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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때와 같은 프로세스로 클린스만 선임?' 정몽규 회장이 여전히 놓치고 있는 두 가지, '철학'과 '논의' 간과하면 같은 실수 반복한다

박찬준 기자

입력 2024-02-18 07:47

수정 2024-02-18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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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때와 같은 프로세스로 클린스만 선임?' 정몽규 회장이 여전히 놓치고…
16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대한축구협회(KFA) 임원회의가 열렸다. 회의를 마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정몽규 회장. 신문로=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2024.02.16/

[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여전히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모습이다.



정 회장은 16일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을 발표하며, 클린스만 선임에 대한 책임을 묻자 이렇기 답했다. "클린스만 감독의 선임 과정에서 여러 가지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사실 파울루 벤투 감독 선임 때와 똑같은 프로세스를 적용했다. 벤투 감독의 경우 높은 순위의 후보가 답을 미루거나 거부했고 이후 결정했다. 클린스만 감독 선임 때도 후보 61명에서 23명으로 좁혀졌다가 전력강화위원장이 유력 후보 5명을 정했다. 유력후보 5명에 대한 인터뷰가 오갔고, 1~2번 순위 후보에 대한 면접도 진행했다. 그 이후 클린스만 감독을 결정했다."

프로세스만 놓고 본다면 정 회장의 설명대로다. 어떤 대표팀도, 클럽도 단수 후보를 두고 감독을 뽑지 않는다. 모두가 이 부분을 지저하는게 아니다. 정 회장이 간과한 것은 두 가지, 바로 '철학'과 '논의'다.

시간을 다시 1년 전으로 되돌려 보자. 클린스만 감독 선임 기자회견에 나선 마이클 뮐러 전력강화위원장은 동문서답에 가까운 어처구니 없는 답변으로 실소를 자아냈다. '누구와, 어떻게, 왜 뽑았는지' 무엇 하나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심지어 계약 내용도 모르는 모습이었다. 직접 선임과 협상 과정을 진두지휘한게 맞나 싶을 정도였다. 4년 전 파울루 벤투 감독 선임 발표 후 있었던 김판곤 당시 위원장의 명쾌한 기자회견과는 180도 달랐다.

이같은 논란의 시작은 '철학'과 '논의'의 부재에서 출발했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에서 아쉬운 성적표를 받은 한국축구는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며, 새로운 감독을 찾아나섰다. 감독 찾기의 첫 발은 '철학의 정립'이었다. 김판곤 위원장은 "우리가 추구하는 축구 철학에 부합하는 감독을 뽑겠다"며 "그 철학은 능동적인 경기 스타일로 경기를 지배하고 승리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월드컵 예선 통과, 대륙컵 대회 우승 경험, 세계적인 리그에서의 우승 경험' 등 구체적 조건까지 내걸었다. 이름값은 상관없었다. 최우선은 '우리의 철학과 부합하느냐'였다.

이같은 기준을 바탕으로 치열한 '논의'가 있었다. 김 위원장은 심도 있는 인터뷰를 통해 후보자들의 축구관을 검증했고, 위원들에게 수시로 브리핑하며 상황을 공유했다. 위원들은 김 위원장이 만든 포트폴리오를 두고 과정, 과정마다 열띤 토론을 진행했다. 치열한 논의의 결과가 바로 벤투 감독이었다. 물론 벤투 감독도 선임 당시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기류를 바꿨다. 김 위원장이 명품 기자회견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입담이 좋아서도, 벤투 감독을 믿어서도 아니다. 한국축구가 설정한 철학에 부합하고,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인물을, 독단적으로 가 아닌 논의를 통한 적법적인 절차를 통해 선임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 로드맵을 설명했을 뿐이다.

이후 스토리는 우리가 아는데로다. 12년만의 원정 16강이라는 달콤한 열매로 돌아왔다.

'철학'과 '논의'를 간과한 한국축구는 몇 보나 뒷걸음질 쳤다. 단순히 아시안컵 실패를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벤투 감독 이후 새롭게 시작될 4년에 대한 청사진을 마련하지 못하고 1년을 통째로 허비했다. 그것도 역대 최고의 멤버를 두고 말이다. 우리가 어떤 축구를 할지를 위한 어떤 논의도 없었고, 그 논의를 할 생각도 없었다. 어떤 축구를 해야 할지도 정하지 않았는데, 제대로 된 감독을 뽑을리 만무하다. 우리 철학이 없으니 '어떤'이 아니라 '누가'가 포인트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기준'이 아무리 거창한 들, 달라질게 없었다. 그저 선임이 목적이었으니, 철학도 중요치 않았고, 논의도 필요없었다. 클린스만 감독이 선임되는 가운데서, 전력강화위원들은 철저히 배제됐다. 심지어 보도자료 배포 30분 전 클린스만 선임을 통보받았다.

결과는 결국 새드엔딩이었다.

정 회장이 이번에도 정당한 프로세스를 이유로 '철학'과 '논의'를 빼놓는다면, 결과는 또 다시 실패일 수 밖에 없다. 시간이 급해도, 돌아가야 한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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