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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패럴림픽]'150km 우완'투수→' 휠체어테니스 국대' 김명제의 왼손 도전이 시작된다

전영지 기자

입력 2021-08-26 16:42

수정 2021-08-27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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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km 우완'투수→' 휠체어테니스 국대' 김명제의 왼손 도전이 시작…


"패럴림픽 출전은 생각도 안했는데, '운빨'이 진짜 미쳤죠! "



도쿄패럴림픽을 일주일여 앞둔 8월의 어느 주말, 한여름 햇살이 따가운 경기도 이천선수촌에서 온몸이 새까맣게 그을린 '휠체어테니스 국가대표' 김명제(34·스포츠토토)가 휠체어의 두 바퀴를 씽씽 굴리며 나타났다.

김명제, 2000년대 프로야구 두산 팬들이라면 기억할 이름이다. 2005년 두산 1차 지명을 받은 전도양양한 투수였다. 2009년 겨울 음주운전 사고로 경추를 다쳤다. 여론의 뭇매 속에 야구선수의 문이 닫혔다. 몸과 마음의 고통 속에 칩거했던 그에게 2013년 겨울 휠체어테니스의 창이 열렸다. 프로의 타고난 운동신경은 도망가지 않았다. 5년만인 2018년 여름 인도네시아장애인아시안게임 쿼드(사지 중 3곳 이상 장애) 복식에서 베테랑 김규성과 함께 은메달을 따냈다. 그리고 1년 후인 2019년, 그가 새 도전을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왼손잡이' 변신이었다. 김명제는 "사고로 다친 오른손은 마르고 힘이 없다. 손가락에 라켓을 묶고 치면 피가 안통해 힘들었다. 휠체어테니스를 앞으로 못해도 10년 이상은 할 것이고, 선수생활을 더 오래 잘 하려면 안다친 왼손으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20대 초반, 그는 시속 150㎞를 던지는 강속구 우완 투수였다. 하지만 왼손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다. "초등학교 때 좌우타석에 함께 섰고, 밸런스 훈련으로 왼손 투구를 할 때도 120㎞는 나왔다"고 했다. 소속팀 스포츠토토와 대표팀 감독 모두 김명제의 선택을 믿고 존중해줬다. 그러나 막상 왼손 테니스는 녹록지 않았다. 국가대표 박주연, 임호원 등 선배, 동료들이 혹독한 지옥훈련의 파트너를 자청했다. "오른손으로 훈련한 5~6년보다 지난 2년이 훨씬 길었다"면서도 "이 도전을 할 수 있고 이 정도라도 해낼 수 있는 건 모두 팀원들 덕분"이라며 특별한 감사를 전했다. 취재중 그의 왼손을 만져봤다. 거북등처럼 딱딱했다. 온통 굳은살이 박히고 물집이 잡힌 손엔 피 땀 눈물의 흔적이 오롯했다. "그래도 제가 한번 뱉은 말이 있는데, 책임 져야죠" 했다. "왼손 파워는 이제 오른손이 60~70% 정도 맞출 수 있는데 세밀한 감각에선 아직 차이가 나요. 플레이스테이션 축구게임을 하며 조이스틱으로 왼손 감각을 계속 끌어올리고 있어요"라며 웃었다.

내년 항저우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2연속 메달, 사상 최초의 '양손' 메달을 목표 삼았던 지난 6월 말, 김명제는 뜻밖에 도쿄패럴림픽 출전 소식을 접했다. 쿼드 종목 세계랭킹 12위 내에 들지 못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국제대회가 취소되면서 '바이퍼타이트(Bipartite·상호초청선수·국제패럴림픽위원회와 국제연맹이 협의해 쿼터 부여)' 대상이 됐다. 한끗차로 쿼터를 놓친 선수도 부지기수인데, 거부할 수 없는 엄청난 행운이 그에게 찾아왔다. 김명제는 "오른손으로 딴 랭킹인데, 왼손으로 나가게 됐네요. '운빨'이 미쳤죠"라며 하하 웃었다.

왼손 전향 후 첫 공식 무대가 패럴림픽이다. 솔직히 말해 100% 완벽한 준비는 할 수 없었다. 김명제는 "내년 아시안게임을 생각했기 때문에 완벽한 준비는 안됐지만 첫 실전 무대가 최고의 리허설이 됐어요. 무조건 최선을 다할 거고요. 냉정하게 1회전 통과만 해도 만족해요"라고 했다. 쿼드 복식 경기는 8강부터 시작한다. 1회전 통과는 곧 4강을 뜻한다. 김규성-김명제조는 27일 오전 11시 도쿄패럴림픽 휠체어테니스 쿼드 복식 8강에서 영국 안토니 코터릴-앤디 랩손조와 맞붙는다. 앤디 랩손은 리우대회 단식 은메달, 복식 동메달을 따낸 강호다.

운명의 첫 패럴림픽 도전을 앞두고 왼손의 김명제가 말했다. "철없던 때 제가 잘못했던 부분은 평생 안고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당연하죠. 저는 누가 무슨 말씀을 하셔도 기분 나쁘지 않아요. 모든 질타를 감당해야 하고 지금도 반성하고 있어요. 하지만 깊이 반성하고 계속 도전하는 부분에 대해 응원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사노라면 꼭 겪어내야 하는 일들이 있다. 세상에 만약은 없지만 그날 그일이 없었다면, 그래서 야구를 계속했더라면 어땠을까. 행복했을까. 김명제가 답했다. "더 잘됐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죠. 부상이 왔을 수도 있고… 하지만 다친 후에 세상을 보는 시선이 활짝 열렸고, 생각도 달라졌고, 무엇보다 야구할 때 저는 지금처럼 행복하진 않았어요. 지금은 가족들도 저도 행복합니다. 지금이 더 편안해요. 감사하죠."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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