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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공모주 청약 열기…부작용 속출에 "개선" 목소리도

남정석 기자

입력 2024-02-15 20:28

IPO(기업공개)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폭발적이다. 상장 당일에만 공모가 대비 최대 400%(3배)까지 주가가 오를 수 있어, 코인 부럽지 않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급증하면서, 배당받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15일 청약을 마감한 유명 뷰티테크 기업 에이피알이 대표적이다.

이 때문에 계좌를 늘리는 편법, 증권사들의 시스템 과부하, 등락폭 확대에 따른 가격 급변동 등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정상적인 투자가 아닌 '용돈벌이' 수준으로 전락하거나 초단기 투자자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하면서, 투자자들의 주의와 함께 제도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6%의 확률, 로또가 따로 없네

관련업계에 따르면 15일 최종 경쟁률 1112.53 대 1로 마감된 에이피알의 균등 청약을 위해선 최소 증거금 125만원(공모가 25만원X10주의 50%)이 필요했지만 1주라도 배당을 받는 투자자는 6%에 그쳤다. 게다가 주관사인 신한투자증권과 하나증권이 주말을 끼고 청약을 받으면서 청약 반환 기간이 평소의 2일에서 4일로 늘어났다. 1주조차 배정받지 못한 나머지 94%의 투자자들로선 기회비용이 더 커진 것. 무려 14조원 가까운 청약액이 몰리면서, 주관사들은 증거금에 대한 예치 이자를 쏠쏠히 챙기게 됐다.

또 신한투자증권의 경우 2000주(2억 5000만원) 이하를 청약한 투자자들은 비례 배정으로 최소 1주조차 받기 힘든 '역대급' 상황까지 나왔다.

이는 청약 전 이미 예견됐다. 올해 첫 코스피 상장 기업이자, 공모가 기준 시가총액 1조 9000억원이 넘는 '대어'임에도 불구, 일반 청약자에게 배정된 주식수가 고작 10만 42주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경우 청약 전 액면분할을 실시, 공모가를 낮추고 주식수를 늘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에이피알은 높은 주가 전략을 고수했다. 운 좋게 주식을 배정받은 사람들은 상장일인 27일 주가가 최대 400%까지 상승해 100만원이 될 경우 1주당 무려 75만원의 차익을 얻게 되지만, 상당수의 투자자들은 빈손으로 돌아서게 됐다.

▶빛바랜 균등 배정 도입 취지…눈치작전 '복불복'?

하지만 이는 지난 2021년 도입된 균등 배정 방식의 당초 취지와는 다르다. 소액 투자자들도 IPO에 참가,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이 주식을 공유하라는 의미였지만, 배정 주식수를 초과하는 청약으로 인해 어느새 추첨운에 맡기는 '복불복'이 된 것. '5사6입', '6사7입' 등 1주를 배정받기 위한 눈치작전의 일반화는 물론, 가족이나 차명계좌까지 동원하는 편법이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배정받은 주식을 팔기 위해 많은 투자자들이 상장 당일 한꺼번에 몰리면서 증권사들의 전체 거래 시스템 과부하로 일반 투자자들의 거래에도 피해를 주고 있다. 지난 14일 이에이트 청약을 마감한 한화투자증권의 경우 청약수 15만건 남짓에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6시간동안 분산됐음에도 불구하고, 시스템 불안으로 청약 시간을 2시간 더 연장하며 체면을 구겼다.

기관 투자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2022년 1월 LG에너지솔루션 청약 당시 자본금 1억원에 불과했던 기관 투자자가 무려 9조5000억원 어치의 물량을 신청한 이후, 지난해 7월부터 '허수 청약'을 막기 위해 자금력 확인 등을 의무로 하는 규정이 적용되고 있지만 효용성에는 물음표가 달렸다. 에이피알의 경우 국내외 1969곳의 기관 투자자들이 공모 수요예측에 참여했지만, 70%가 넘는 1463개 기관은 배정받은 주식을 일정 기간 팔지 않겠다는 의무보유 확약을 하지 않았다. 그나마 에이피알의 공모 주식수가 적어 이 정도의 수치라도 나온 것이고, 최근 대부분의 종목들은 기관 투자가들이 상장일에 대부분의 물량을 매도하며 급등락 장세를 이끌고 있다는 지적이다.

IPO 전문 인플루언서 A씨는 "확률적으로 상장일에 수익률이 가장 좋기 때문에, 비례 청약에 참여하지 않고 1~2주를 받는데 그친 대부분의 균등 투자자들로선 굳이 오래 보유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며, "균등 배정이 건강한 투자가 아닌 용돈벌이 수준으로 전락한 상황에서 이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관 투자자들 역시 전체 물량의 최대 70%까지 할당 받으면서도 이익 극대화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주식은 코인이 아닌데…"…주관 증권사들에도 '눈총'

이를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하는 주관 증권사들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균등 배정 제도가 도입되면서 상당수 증권사들은 1500~2000원(온라인 기준) 정도의 청약 수수료를 받기 시작했다. 에이피알의 경우 나흘간의 이자 수익은 물론 2억원 넘는 '가외소득'까지 챙긴 것. 늘어난 투자자를 감당할 서버의 확충 및 유지를 위한 비용이라고 하지만 상장일 시스템 불안은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예전에는 계좌 개설에 최소 5만원 정도의 마케팅 비용이 들었지만, 현재는 비대면 계좌 개설이 가능한데다 별다른 혜택 없이도 가족 계좌까지 앞다퉈 만들다보니 IPO 주관 증권사들로선 '꽃놀이패'가 따로 없다. 여기에 균등 배정으로 인해 사실상 경쟁률 미달이 사라져 상단을 넘는 공모가가 속출하거나 분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함량 미달의 기업들까지 주식 시장에 등장하며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안기기도 한다는 지적이다.

주관사들이 사전 투자에 대한 회수용으로 IPO를 활용하는 측면도 크다. 에이피알의 경우에도 하나증권이 지난 2022년 주당 4만 5000원에 보통주 4만 4444주를 취득했다. 공모가와 비교해도 주당 20만원 넘게 이익을 얻는 것. 일정 기간 매도하지 않겠다는 '락업'이 걸려있기는 하지만, 일각에서는 공모가 산정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같은 내용이 투자 설명서에는 기재되지만, 깨알같은 글씨로 쓰여진 수백쪽짜리 설명서를 제대로 읽어보는 일반 투자자들은 거의 없다"며 "주식시장의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에서 다양한 방안을 내놓고 있는데, IPO 방식에 대해서도 개선이 필요하다. 이대로 가면 투자자들의 실익은 거의 없고, 급등락에 따른 위험에만 더 노출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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