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재의 새록새록] "싸우고 또 싸우고" 결국 떠난 뒤 끝난 싸움

입력 2023-12-06 07:52

[촬영 유형재]


좁은 경포천에서 치열한 생존 경쟁…"경포 저류지에 유채밭 조성해야"



(강릉=연합뉴스) 유형재 기자 = 흔히 백조로 불리는 우아함의 대명사인 큰고니가 유에프씨(UFC) 선수처럼 먹이 공간 확보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어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겨울 진객 큰고니 무리가 이번 겨울 강원 강릉시 경포천을 찾아 월동 중이다.

멸종위기종이나 천연기념물인 큰고니가 월동 중인 곳은 경포천 선교장 앞 부근으로 폭 60∼70m, 길이 100m가량 되는 하천에서 갈대와 부들, 볏과의 식물인 줄 뿌리를 먹으며 지낸다.

비교적 좁은 공간에 많은 고니가 지내다 보니 매일 크고 작은 다툼이 벌어진다.


처음 5∼7마리가 있던 고니가 한때 50여 마리까지 늘어나자 가족 단위로 생활하는 고니들이 먹이 공간을 사수하거나 빼앗기 위해 싸움에 나서는 것이다.

이처럼 먹이를 먹을 수 있는 공간이 매우 비좁다 보니 암묵적으로 이뤄진 가족 간의 공간이 무너지고 그러면서 전쟁터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남은 먹이를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점차 줄어들고 고니 개체는 늘어나자 다른 가족이 있는 공간까지 침범해야 한다.

경포천에 큰고니의 울음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면 머리를 물속에 처박고 먹이를 찾던 다른 고니들이 순간 긴장하고 모두 고개를 든다.


그러다 고개를 들고 큰소리를 내던 고니가 다른 고니를 위협하거나 공격한다.

그 큰 몸을 날렵하게 다른 개체에 접근해 날개를 물거나 목을 물고 먹이 공간을 지키려는 생존경쟁을 벌인다.
상대방이 도망가면 겁을 주는 한 번의 접전으로 끝나기도 하지만 상대가 덤벼들 때면 쫓고 쫓기면서 몇회전의 접전이 이어진다.

이런 싸움은 하루에도 몇차례나 계속된다.

고니가 고개를 높이 들고 소리를 내며 큰 날개로 물을 치면서 위협을 하고 싸울 때면 경포천은 소란스러운 UFC 팔각 링으로 변한다.
11월 초 5∼7마리에서 시작한 큰고니 무리는 몇 가족이 더 찾아오면서 한때 50여 마리까지 불어났고 먹이터를 놓고 벌어진 치열한 경쟁이 이어지면서 몇 가족은 이곳을 떠나 최근에는 30여 마리까지 줄었다.

많은 고니 가족이 떠나자 먹이 공간은 넓어졌고 그 뒤로 싸움은 크게 줄어들었다.


고니의 싸움은 산책을 하던 사람들에게는 신기한 볼거리다.

경포천 바로 옆에는 넓은 공간의 경포 저류지와 경포호수가 있지만 그곳은 먹이인 줄이나 갈대 등이 없어 고니들은 경포천을 고집하고 있다.

경포천에서도 다른 곳은 물이 거의 없거나 지난여름 하천 정비로 줄과 갈대 등을 모두 갈아엎어 이곳에만 모여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좁은 공간에서 많은 무리가 월동하면서 가족의 생존을 위해 치열한 전쟁을 벌이는 것이다.

이곳 고니들은 다른 무리와 먹이터를 두고 벌이는 작은 전쟁뿐 아니라 삵 등의 기습 공격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다른 무리에 밀려 한적한 곳에서 먹이를 먹던 어린 큰고니가 최근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인 삵의 공격으로 죽음을 면치 못했다.


앞으로 추위가 본격화돼 얼음이 얼면 먹이 공간은 더 좁아진다.

그렇게 되면 치열한 싸움은 더 잦아지고 경쟁에서 진 일부 가족은 또 다른 곳으로 떠날 수밖에 없다.

과거 경포 저류지 주변에 고니의 먹이가 되는 유채를 심자 큰고니 100여 마리가 찾아 월동한 적이 있다.

생태전문가들은 잡초가 우거진 경포 저류지 공간에 유채를 심어 겨울에는 큰고니의 먹이 공간으로 제공하고 봄에는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 되는 방안을 제안한다.

또한 경포천 정비를 하면서 마구잡이 공사보다 고니의 먹이가 되거나 새들의 쉼터가 되는 공간을 살리는 방안도 얘기한다.

큰고니는 강릉의 상징 새이다.

이제라도 더 오래, 더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마련해야 할 때다.


yoo21@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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