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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그뤠잇!]'희생의 아이콘' 김아랑, 고래도 미소 짓게 만든다

김진회 기자

입력 2018-02-22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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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의 아이콘' 김아랑, 고래도 미소 짓게 만든다
쇼트트랙 여자 3000미터 계주에서 금메달을 딴 심석희-최민정-김예진-김아랑-이유빈(왼쪽부터)이 21일 오후 평창 메달플라자에서 열린 메달 시상식에 참석했다. 금메달을 목에 건 김아랑이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고 있다. 평창=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8.02.21/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이 어느 덧 폐막을 앞두고 있습니다. 길고 길었던 대장정이었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뛰었습니다. 많은 선수들이 땀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올림픽이 '지구촌 축제의 장' 같지가 않습니다. 감동 드라마의 연속인 '순수한 스포츠 극장' 같지가 않습니다. '특혜논란' '갑질논란' '진실논란'…. 무슨 '논란의 올림픽' 같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 선수단의 노력과 땀, 눈물이 묻히고 있습니다. '마땅히' 받아야 할 박수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스포츠조선은 남은 기간 '올림픽 정신'에 주력하고자 합니다. '하나된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도전'에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평창 그뤠잇!]은 우리 선수단의 땀과 환희, 눈물이 얼룩진 '진정한 올림픽 이야기'입니다. <스포츠조선 평창올림픽 취재팀>

첫인상,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각인되는 이미지다.

세계 최강 한국 여자 쇼트트랙의 '맏언니' 김아랑(23·고양시청)의 첫인상은 '얌전'했다. 빙판 위에서 격렬한 몸싸움을 하며 살아남는 쇼트트랙 선수 같지 않았다. 거칠지 않았다.

6일 국내 취재진 앞에 처음 선 김아랑은 수줍어 했다. 당시만 해도 '원투펀치' 최민정(20·성남시청)과 심석희(21·한체대)에게만 관심이 쏠려있었다. 냉정하게 따지면, 김아랑은 취재진들의 관심 밖이었다. 목소리는 가냘펐다. 그러나 그 속에는 확실한 목표가 담겨있었다. "계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러 상황에 대비해 훈련하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도록 훈련 중이다. 개인종목을 못해도 계주를 잘하면 다 잊을 수 있다. 5명이 다 메달을 받을 수 있고 다 같이 보상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계주가 의미가 있다."

김아랑이 계주 금메달을 강조했던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냉정하게 말하면, 신이 정해준다는 올림픽 메달을 따내기에는 기량이 떨어졌다. 순발력이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라 레이스 초반 선두권을 형성하지 못하면 스피드 싸움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도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지난해 3월 국가대표로 발탁된 뒤 올림픽 하나만 바라보며 동거동락한 동생들과 함께 만들어 낼 수 있는 결과물이 바로 '계주 금메달'이었다. 4년 전 생애 첫 올림픽이었던 소치 대회 때 중간 위치였던 입장에선 생각하지 못했을 목표의식이다. 이젠 '맏언니'다운 생각을 해야 했다. "4년 전에는 첫 올림픽이라 무엇을 해야 할 지, 무엇을 조심해야 할 지 몰랐다. 아팠던 기억도 있고 몸 관리를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소한 것 하나도 소홀해 하지 않고 있다."

또 개인적으로 보상을 받고 싶기도 했다. 다시 태극마크를 달기가 힘들었다. 자존심 회복도 필요했다. 지난해 네 차례 출전한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에서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소치올림픽이 끝나고 크고 작은 부상 때문에 기량이 떨어졌던 건 사실이다. 다시 바닥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이었다. 올림픽 선발전을 열심히 준비했는데 월드컵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내서 스스로 약이 됐던 시간들이었다." 김아랑의 솔직한 고백이었다.

이 시간을 김아랑은 환한 미소로 견뎠다. 얼굴 찡그리는 법이 없었다. 1500m 결선을 앞두고 신경이 예민할 때에도 그녀는 밝게 웃으며 취재진의 질문에 정성껏 답했다. 그리고 1500m가 끝난 뒤에는 금메달을 딴 최민정보다 더 주목을 받았다. 울어야 할 주인공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김아랑은 "민정이는 1등 했는데 울고, 나는 4등 했는데 웃는다고 하더라. 나는 4등도 만족스럽다"며 웃었다.

김아랑의 1500m 4위 뒤에는 숨겨진 이야기도 있다. 최민정과 함께 오른 결선에서 김아랑도 메달을 노려볼 수 있었다. 개인종목에서 가장 기대감도 컸고 준비를 많이 한 종목이었다. 그러나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레이스가 종반으로 치달을 때까지 선두권으로 올라서지 못했다. 그러나 기회는 남아있었다. 하지만 마음을 내려놓았다. 최민정을 위해서였다. 자신이 바깥쪽으로 치고 나가면 최민정의 아웃코스 추월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 그래서 과도한 추월을 자제했다. 대의를 위한 희생이었다. 승부의 세계에서 이런 결정을 하기란 쉽지 않다. 씁쓸한 상황임에도 김아랑은 웃으며 최민정의 눈물을 닦아줬다.

김아랑은 지난 20일 약속을 지켰다. 바라던 3000m 계주 금메달을 따냈다. 이번엔 웃음보다 눈물이 먼저였다. '펑펑' 울었다. 2연속 올림픽 메달 획득을 위해 그 동안 힘들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녀가 울자 관중들도 함께 울었다. '미스 스마일'이 곧바로 미소를 되찾자 다시 현장 분위기는 밝아졌다. 3000m 계주 금메달은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의 팀워크 상실 논란으로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끝까지 동생을 챙기며 '원팀'을 만들어 원하던 결과를 얻어낸 김아랑은 '고래도 미소 짓게 했다'.

22일 펼쳐질 여자 1000m에서도 그녀의 웃음을 다시 보고싶다.. 강릉=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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