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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점검 한국축구, 일본만 못하다]한국, 이대로는 일본 영영 못 잡는다

박찬준 기자

입력 2013-01-03 18:03

수정 2013-01-04 08:22

한국, 이대로는 일본 영영 못 잡는다
◇일본 축구에게 한국은 더 이상 라이벌이 아니다. 한국 선수들이 2011년 8월 11일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 돔에서 열린 한-일전에서 3대0으로 승리한 뒤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있는 일본 선수들을 바라보고 있다. 삿포로(일본)=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한국축구가 아시아 최강일까.



월드컵 4강, 올림픽동메달, 그동안 한국축구의 위상은 높아졌다. 이제는 아시아를 넘었다고 자부했다. 세계와 경쟁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그런데 여기서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과연 그럴까.

스포츠조선은 2013년을 맞아 한국축구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더 나은 발전을 위해서다. 미래는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현실성을 갖게 된다.

비교대상을 일본으로 삼았다. 피부로 '확'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일본은 많은 면에서 우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왔다. 모든 걸 객관적인 시각에서 비교했다.

결론은 '이대로라면 영원히 일본을 잡을 수 없다'였다. 다소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한국축구의 현주소다.

좋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이제부터라도 한국축구가 살 길을, 발전의 길을 찾으면 된다. 답은 자명하다. 이대로는 안된다. 변해야 한다. 2013년, 계사년을 한국축구 개혁의 원년으로 만들어야 한다. <편집자주>

일본에게 한국은 더 이상 '숙명의 라이벌'이 아니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한국은 더 이상 일본의 상대가 안된다. 대표팀 경기력부터 프로 리그, 유소년 저변, 축구 행정 및 국제 외교력 모든 부분에서 일본에 뒤져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내놓고 있는 랭킹에서 일본이 22위인 반면, 한국은 35위다. 한-일 축구의 격차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수치다. 한때 정기전으로 치러졌던 한-일전도 이제는 자국 축구의 열기에 불을 지피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실력으로는 배울 것이 없는 '이벤트 매치'일 뿐이다. 적어도 일본의 생각은 그렇다.

▶일본 축구에 한국은 없다

내면의 차이는 크다. 한-일 양국이 나란히 16강에 올랐던 2010년 남아공월드컵 이후가 잣대다. 한국은 일본과의 A매치에서 무승(2무1패)에 그치고 있다. 한국이 의미없는 평가전을 반복하는 동안, 일본은 프랑스, 브라질 등 세계 유수의 강호들이 앞다퉈 초청하는 팀이 됐다. 남미국가대항전인 코파아메리카에는 단골 초청팀이 된 지 10년이 넘었다. 한국 선수들이 중동이나 일본, 중국으로 눈길을 돌리는 사이, 일본은 유럽파 만으로도 23명의 A대표팀 소집 한도를 채울 수 있을만큼 성장했다. 유럽 군소리그 선수까지 합하면 일본의 유럽파는 40여명에 달한다.

K-리그보다 10년 늦게 출범한 J-리그는 이미 수 년전 아시아를 대표하는 리그의 지위를 차지했다. 10년 먼저 프로리그를 출범시킨 한국은 일본보다 14년 늦게 승강제의 문을 열었다. 한국을 보며 프로화를 준비하던 일본에 이제는 한국이 수시로 '신사유람단'을 보내 벤치마킹을 한다. 협회 행정은 말할 것도 없다. 불과 10여년을 두고 벌어진 일들이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혹자는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엔화의 힘이 일본 축구를 살찌운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1964년 독일의 명장 데트마르 크라머를 영입하고, 1970년대 후반부터 어린 선수들을 해외로 연수 보낸 것, J-리그 출범 당시 한물 갔지만 최고 스타였던 지코와 게리 리네커, 둥가를 영입할 수 있었던 것은 돈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원동력은 과감한 개방과 뼈를 깎는 혁신이다. 1970년대만 해도 일본 축구는 아시아의 변방이었다. '아시아의 맹주'로 군림하던 한국은 물론이고, 중동-동남아시아 팀들과의 맞대결에서도 맥을 못췄다. 현실을 인정했다. 대신 '탈아시아'를 외치면서 세계 축구의 모든 장점을 수용하려 했다. 일본 축구가 세계 정상에 오르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은 '백년구상'도 이때 나온 것이다. 한국 축구 역시 1983년 태동한 프로 물결을 타고 1986년 멕시코월드컵 본선행이라는 역사를 썼다.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월드컵 진출에 목을 맸을 뿐, 구체적인 발전은 도외시 했다. 호랑이가 포만감에 도취되어 있을 때, 사무라이는 쉼없이 칼을 갈았다.

