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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 신동빈 등 대기업 총수 자존심 건 한판 싸움…대기업 격전지로 부상한 와인 시장

조민정 기자

입력 2022-09-29 13:34

수정 2022-09-30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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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 신동빈 등 대기업 총수 자존심 건 한판 싸움…대기업 격전지로 부상…
◇ 신세계가 지난 2월 인수한 쉐이퍼 빈야드 와이너리 전경. 사진=신세계 뉴스룸

와인 시장 내 대기업간 혈투가 뜨겁다.



막강한 자본력을 내세운 대기업들이 발 빠르게 와인에 손을 대면서, 시장 또한 급성장했다. 현재 국내 와인 시장 규모는 2조원에 달한다.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수입된 와인은 5억5981만 달러(한화 약 7219억원)로 전년대비 68%가량 증가했다.

국내 소비자들이 와인에 눈을 뜨자 기업 총수들은 와인시장 외연 확대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그리고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등이 있다. 여기에 허연수 GS리테일 부회장도 최근 와인 열풍에 가세했다.

대기업 총수들 간 격전지로 부상한 와인 시장의 현주소에 대해 살펴봤다.

▶전통 강자 대결 : ● '맑음 유지' 신세계, ● '비온 뒤 맑음' 기대 거는 롯데

현재 국내 와인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곳은 단연 신세계다.

신세계그룹이 운영하는 신세계 L&B는 지난 2008년 정용진 부회장이 직접 설립한 와인 수입유통사다.

설립 초기 신세계L&B는 이마트 등에 와인을 납품하는 협력사에 불과했다. 그러다 신세계백화점 등 계열 유통사의 전폭적 지원을 통해 매출을 키워나갔고, 2017년 당시 1위였던 금양을 제쳤다. 지난해 매출액은 2000억원으로 2019년 대비 두 배 가량 늘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32억 원에서 212억 원으로 7배나 급증했다.

신세계그룹 내 부동산개발 계열사 신세계프라퍼티는 지난 2월 미국 와이너리 쉐이퍼빈야드와 관련 부동산을 3000억원에 인수했다. 이어 지난 7월 판권을 확보한 데 이어 최근 관련 제품을 출시했다. 국내 유통기업이 미국 와이너리를 인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수 사실이 알려졌을 당시, 업계에서는 "신세계가 와인업계 티라노사우르스가 됐다"는 평가하기도 했다.

신세계L&B 관계자는 "1979년 10월 설립된 쉐이퍼빈야드는 미국 나파밸리를 대표하는 '힐사이드 셀렉트'를 비롯한 5개의 럭셔리 제품을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수에는 정용진 부회장이 적극 관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 부회장은 업계에서도 알아주는 와인 애호가. 정 부회장이 인스타그램에 "가성비 최고의 와인 발견"이라며 소개한 카멜 로드 몬테레이 피노누아는 아예 '정용진 와인'으로 통한다. 정 부회장은 카멜 로드에 대해 "꽃향기와 버섯 향기가 어우러지고 은은한 산미가 느껴진다"고 평하기도.

한편 유통 라이벌 롯데는 신세계의 공격적 행보에 밀려 다소 주춤한 상태다.

롯데는 국내 최장수 와인 마주앙(1977년 출시)을 보유하고, 한때 국내 와인 시장 선구자로 불렸다. 하지만 지난해 기준 매출액은 신세계, 금양, 아영FBC, 나라셀라에 이어 5위(831억원)에 그쳤다.

롯데는 선두 탈환을 위해 롯데칠성음료와 롯데마트, 롯데쇼핑 같은 계열사를 통해 다각도로 사업 재편에 나서는 모습이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해 와인 직영점 와인온(Wine On)을 출범시켰다.

롯데쇼핑의 와인 전문점 보틀벙커의 성장세도 눈여겨 볼만 하다. 2021년 12월 롯데마트 잠실점에서 첫 출발한 보틀벙커는 폭발적 인기에 힘입어 현재 맥스 창원중앙점, 맥스 상무점까지 3개의 매장이 운영되고 있다.

롯데마트는 신동빈 회장 주도 아래 중저가 와인으로 시장을 넓혀 왔다. 계열사 물량 통합을 위해 롯데마트 내에 와인 관련 별도 조직인 '프로젝트W' 팀도 만들었다. 내년 상반기까지 와인 브랜드 리뉴얼 및 해외 와이너리 인수 추진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특히 대표작품으로는 신 회장이 지난해 11월 와인 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꼽은 직후 출시된 '트리벤토'가 있다. '트리벤토'는 그가 1981년부터 1988년까지 영국에서 생활하던 당시 즐겼던 와인으로 신 회장의 직접적인 추천이 있었다고 한다.

다만 아직까지 와인 사업이 전체 계열사들의 재무구조 개선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롯데가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롯데칠성은 2023년부터 3000억원 규모의 CAPEX(설비투자) 증액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재무비율의 단기 개선은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라 짐작할 수 있다.



▶맹추격 시작한 후발주자 : ● '아직 흐리고 비' 현대백화점, ● '좀처럼 알 수 없는 안갯 속' GS리테일

후발주자들은 차별점을 내세우며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3월 와인 수입·유통사 비노에이치(Vino.H)를 설립, 프리미엄·유기농 와인을 시장에 소개하고 있다. 최근에는 프랑스 부르고뉴 등 유럽 와이너리 10곳과 와인 100여종의 수입계약을 체결했다.

현대백화점 측은 중저가 제품에 집중하는 타 유통사들과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프리미엄 라인에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현대백화점의 사업 성패를 가를 핵심 키(key)는 제품 구성이 아니라 유통채널 확대라 분석한다. 유통망이 백화점에 한정돼 있어 다양한 니즈를 가진 소비자의 수요를 즉각 충족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다. 프리미엄 위주의 상품 라인업 역시 MZ세대에게 가격적 허들을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한편 원소주 등으로 재미를 본 GS리테일도 최근 와인 시장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GS리테일은 지난 21일 프랑스의 '바론 필립 드 로칠드(BPDR)' 가문과 손잡고 GS리테일 전용와인을 만들겠단 계획이다. 출시일은 내년 상반기다. 전국 1만6000개 GS25 편의점 유통망을 적극 활용해, 기존 대형마트나 백화점 중심의 시장을 편의점 중심으로 재편한다는 전략이다.

이번 협업에는 허연수 GS리테일 부회장이 적극 관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상품구매(MD) 본부장 시절부터 와인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허 부회장은 한국을 찾은 베로니크 홈브룩스 BPDR 매니징 디렉터를 직접 만나 관련 사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본사 차원의 구체적인 와인 사업 확장 전략이 공개되지는 않은 상태. 업계에선 시장에 뒤늦게 뛰어든 만큼 세밀한 사업 전략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라 우려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외부 환경도 좋지만은 않다. 시장의 성장세가 둔화할 것이란 예측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엔데믹으로 홈술족이 줄어들고, 와인 소비층이 맥주나 소주 등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단기간 유행에 휩쓸리지 않을 정도로 시장이 커졌으나, 엔데믹 이후 또 라이프 스타일이 급변하면서 시장이 요동칠 것"이라면서 "시장 호황 효과를 언제까지 누릴 수 있을지 확언하기 어려운 때다. 기업들의 사업 확장에도 적지 않은 부담이 따를 것으로 보여 신중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민정 기자 mj.ch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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