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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리포트]국보가 인정한 부드러움. 과학을 거부한 남자 데스파이네가 5일간격 등판을 버티는 이유

권인하 기자

입력 2021-06-04 20:34

수정 2021-06-05 08:39

국보가 인정한 부드러움. 과학을 거부한 남자 데스파이네가 5일간격 등판을…
2021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와 KT 위즈의 경기가 13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렸다. KT 선발투수 데스파이네가 힘차게 공을 던지고 있다. 수원=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21.05.13/

[수원=스포츠조선 권인하 기자]투수는 쉬면 쉴수록 더 강한 공을 뿌릴 수 있다. 로테이션에 따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등판하는 선발 투수의 경우 4일 휴식후 5일째 등판하거나 5일 휴식후 6일째 등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월요일이 휴식일이라 일주일에 6경기를 치르는 KBO리그의 경우 5인 선발 로테이션이면 화요일 선발 투수가 나흘 휴식후 일요일에 등판하고 나머지 요일에 나오는 투수들은 닷새를 쉬고 6일째에 나온다. 당연히 5일보다는 6일째 등판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지난해 KBO리그에선 괴짜 투수가 나왔다. KT 위즈의 쿠바 출신 투수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다. 데스파이네는 6일째 등판하는 것보다 5일째 등판하는 것을 코칭스태프에 요청했다. 예전부터 그렇게 던져서 5일째 등판이 더 좋다는 것. 144경기를 치르는 KBO리그의 살인적인 일정에도 그는 5일 간격 등판을 요구했고, 실제로도 5일 간격 등판을 유지했다.

많은 이들이 그가 많이 던져서 부상이 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데스파이네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지난해 시즌 막판에 힘이 떨어지는 느낌이 있기도 했지만 35경기(34경기 선발)에 등판해 15승8패 평균자책점 4.33을 기록했다. 가장 많은 선발 등판을 했고, 207⅔이닝을 던져 유일하게 200이닝을 넘겼다.

올시즌에도 5일 간격 등판을 할까 했는데 데스파이네는 올시즌에도 5일 간격 등판을 유지하고 있다. 로테이션 상 3번 5일 등판을 하면 한번은 6일째 등판을 한다.

공교롭게도 5일 등판과 6일 등판에서 현격한 성적 차이를 보였다. 5일 등판이 훨씬 좋았다. 데스파이네는 5일 간격으로 등판한 7경기서는 모두 6이닝 이상 던지며 퀄리티스타트를 했고 5승2패, 평균자책점 1.26을 기록했다. 43이닝 동안 39개의 삼진을 잡고 17개의 볼넷을 내줬다.

반면 6일 간격으로 나온 3경기에선 모두 6이닝에 실패해 퀄리티스타트가 없었다. 승패를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평균자책점은 4.30으로 좋지 않았다. 14⅔이닝 동안 13개의 삼진과 11개의 볼넷을 기록했다. 9이닝당 볼넷 수가 5일 간격 때는 3.56개였고, 6일 간격 때는 6.75개였다. 그만큼 하루 더 쉰 것이 제구에 나쁜 영향을 끼쳤다는 뜻이다.

이렇게 데스파이네가 야구의 통념을 깰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피칭 특유의 부드러움 때문이었다. 이 감독은 "선동열 감독님이 전지훈련 때 데스파이네가 캐치볼을 하는 것을 보고 그러니까 저렇게 던진다라고 했었다"라고 말했다. 강속구를 뿌리는 투수라 강하게 던질 것 같지만 부드러운 투구폼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이 감독은 데스파이네가 되도록 5일 간격으로 등판하도록 선발 로테이션을 짠다. 그런데 이번 등판은 비 때문에 5일이 아닌 6일째 등판이 됐다.

데스파이네는 당초 4일 휴식 후 3일 잠실 LG전에 등판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비로 취소가 되면서 하루 더 쉬고 4일 수원 롯데전에 선발 등판했다. KT 이강철 감독의 고민이 깊었다. 5일 휴식후 6일째 등판에서 성적이 더 안좋았기에 4일 롯데전 등판을 망설였다. 이 감독은 "차라리 하루 더 쉬게해 5일(토요일) 경기에 나가면 그 다음엔 5일 간격으로 등판할 수 있었다. 그게 데스파이네를 활용하기엔 더 좋은 시나리오"라고 했다. 하지만 등판을 하루씩 미루기로 했다. 데스파이네의 성적도 중요하지만 KT 선발 투수진 전체의 성적도 중요했기 때문. 국내 투수들에게 하루의 휴식을 더 주는 것이 선수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을 했다.

아니나다를까 데스파이네는 초반부터 제구 난조에 빠졌다. 1회초 볼넷 3개에 실책이 더해져 1실점했다. 1회에 투구수만 40개나 됐다. 이후 안정을 찾는 듯했지만 3회에 2루타가 빌미가 돼 1점을 줬고, 4회초엔 김준태에게 솔로포를 허용하더니 2사후엔 안타와 사구, 볼넷으로 만루의 위기를 맞았다. 그리고 4번 정 훈에게 2타점 안타를 허용. 0-5가 됐고, 데스파이네의 투구수는 104개가 됐다. 결국 안영명으로 교체. 추가 실점없이 데스파이네는 3⅔이닝 4안타 4볼넷 5탈삼진 5실점(3자책)으로 패전투수가 됐다. 올시즌 최소이닝 투구였다.

데스파이네는 나흘 휴식후 5일째인 9일 SSG 랜더스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한다. 다음엔 비로 취소되지 않기를 빌어야 할 듯하다.수원=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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