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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준의 발롱도르]외질의 전격 은퇴, '순혈주의 타파' 흐름도 꺾일까

박찬준 기자

입력 2018-07-23 10:50

수정 2018-07-23 15:40

외질의 전격 은퇴, '순혈주의 타파' 흐름도 꺾일까
ⓒAFPBBNews=News1

축구는 민족주의와 가장 잘 결합된 스포츠다.



오죽하면 그 나라의 국기를 상징하는 유니폼을 입고 겨루는 축구 덕분에 전쟁이 줄었다는 분석이 있을 정도다. 그 정점은 단연 월드컵이다. 사실 월드컵은 정확히 말하면 축구협회 대항전이다. 하지만 국가 대항전으로 멋지게 포장되며 세계 최고의 이벤트로 자리매김 했다. 정치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데 인색한 유럽인들도 축구장에서 만큼은 국기를 흔들고, 국가를 목청 높여 부른다.

월드컵에 나서는 대표팀은 그 나라의 자존심이었다. 실력만큼이나 혈통이 중요했다. 그 나라의 피가 섞이지 않은 선수가 들어오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최근 이같은 순혈주의가 흔들리고 있다. 1990년대 월드컵에서 귀화선수들이 하나둘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민자 출신 선수들도 나왔다. 기폭제는 1998년 프랑스월드컵이었다. 1990년 이탈리아, 1994년 미국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한 프랑스는 다비드 트레제게(아르헨티나), 패트릭 비에이라(세네갈), 마르셀 드사이(가나) 등 이민자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이가 아프리카 알제리계 이민자 출신인 지네딘 지단이었다. 지단은 프랑스를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며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지단은 프랑스 사회를 흔들었던 이민자와 자국민 사이의 극심한 갈등을 넘어 이뤄낸 사회통합의 상징이었다.

이후 세계축구에서 순혈주의의 장벽은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독일이 대표적이었다. 20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독일은 '게르만 순혈주의'를 고수했다. 독일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선수만이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1998년 프랑스 대회 8강을 기점으로 급격히 몰락한 독일 축구계가 꺼낸 카드는 순혈주의 타파였다. 귀화선수와 이민자 후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가나계 게랄트 아사모아는 그 변화의 상징과도 같았다. 2002년 한-일 대회에서 독일 역사상 첫 흑인 월드컵 출전 선수로 기록된 그는 팀의 준우승에 일조했다. 이후 독일은 메주트 외질(터키), 자미 케디라(튀니지), 루카스 포돌스키(폴란드), 제롬 보아텡(가나) 등을 받아들이며 부활에 성공했다.

하지만 독일에 또 다른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 펼쳐졌다. 외질의 대표팀 은퇴다. 외질은 23일(한국시각) 자신의 SNS를 통해 '독일축구협회(DFB)로부터 당한 부당한 대우와 다른 여러 가지 일들 때문에 더는 독일 대표팀 유니폼을 입지 않겠다'며 '최근에 벌어진 일들을 무거운 심정으로 돌아보면서 인종차별과 무례함이 느껴지는 상황에서 더는 독일 대표팀을 위해 뛸 수 없다'고 했다. 발단은 역시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당시 일카이 귄도안과 함께 찍은 사진이 언론에 공개된 뒤 외질은 독일 팬들로부터 민족적 정체성이 의심된다는 공격을 받았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감싸면서 비난을 무마시켰지만, 대표팀이 사상 첫 조별리그에 탈락하며 외질은 다시 한번 비판의 중심에 섰다. 외질과 귄도안이 대표팀의 분위기를 무너뜨렸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외질은 이 전에도 국가 제창에 나서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외질은 대회 후 "내 심장은 두 개다. 하나는 독일인의 심장, 하나는 터키인의 심장"이라며 "내 직업은 축구선수이지 정치인이 아니다. 정치나 선거와는 아무 상관 없는 사진"이라고 했지만 여론은 악화일로였다.

결국 외질은 대표팀 은퇴라는 초강수를 뒀다. A매치 93경기에 나선 독일의 핵심 미드필더였던 외질은 자신의 SNS에 그동안 겪어왔던 설움과 함께 이슬람 문화에 적대적인 반응을 보여온 라인하르트 그린델 독일축구협회장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그대로 담아 독일 대표팀 유니폼 반납을 선언했다. 그는 '전 세계에 많은 선수가 이중 국적을 가진 상황에서 축구계는 인종차별의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며 '그동안 자부심을 느끼며 독일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다. 독일 팬들과 코칭스태프, 팀 동료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쳐왔던 만큼 은퇴 결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고 했다.

외질의 이번 결정으로 독일 대표팀의 방향성이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여전히 이민자들에 대한 불편한 시선이 있다. 독일 빌트는 외질의 은퇴에 대해 '완벽한 자기연민'이라며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다. 만약 이민계 선수들이 외질의 뜻과 함께한다면, 독일계와 비독일계 선수들의 갈등이 심화될 수 있다. 그간 단단한 팀워크를 무기로 했던 독일의 강점이 사라질 수도 있다. 안팎으로 최악의 위기를 맞은 독일. 과연 이번 사태를 현명하게 넘길 수 있을까. 순혈주의 타파 흐름이 중요한 변수를 맞았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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