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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DNA' 박성현, 맞춤 캐디와 손잡고 우승 수수께끼 풀었다

김진회 기자

입력 2017-07-17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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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DNA' 박성현, 맞춤 캐디와 손잡고 우승 수수께끼 풀었다
ⓒAFPBBNews = News1

서울유현초 2학년 때 어머니의 권유로 골프를 시작한 박성현(24·KEB하나은행). 당시만 해도 치렁치렁 머리카락 기르는 것을 좋아했던 소녀였다. '쇼트커트'로 헤어스타일을 바꾼 건 4학년 때였다.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던 머리카락을 자르기 위해 미장원에 가면서 울고불고 난리를 피웠지만 "여자 운동선수 머리는 무조건 쇼트커트"라는 코치의 냉정한 기준에 지금의 '박성현 헤어스타일'이 시작됐다.



'될 때까지 하면 된다.' 박성현의 좌우명이다. 고교 시절에 이어 프로가 돼서도 시달렸던 드라이버 입스(샷 실패에 대한 불안 증세)를 고친 뒤 정했다. 박성현은 자신의 좌우명대로 2017년 가장 설레는 목표를 달성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첫 승이다.

박성현은 17일(이하 한국시각) 미국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파72·6762야드)에서 벌어진 LPGA 투어 메이저대회인 US여자오픈 최종 라운드에서 버디 6개와 보기 1개로 5언더파 67타를 쳤다. 최종합계 11언더파 277타를 기록한 박성현은 14번째 대회 출전 만의 미국 무대 첫 우승을 신고했다. 우승 상금 90만달러(약 10억2000만원)도 챙겼다.

▶간절함이 일군 '1승'

LPGA 투어 1승은 지난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7승이나 거둔 박성현에게 다소 소박한 목표일 수 있었다. 그러나 박성현의 생각은 달랐다. 1승의 가치를 높게 책정해놓았다. '자존심'이었다. 앞서 미국으로 떠난 대부분의 선수들은 LPGA 투어에서 우승을 하고 입성했다. 그러나 박성현은 우승 없이 상금랭킹을 통해 시드권을 부여받았다. 지난해 에비앙챔피언십 준우승과 US여자오픈 3위에 만족할 수 없었던 이유다.

박성현에게 1승이 간절했던 이유 또 있다. 가장 큰 목표인 '신인왕'을 위해서다. 박성현이 올해 신인왕을 받게 될 경우 한국여자골프 사상 처음으로 3년 연속 한국 선수가 LPGA 신인왕에 오르게 된다. 꾸준한 활약과 함께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선 우승이 필수였다. 이 조건을 빠르게 충족시킨 박성현은 17일 현재 신인왕 포인트에서 997점을 획득, 2위 앙헬 인(미국·359점)과 3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맞춤형 캐디 고용 적중

박성현은 지난달 초 숍라이트 클래식부터 새 캐디와 호흡을 맞췄다. 미국 진출부터 함께 했던 캐디 콜린 칸과 헤어졌다. 로레나 오초아 매치플레이를 끝으로 7개 대회 만에 결별이었다. 코스공략 방법을 놓고 의견차가 빈번했다. 이후 킹스밀 챔피언십과 볼빅 챔피언십에선 임시로 크리스 매칼몬트와 함께 했다. 그리고 맞춤형 캐디를 고용하자 좀처럼 풀리지 않던 우승의 수수께끼가 해결됐다. 주인공은 전인지(23)의 백을 멨던 데이비드 존스였다. 태극낭자들의 캐디를 많이 경험해본 존스는 '우승 제조기'로 불린다. 2013~2015년 최나연의 곁을 지키면서 2015년 1월 코츠챔피언십 우승을 합작했다. 이후 지난해 말까진 2년여간 전인지와 함께 한국, 미국, 일본 투어의 메이저대회 4승을 거뒀다. 특히 우승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던지는 존스의 농담은 부담감에 휩싸인 선수들에겐 큰 위안과 격려가 되기도 했다. 지난해 에비앙 챔피언십 최종라운드 18번 홀에서도 전인지에게 재치 있는 조언을 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당시 전인지는 파 세이브를 해야 메이저대회 최저타수 신기록을 작성할 수 있었다. 존스는 전인지에게 "만약 파를 챙기면 내가 저녁을 살게"라고 말했다. 전인지는 "내기에 이겨 비싼 음식을 먹겠다"고 답했다. 가벼운 대화로 긴장을 누그러뜨린 덕분에 전인지는 파 세이브에 성공, 대기록을 세웠다.

박성현의 우승 뒤에도 존스의 조언이 있었다. US여자오픈 최종라운드 18번 홀(파5), 세 번째 샷이 길어 그린을 놓친 상황이었다. 박성현은 "사실 네 번째 샷을 남겨두고 머릿 속이 하얗게 변했다"고 말할 정도로 당황했었다. 이 때 존스는 "항상 연습 때 치던 것이니 편안하게 치라"고 했다. 부담을 줄인 박성현은 환상적인 어프로치로 홀 컵 1m 안에 붙일 수 있었다. 박성현은 "나도 어프로치를 한 뒤 깜짝 놀랄 정도였다. 이렇게 캐디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웃었다.

▶남다른 스포츠인 DNA, 초심

박성현은 부모님에게 남다른 운동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축구선수 출신인 아버지와 태권도 공인3단의 선수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박성현은 어머니 이금자씨에게 물려받은 강한 골반과 허리 힘이 장타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골프 대디'가 딸을 관리하는 것과 달리 박성현은 어머니가 연습장과 대회장을 항상 같이 다닌다. 어머니는 선수 출신답게 '기다림의 미학'을 잘 알고 있다. 운동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한다. 절대 심리를 조급하게 만들거나 재촉하지 않는다. 또 프라이버시를 건드리지 않는다. 박성현은 US여자오픈 우승 뒤 어머니를 보자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박성현은 "어머니가 제가 우승할 때 앞에 나서거나 하지 않는 분인데 다가와서 '잘했다' 하시니 그 때 우승이 실감났다"면서 "나와 함께 다니며 고생하시고 그런 모습이 겹쳐서 끌어안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항상 감사하다"고 전했다.

박성현은 완벽주의자다. 그래서 늘 목표가 명확하다. 지난해 말 미국 진출을 발표한 뒤 "나는 미국에서 알려지지 않은 신인 선수다. 박성현 스타일로 내 이름 석 자를 알려주고 싶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이미 부와 명예를 거머쥔 상황이었다. 그러나 박성현은 새 무대 성공을 위해 명확한 목표를 세웠다. '초심으로 돌아가기.' LPGA 투어는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세계였다. 도전 자체가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 있겠지만 실패는 하기 싫었다. 꿈을 이뤘다. US여자오픈 우승으로 박성현은 전세계 골프 팬에게 '박·성·현'이란 석 자를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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