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열기를 보여준 2002년 한-일월드컵은 유럽 클럽들의 한국시장에 대한 기대심리를 높이는 데 큰 몫을 했다. 그러나 송종국 김남일 이천수 등이 차례로 실패를 했다. 단순한 경기력 차원이 아니다. 마케팅에서 재앙에 가까운 성적표를 보였다. 송종국을 영입했던 페예노르트와 안정환을 데려간 페루지아는 대놓고 불만을 표출했다. 다행히 박지성(QPR)의 등장은 유럽의 한국축구에 대한 시각을 바꾸었다. 마케팅을 넘어선 실력을 인정받았다. 박지성은 세계 최고의 클럽인 맨유에서 뛰며 아시아 최초로 유럽챔피언스리그 결승 무대까지 밟았다. 박지성을 앞세운 한국은 아시아 유럽파의 중심이었다.
반면 일본 선수의 유럽 진출은 마케팅용이라는 꼬리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나카타 히데토시 같은 히트상품도 있었지만, '유니폼 판매원'이라는 조롱을 받았던 이나모토 준이치와 같은 사례가 더 많았다. 하지만 일본은 얼어붙은 축구시장에서 여전히 매력적인 무대였다. 유럽 하위 리그의 하위권팀들은 재정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검증된 일본 시장으로 눈길을 돌렸다. 일본 유럽파는 네덜란드, 벨기에 등 작은 무대에 모여 있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주로 빅리그에서 뛰는 한국 유럽파와의 비교는 무의미했다.
2012년 여름 '한국의 에이스' 박지성이 떠난 맨유에 '일본의 에이스' 가가와가 들어온 것은 한-일 유럽파의 현재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유럽에서도 한국은 일본에 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