 컸지만, 공은 멀리 뻗지 못했다. 우측 외야로 날아가는 타구, 우익수가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이 선수는 한 발로 폴짝 뛰어오르며 타구를 잡았다. 그리고는 오른 주먹을 불끈 움켜쥔 채 환호하면서 한 바퀴 휙 돌았다. 우승을 결정지은 마지막 공을 글러브에 움켜준 채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했다. 그가 바로 이정후였다.

이정후는 이날 1번-중견수로 선발 출전했다. 1회말 첫 타석에서 볼넷을 얻어나간 뒤 안치홍의 결승 적시타 때 홈을 밟아 결승득점까지 올렸다. 수비에서도 안정감을 과시하던 이정후는 8회초 수비 때 우익수로 이동한다. 선발 우익수였던 손아섭이 박해민으로 교체되면서, 박해민이 센터로 가고 이정후가 우익수를 맡은 것이다.

중견수든 우익수든 이정후에게는 어려울 것이 없었다. 소속팀 넥센에서도 필요에 따라서는 외야 전 포지션을 커버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이정후는 공격(24타수 10안타 4할1푼7리, 2홈런, 7타점)으로 주목받았지만, 수비도 좋았다. 자기 포지션 뿐만 아니라 다른 외야수의 백업 역할도 100% 해낸 전천후 플레이어였다. 그런 그가 결승전 마지막 순간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대단히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일부러 연출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말 그대로 '운명'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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