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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살기로 울산 울린 포항, 이게 바로 더비다

박찬준 기자

입력 2019-12-04 06:00

죽기살기로 울산 울린 포항, 이게 바로 더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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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1일 장대비 속 혈투가 펼쳐진 울산과 포항의 2019년 하나원큐 K리그1 최종전.



후반 42분 김승규의 스로인 실수를 가로채 허용준이 세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3-1, 사실상 승부가 결정이 났다. 포항의 모든 선수들이 뛰어들어 함께 세리머니를 펼쳤다. 마치 우승을 한 듯한 분위기였다. 기세를 몬 포항은 한 골을 더 추가했고, 4대1 대승을 거뒀다. 비기기만 해도 14년만의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울산은 허탈하게 고개를 숙였다.

사실 이날 경기는 포항 입장에서 아무 것도 걸린 것이 없었다. 노려볼 수 있는 메리트는 4위 진입이 다 였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 티켓은 수원이 FA컵 우승을 차지하며 3위까지 주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항 선수들은 죽기 살기로 뛰었다. 구단 수뇌부도 선수들에게 '당근'을 내건 것으로 알려졌다. 이유는 하나, 상대가 '라이벌' 울산이었기 때문이다.

울산과 포항의 경기는 '동해안더비'로 불린다. 울산과 포항 선수들은 "다른 팀에게는 져도 동해안더비는 절대 지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진짜 많이 듣는다"고 했다. 사실 서울과 수원의 슈퍼매치에 가려졌지만, 동해안더비는 K리그에서 가장 오래된 더비다. 1990년 울산이 모기업의 근거지인 울산으로 연고를 이전하며 시작됐다. K리그를 대표하는 두 팀은 1998년 플레이오프를 기점으로 라이벌 의식을 폭발시켰다. 당시 두 팀은 역대급 명승부를 연출했다. 이후 숱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냈다. 김병지, 설기현 등 핵심 선수들이 유니폼을 바꿔 입고, 팬들 사이에 감정을 건드리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이어졌다.

양 팀이 쌓아온 골 깊은 감정은 '12월1일'을 통해 폭발했다. 첫번째 12월1일은 2013년이었다. 무려 2만8000여명의 팬들이 찾은 이날 경기에서 포항은 역대급 역전극을 썼다. 반드시 이겨야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포항은 당시 비기기만 해도 되는 울산에 후반 추가시간 비수를 꼽으며 대역전 우승에 성공했다. 이후 동해안더비는 한단계 더 성장했다. 양 팀 팬들의 기싸움은 더욱 치열해졌다. 동해안더비의 패배는 1패 이상의 의미였다. 진 팀 서포터스는 버스를 가로막고 항의하기 일쑤였다. 승리한 팀은 이날 승리를 통해 분위기를 바꿨다.

그리고, 2019년 역사가 반복됐다. 올해 12월1일 포항이 4대1로 승리하며 울산의 우승을 또 한번 좌절시켰다. 경기 전부터 "전북을 우승시키겠다"고 한 포항 선수단의 의지는 허언이 아니었다. 경기 내내 울산을 흔들었고, 그 기에서 밀린 울산은 패배의 쓴 맛을 봤다. 울산 팬 입장에서 우승을 놓친 상심도 컸지만, 하필 포항에 당한 패배라 더 아팠다.

더비란 이런 것이다. 더비란 같은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는 두 클럽 간의 대결이자, 정치적인, 종교적인 이유 등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는 두 팀의 경기를 말한다.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엘클라시코, 레인저스와 셀틱의 올드펌 더비, 보카주니어스와 리베르플라테의 엘수페르클라시코 등이 대표적이다. 치열하다는 말로 부족할 정도도 뜨거운 경기다. 사실 K리그의 라이벌전은 너무 심심했다. 슈퍼매치가 오랜기간 사랑을 받았지만, 서로 죽여야 하는 전쟁 같은 느낌은 없었다.

울산과 포항은 두번의 '12월1일'을 통해 서로에게 지우지 못할 기억을 만들었다. 스포츠는 곧 스토리다. 재밌는 스토리로 무장한 동해안더비 같은 경기가 많아질수록 K리그에는 더 많은 팬들이 모인다. 내년 시즌 동해안더비에 눈길이 모아지는 이유, 김기동 포항 감독의 말에 답이 있다. "큰일났습니다. 이제 '동해안더비'가 아니라 '동해안전쟁'이 될 것 같습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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