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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스토리]윤덕여호 무실점 뒤 코칭스태프의 몸 던진 헌신 있었다

전영지 기자

입력 2018-04-23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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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여호 무실점 뒤 코칭스태프의 몸 던진 헌신 있었다


"한국은 충분히 4강에 갈 수 있는 팀이다. 호주, 일본 등을 상대로 실점하지 않은 유일한 팀이다. 최고의 수비 기술을 가졌다."



요르단여자축구아시안컵 5-6위전에서 한국과 맞붙은 프랑스 출신 라바 벤라르비 필리핀 여자축구대표팀 감독은 한국의 수비력에 찬사를 보냈다. 요르단 현장에서 만난 외신기자 및 전문가들도 일제히 끈질기고 투지 넘치는 한국의 수비를 칭찬했다. 윤덕여호는 요르단아시안컵 5경기에서 9득점, 무실점을 기록했다. 비록 4강에 오르지 못했지만 무실점-무패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하루 아침에 우연히 이뤄낸 성과가 아니다.

지난달 중순 파주 소집 이후 호주전까지 3주간 윤덕여호의 훈련 마지막 코스는 줄곧 세트피스 수비 훈련이었다. 이탈리아월드컵 국가대표 수비수 출신의 윤덕여 여자축구대표팀 감독은 아시안컵을 앞두고 강한 수비, 세트피스 무실점을 목표 삼았다. 호주 등 강팀과의 경기, 세트피스에서 실점한 장면을 보고 또 보며 치밀하게 분석했다. 이 장면에선 어김없이 남성 코칭스태프들이 등장했다. 정성천 수석코치가 상대 수비수, 정유석 골키퍼 코치가 키커 역할을 맡았다.

실전같은 크로스와 실전같은 수비가 없는 세트피스 훈련은 무의미하다. 정유석 코치의 왼발 코너킥은 강하고 날카로웠다. 정 코치의 정확한 킥을 가리켜 선수들은 "완전 고종수 킥!"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윤 감독은 강한 슈팅이 날아들 때마다 선수들에게 물러서지 말고 더 강하게 부딪힐 것을 주문했다. 장슬기 조소현 임선주 등 수비수들이 몸을 던지며 머리, 발로 필사적으로 크로스를 걷어냈다. 남자 못지 않은 피지컬을 갖춘 호주 수비수들에 대비해 정성천 수석코치는 '호주 대역'을 자청했다. 세트피스에서 선수들과 함께 튀어올라 공을 향해 머리를 부딪혔고, 미니게임에선 강한 몸싸움으로 공격수들을 밀어내며 투지를 불살랐다. 공격수들과 훈련 내내 신경전을 펼치는 모습은 이채로웠다. 강렬한 중동 태양 아래 코칭스태프들은 선수들과 함께 몸을 던지며 연일 뜨거운 땀방울을 흘렸다.

정유석 코치는 "포르투갈 알가르베컵에서 본 호주의 왼발 프리킥은 많이 감기고 상당히 날카로웠다. 이후 대표팀 소집까지 하체훈련과 킥 훈련을 정말 열심히 했다. 파주에서부터 한달 가까이 매일 수십 개씩 차다보니 나도 모르게 킥이 늘더라"며 웃었다. "밤마다 선수들 몰래 치료실 기계에 의지해 늘어난 다리 근육을 마사지했었다"고 했다. 정성천 수석코치 역시 "우리 입장에서는 당연한 임무다. 당연히 실전처럼 해줘야 한다. 하다보니 승부욕도 발동하더라. 선수들이 부상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최대한 실전처럼 강한 스파링 상대가 돼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실전보다 치열한 훈련은 실전에서 효과를 톡톡히 발휘했다. 5경기 무실점을 기록한 골키퍼 윤영글은 "훈련 때 코치님의 크로스가 워낙 강해서 막상 실전에서 호주선수들의 크로스는 오히려 약하게 느껴졌다. 볼이 잘 보였다"고 증언했다. 공격수 정설빈은 "코치님들이 미니게임 때 전혀 안봐주신다. 그런 강한 트레이닝이 실전에서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사상 첫 2회 연속 월드컵 진출의 꿈을 이룬 코칭스태프는 해야 할 일이 많다. 정 수석코치는 "윤 감독님을 잘 보필해서 감독님이 바라는 방향으로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다. 월드컵에 나오는 대륙마다 스타일이 다르니 잘 분석하고 대응 방법을 열심히 준비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정 골키퍼 코치는 "프랑스월드컵에 대비해 WK리그 소속팀 골키퍼 코치들과 더 원활하게 소통하겠다. 이번 대회는 무실점으로 마감했지만 월드컵에서는 세계적인 강팀을 상대해야 한다. 소속팀과 잘 소통해 각 골키퍼들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부족한 점을 보완하도록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비록 목표 삼은 우승은 불발됐지만 코칭스태프들에게 매순간 죽을 힘을 다해 달리고 또 달리는 윤덕여호 선수들은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예쁜 존재다. 정 수석코치는 "우리 선수들은 최선의 준비를 했고 최선의 투혼, 최선의 경기를 보여줬다. 우리 선수들은 내게 늘 100점"이라며 미소지었다. 정유석 코치 역시 3명의 골키퍼 윤영글, 강가애, 정보람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대회 전 선수들에게 '98점'이라고 했었다. 남은 2점은 경기를 잘 준비해서 채우라고 했었다. 3명의 골키퍼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100%를 해줬다.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암만(요르단)=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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