▶달라도 너무 다른 한-일 축구협회

근본적인 원인은 축구행정에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나치게 큰 회장의 권한과 폐쇄적인 환경에 매몰되어 있다. 밀실에서 야합해 대표팀 감독을 경질하고도 잔여 연봉은 나몰라라다. 그 사이 비리를 저지른 직원에게는 추문을 우려해 억대의 위로금을 손에 쥐어줬다. 2012년 런던올림픽 당시 불거진 박종우의 독도 세리머니 논란 때 일본축구협회에 보낸 사과성 공문이 없다고 발뺌하다 들통나 국제망신을 당했다. 조중연 축구협회장은 반성의 기색이 없었다.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되려 울분을 토했다. 대한체육회 한해 예산과 맞먹는 예산을 주무르며 '아시아 최고'를 외치는 축구협회의 현주소는 권력의 맛에 매몰된 구태의 온상일 뿐이다.

일본축구협회(JFA)를 보면 부럽기만 하다. 운영은 유럽 선진국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수준까지 도약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회장 임기가 불과 2년이다. 부회장 2명과 전무이사 1명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축구협회 대의원과 같은 개념인 일본의 평의원회는 임원과 이사를 구분하고 감사까지 둔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회장 선임 권한을 갖고 있다. 하지만 회장과 임원의 권한은 일본 축구의 대표자 성격을 띨 뿐이다. 실질적인 업무는 이사진으로 구성된 상무위원회와 두뇌집단이 맡는다. 일본 최대 기획사인 덴츠도 한 축이다. 모든 결정은 문서화되어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된다. 재무 구조 역시 예결산서 전체 내역을 공개하며 투명성을 확보하고 있다. 발전 및 저변 확대 노력도 인상적이다. 지도자 전문양성기관인 JFA지도자 학교, 전국 3개 지역에서 선수 양성소인 JFA아카데미가 운영되고 있다. 사회공헌 사업 뿐만이 아니다. 아시아까지 외형을 넓히고 있다. '아시아 축구 발전 없이 일본의 발전도 없다'는 모토 아래 지도자 교육 및 유소년 양성을 지원하는 'JFA 드림 아시아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아시아 공헌은 고사하고 국내 환경조차 제대로 만들어 가지 못하는 축구협회의 현실이 부끄럽기만 하다.

JFA는 2005년에 'JFA 2005년 선언'을 내놓았다. 2015년까지 JFA가 세계 10위권의 조직으로 도약하고 A대표팀이 브라질월드컵 8강에 진입하는 것이다. 2050년에는 1000만명의 축구인을 양성하고 월드컵을 제패한다는 계획까지 서있다. 아직까지는 꿈에 불과하다. 하지만 2011년 독일 여자월드컵에서 일본이 우승을 차지한 모습을 보면, 허풍처럼 들리진 않는다.

▶역전의 기회는 충분하다

현실을 인정하자. 아시아 축구의 중심은 이제 일본이다. '일본만은 이긴다'는 정신력을 앞세우는 대표 선수들의 승패만을 갖고 논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 한국 축구가 아시아의 맹주라는 타이틀을 찾기 위한 치밀한 진단과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과연 한국축구 발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일을 해야 할 지 고민해야 한다. 축구협회가 축구인을 다스리기 위한 조직이 아니라 한국축구의 발전을 위해 존재한다는 점을 되새겨야 한다.

JFA의 2011년 지출액은 165억엔(약 2012억원)이다. 대한축구협회의 두 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반대로 말하면 JFA가 벌이고 있는 사업의 절반을 따라갈 수 있는 밑바탕이 한국축구에도 있다. 실현만 되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월드컵 본선행에 목을 맬 필요도 없다. 지금 한국축구에 필요한 것은 미래의 꿈나무를 길러내는 지도자들의 처우 개선과 우수한 선수들이 나올 수 있는 토대 마련, 대표팀의 자양분인 K-리그 발전 같은 밑바닥 다지기다.

일본축구가 한국을 추월한 것은 10여년 전이다. 아직까지 간격은 크지 않다. 잃어버린 10년 만큼의 노력을 통해 다시 진정한 아시아의 강자로 설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다. 지금 이대로라면 한국축구는 영원히 일본을 따라잡지 못할 수도 있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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