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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사직합니다"…두 아이 엄마 소아청소년과 전공의의 '호소'

장종호 기자

입력 2024-02-18 07:38

"이젠 사직합니다"…두 아이 엄마 소아청소년과 전공의의 '호소'
자료사진 출처=픽사베이

[스포츠조선 장종호 기자]"의사가 환자 목숨보다 자기 밥그릇을 중시한다는 비난에 더는 견디기 괴로워 이젠 사직합니다."



이른바 '빅5'로 불리는 서울시내 대형병원의 한 4년 차 전공의의 호소다.

의료계에 따르면 두 아이의 엄마이자 현재 임신부이며 올해 가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수료를 앞둔 그는 최근 "개인적으로 파업이 아닌 정말 사직을 하고자 한다"면서 이처럼 밝혔다.

정부의 일방적인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아산병원·서울성모병원 등 '빅5' 병원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 의사를 표명하고 전국 의대생들의 집단휴학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그의 '사직 글'은 큰 울림을 주고 있다.

그가 공개한 글에는 의대 정원 확대로 필수 의료 중 하나인 소아청소년과의 어려움을 해소할 수 없으며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는 "회사원인 신랑이 저 때문에 회사 진급을 포기하고 2년에 달하는 육아휴직을 감내했고, 신랑의 복직 후에는 양가 부모님들의 헌신으로 하루하루를 버텨왔다"며 "저와 제 가족에게는 정말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소아청소년과 의사를 선택하겠다는 자부심을 갖고 일해왔다"고 전했다.

그는 현재 소아청소년과의 인력 부족과 근무 상황에 대한 아려움을 털어놨다.

그는 "소아청소년과는 인력 부족이 극심하기 때문에 임산부 전공의도 정규 근무는 당연하고 임신 12주차전, 분만 직전 12주전을 제외하고는 기존 당직 근무에 그대로 임한다. 저는 최고년차이기 때문에 당직도 일반 병동이 아닌 중환자실 당직만 선다. 태교는커녕 잠도 못 자고 컵라면도 제 때 못 먹는다. 전공의는 교대근무가 아니므로 당직이 끝나는 오전 7시부터 정규 근무에 투입된다. 아파도 '병가'는 꿈도 못 꾸고 수액 달고 폴대를 끌어가며 근무에 임해왔다"고 설명했다.

특히 중증 소아환자들이 많기 때문에 전공의로서 일주일에 한 두 번은 소아코드 블루를 경험하고 한 달에 한두 명 이상의 환아의 사망을 경험한다는 그는 "응급실에서 심정지가 온 환아를 50분 동안 심폐소생술 한 적이 있는데 가슴 압박을 하면서 내 뱃속 아기가 유산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엄마이기 전에 나는 의사니까 지금은 처치에 집중하자고 다짐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의 의대정원 확대에 대한 모순을 지적했다.

정부가 500명이든, 2000명이든 의대 증원 정책은 소아청소년과의 붕괴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매년 5000명의 의사를 배출한들 그 중에 한 명이라도 저처럼 살고 싶은 의사가 있을까? 의사 수가 많아지면 소아청소년과를 지원할 의사도 정말 많아질까?"라며 반문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에게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지원자는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 그는 "지금과 같은 현실이 이대로 간다면 빅5 병원의 소아청소년과가 무너지는데 10년도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아이들의 마지막 눈빛 때문에 그동안 소아청소년과 트레이닝을 지속했다는 그는 결국 '파업'이 아닌 '사직'을 선택한다고 했다.

그는 "소아청소년과를 포함해 무너지고 있는 필수의료과를 위한 실질적인 정책은 마련되지 않을 것 같으며 의사가 환자 목숨보다 자기 밥그릇을 중시한다는 비난에 대해 더는 견디기 괴롭다"면서 "소아청소년과를 같이 하자고 후배들에게 더 이상 권할 수 없다"고 한탄했다.

몇 개월만 수료하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면허를 획득할 수 있는 그는 그 길을 포기하고 '생계를 위해' 피부미용 일반의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50분의 심폐소생술 후 살아난 아이가 다음 주 퇴원을 앞두고 웃는 얼굴을 봤다는 그는 "참 뿌듯했고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씁쓸함이 밀려온다"면서 "소아청소년과 의사로 못다한 꿈은 의료봉사로 채우겠다"고 밝혔다.

장종호 기자 bellh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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