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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친절한 축구장]축구만 본다? 축구장, 이제는 문화소비공간으로

김가을 기자

입력 2018-09-21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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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만 본다? 축구장, 이제는 문화소비공간으로
사진제공=울산 현대

축구장에 봄날이 찾아왔다. 구름 인파가 몰린다.



김학범호가 이끄는 23세 이하(U-23) 대표팀의 아시안게임 금메달, 벤투호 출범 이후 A대표팀에 대한 기대감 상승 등이 어우러져 축구장에 팬들이 몰리고 있다.

반색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외부적 동력에 이끌려 밀려 들어온 물은 순식간에 썰물처럼 빠져나갈 수 있다. 어떻게 물을 가두고 노를 저을 수 있을까. 축구계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때다.

프로스포츠의 존재 이유는 고객에 있다. 팬 없는 프로스포츠 종목은 오랜 가뭄 속에 위태롭게 서 있는 나무와 같다. 발전은 커녕 생존도 어렵다.

스포츠조선이 축구 인기 지속과 미래적 발전을 위한 제언을 준비했다. 시간이 많지 않다. 서두르지 않으면 모처럼 밀려온 축구 인기도 머지않아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 있다. 축구 강국이란 미래를 위해 당장 팔을 걷어붙여야 할 시점이다. 실천이 먼저다. <편집자 주>

①쾌적한 시설, '팬 퍼스트'의 첫 걸음

②축구만 본다? 축구장, 이제는 문화소비공간으로

③팬도 스타도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난 16일, 서울과 대구의 2018년 KEB하나은행 K리그1 28라운드 경기가 펼쳐진 서울월드컵경기장. 킥오프 시간까지는 두 시간 이상 남았는데, 축구장 근처는 팬들의 발걸음으로 가득했다. '홈팀' 서울이 준비한 특별한 이벤트를 만끽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서울은 선수와 팬이 함께하는 '명랑운동회'를 진행했다. 고요한팀과 신진호팀으로 나눠 단체줄넘기, 릴레이 등을 즐겼다. 끝이 아니었다. 팬파크로 자리를 옮겨 팬사인회도 진행했다. 팬들은 축구장에서 축구뿐만 아니라 문화 생활도 톡톡히 즐겼다.

축구장이 달라지고 있다. 팬들의 수요에 맞춰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다. 팬층의 다양화를 위해 더 많은 고민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팬들이 달라진다, 선택의 폭을 넓혀라

축구장을 찾는 팬들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성인 남성이 주 고객이었다면 최근에는 가족 단위로 확대됐다. 축구장은 단지 축구를 보기 위한 장소만이 아니다. 회사원들의 친목 장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연인의 데이트코스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최근에는 여성팬이 급격히 늘었다.

구단은 팬들의 니즈에 맞춰 선택지를 넓히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좌석이다. 기존의 지정좌석을 각종 '존'(ZONE)으로 바꿔 다양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실제로 포항과 수원, 인천은 맥주존을 판매 중이다. 이 좌석을 선택한 팬에게는 맥주가 제공된다.

가족단위 팬을 위한 특별 좌석도 마련됐다. 전북은 지난해부터 평상석을 도입했다. 기존 지정좌석과 서포터즈석 사이의 틈을 활용한 것이다. 전북 관계자는 "공간이 넓지 않아 받을 수 있는 인원 자체가 많지 않다. 하지만 가족단위 팬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울산도 누워서 축구를 즐길 수 있는 빈백석을 판매 중이다. 좌석 구매 시 빈백과 캠핑 돗자리를 대여해 편안하게 경기를 즐길 수 있다. 아이 동반 팬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달라진 마켓 수요, 지갑을 열어라

팬 구성이 다양해지면서 마켓 수요도 달라지고 있다. 소속감을 불러일으키는 유니폼은 필수다. 특히 최근에는 오리지널 유니폼 외에 스페셜판이 제작되고 있다. 서울은 여성팬을 위해 한정판 개념으로 핑크유니폼을 내놓았다. 포항은 두 시즌 연속 골키퍼 유니폼을 핑크 계열로 제작했다. 여성팬의 호응이 좋다. 다른 구단들도 핑크 계열의 서드 유니폼 제작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상품도 다양해졌다. 실생활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아이템이 팔리고 있다. 휴대전화 케이스는 물론이고 파우치, 텀블러 등이 등장했다. 제주는 마스코트를 활용해 '감규리 패밀리' 인형 세트를 론칭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A구단 관계자는 "소위 말하는 '팬질'을 할 수 있게 다양한 제품을 내놓아야 한다. 팬 구성도 다양해진 만큼 성별, 연령 등에 따라 기호도 다르다. 하지만 아직 구단 아이템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이유는 명확하다. 마켓 파워의 한계 때문이다. B구단 관계자는 "가장 많이 팔리는 것은 단연 유니폼이다. 90%를 차지한다고 보면 된다. 아이템을 만들어도 팔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재고를 생각하면 아무래도 고민하게 된다"고 전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공동 제작을 진행했다. K리그1과 K리그2(2부 리그) 소속 총 10개 구단이 참가했다. 인기 캐릭터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 구단별로 100개 한정 상품을 만든 바 있다.

▶최종 지향점은 복합문화시설

구단과 연맹은 팬을 모으기 위해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개념은 '축구장에 가면 놀거리가 많다'는 인식을 보편화 하는 것이다. 축구전문가 C씨는 "축구는 두 시간이면 끝난다. 경기장에 왔다갔다 하는 시간이 더 걸린다는 인식이 있다. 축구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즐길거리와 볼거리로 팬의 발걸음을 멈춰 세워야 한다. 한나절을 놀아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심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북은 주말 경기에 팝업 스토어 형식으로 자동차전시관을 열었다. 모기업과 협력해 다양한 자동차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동시에 팬 사인회를 개최해 팬들과 만나는 자리를 가졌다. 전남은 오픈 그라운드 데이를 진행했다. 경기 뒤 그라운드를 개방해 팬과 선수가 만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홍보전문가 D씨는 "축구는 워낙 '남성 스포츠'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야구처럼 응원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틀을 깨기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공간이 더해져야 한다. 대형마트와 연결된 구장의 경우 팬들이 경기를 본 뒤 쇼핑을 하기도 한다. 이렇듯 축구라는 베이직 콘텐츠 외에도 부가적으로 즐길 수 있는 '무언가'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최근에는 백화점과 도서관 등에서도 풋살장을 만들어 협업을 시도하고 있다. 스타필드 하남과 고양점에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스포츠 몬스터가 대표적 사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각종 즐길거리를 축구장 안으로 들고 들어와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이벤트는 축구장 밖에서 진행된다. 팬들이 행사장을 찾는 것부터 어려워한다. E씨는 "북측광장, 동쪽입구 등으로 얘기를 하는데 솔직히 어딘지 잘 모르겠다. 그냥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푸념했다.

만약 축구장 안에 즐길거리를 만든다면 더 많은 팬이 함께 즐길 수 있다. '원스톱' 복합문화시설로서의 축구장. 축구 마케팅의 최종 지향점이다. 단순히 축구만 보는 시대는 지나갔다. 축구장을 찾는 팬들은 과연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계속돼야 하는 이유다.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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