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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포항, '이명주 공백'은 변수가 아니었다

박아람 기자

입력 2014-04-21 09:54

수정 2014-04-2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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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포항, '이명주 공백'은 변수가 아니었다
ⓒ tbs 중계화면 캡처

주중 AFC 챔피언스리그 일정은 혹독했다. 서울이 호주 샌트럴코스트까지 8,300km의 원정 거리를 짊어진 동안 포항은 일본 오사카까지 1,500km를 왕복했다. 절대적 비교로는 포항이 우세해 보일지 몰라도, 경고 누적으로 생긴 '이명주 공백'에 '상암 징크스(포항은 2006년 8월 이후 서울 원정에서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하지만 포항은 선수 하나에 연연한 팀이 아니었다. 20일 낮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현대오일뱅크 K리그클래식 9라운드, 포항은 김승대의 골에 0-1로 승리했다.



전체적인 볼 점유는 서울이 더 앞섰다. 그렇다고 경기가 술술 풀리지는 않았다. 두 팀이 '첫 압박'을 시도한 높이엔 다소 차이가 있었는데, 포항이 중앙선 윗 진영까지 올라가 상대의 빌드업 방해에 더 적극적이었다. 초반 기세 싸움에서 밀린 서울은 백패스로써 위기를 모면하고자 했다. 볼이 뒤로 흐르면서 포항은 라인을 더욱더 끌어 올릴 기회를 잡았다. 이는 '후방에서 처리하는 볼의 낙하지점'까지 결정했다. 김용대가 볼을 차낸 위치 자체가 아래로 처졌고, 처리한 롱볼은 중앙선을 갓 넘는 곳에 떨어졌다.

김현성의 머리로는 한계는 있었다. 일단 골키퍼가 처리한 킥이 포항의 깊숙한 진영까지 날아가지 못한 탓에 헤더로 볼을 따낸다고 해도 상대 페널티박스까지의 거리는 꽤 됐다. 게다가 제공권 싸움에서 압승한다는 보장도 없었으며, 세컨볼 싸움에서의 승률 역시 낮았다. 볼이 절묘하게 잘 떨어져 윤일록이나 에스쿠데로가 잡아도 속도 경합은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김광석을 비롯한 포항 수비진의 주력은 지난 6일 전북전에서 윤일록이 윌킨슨을 좌우로 흔들며 골을 터뜨리던 장면을 허락할 리 없었다.

포항이 발밑 싸움에서 취약했던 것도 아니다. 오스마르에게 빌드업의 짐이 몰려 있었던 서울은 좌우로 볼을 뿌리면서 간간이 직선 루트를 노리곤 했다. 하지만 김태수-황지수는 부지런했고, 김광석-김원일은 발이 빨랐다. 김현성의 키핑이 100만 개 중 3.4개의 불량품을 낸다는 '6시그마'급이 아닌 이상 포항의 수비형 미드필더와 중앙 수비 사이 공간에서 살아남긴 어려웠다. 서울이 볼을 오랫동안 점유했지만, 볼을 잡은 선수나 받을 선수나 움직임이 치명적이지 않아 포항 입장에서는 수비하기가 편했다.

서울이 기대할 건 '개인 전술'과 '세트피스'였다. 어쩌면 개인 돌파가 상대의 조직적인 전형을 찢어놓을 수 있는 무기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윤일록이 드리블로 치고 달리던 모습, 차두리가 대차게 밀고 나오던 장면은 두 팀의 시스템 및 포메이션 대결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변수였다. 게다가 상대 진영에서 얻은 세트피스도 보다 높은 선에서 공격을 이어나간다는 가치가 있었다. 다만 개인 돌파를 도와줄 만한 동료의 움직임이 없었고, 김진규의 프리킥은 크로스바를 때리거나 신화용의 선방에 막히고 말았다.

포항엔 이명주의 공백이 분명히 존재했다. 고무열, 손준호를 투입해가며 실마리를 풀려 했으나, 상대 진영에서 볼을 소유한 채 공격을 전개하는 장면은 부쩍 줄었다. 체력적인 부담에 활동량은 부족했고, 패스 줄기는 시들어 있었다. 이런 침묵을 깬 건 김승대였다. 포항다운 플레이가 안 됐을 때, 김승대는 직접 내려와 제로톱의 가치를 증명해냈다. 김재성과 볼을 주고받는 장면에서 나온 '정확한 패스-지체없는 패스 타이밍-공간 침투-최종 수비 앞 침착함'으로는 못 뚫을 게 없었다. 충분한 숫자였던 서울 수비진도 이 패턴에 맥없이 무너졌다.

포항은 팀 전력을 받치는 지지대가 여러 곳으로 퍼져 있었다. 이명주가 빠지며 풀전력을 가동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전력 누수의 부담이 나머지 이들에게 분산돼 지탱해낼 수 있었다. 선수 하나가 빠져도 크게 구애받지 않는 모습, 그만큼 팀이 건강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이는 K리그 최정상급 스트라이커와 미드필더를 잃고 표류하는 상대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았을까 싶다.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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