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의사가 쓴 마약 분석서 '마약 하는 마음, 마약 파는 사회'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50대인 김영수(가명) 씨는 심한 복통을 겪다 A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급성 췌장염 때문이었다. 췌장의 소화효소가 배 안으로 쏟아지며 장기 일부분을 녹였다. 극심한 고통이 뒤따랐다. 의료진은 마약성 진통제 '페티딘'을 처방했다. 통증이 조절되지 않자 계속 약물을 투입했다. 통증은 조금씩 사라져갔다. 그러나 통증의 파도가 물러간 뒤 새로운 파도가 김씨를 덮쳤다. 쾌감이었다. 김씨는 그 느낌을 잊을 수 없었다. 그는 완치 후에도 병원에 페티딘 처방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양성관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쓴 '마약 하는 마음, 마약 파는 사회'에 나오는 내용이다. 저자는 진료 환자들의 사연, 마약의 유형, 마약에 따른 범죄, 마약의 유통 구조 등 마약과 관련한 종합적인 내용을 책에 담았다. 출판사 히포크라테스는 "국내 의사로는 최초로 펴낸 마약 분석서"라고 책을 소개했다.
책에 따르면 아편·코카인·헤로인 등 불법 마약류를 비롯해 페티딘·졸피뎀·프로포폴 같은 의학용으로 사용되는 마약까지 다양한 종류의 마약이 우리 사회 저변으로 확산하고 있다.
이에 따라 마약 사범 수도 늘어가는 추세다. 19세 이하 마약 사범 수는 2022년 481명으로, 2011년에 견줘 12배 가까이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 마약 사범 수는 1만252명에 달한다. 연말에는 사상 처음으로 2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관측된다.
마약은 애초 통증 완화제로 쓰였다. 19세기 이전에는 모르핀, 아편, 헤로인 등을 의사들이 처방했다. 전쟁에 참전한 군인이나 노동자들의 사기나 근로의욕을 고취하기 위해 메스암페타민(필로폰) 성분의 약이 대량 공급됐다. 코카콜라나 초콜릿 같은 식료품에 첨가되기도 했다. 과학과 마약 성분에 대한 무지 탓에 다수의 마약중독자가 발생했다.
마약중독자들의 말로는 대체로 비참했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1939)에서 도로시 역을 맡았던 주디 갈런드는 어린 시절부터 마약을 복용하다 47세에 비운의 삶을 마감했다. 약물 과다 복용이 사인이었다. 아역 배우 출신인 그는 어린 시절 '암페타민'을 먹어가며 밤새워 촬영했고, 휴식 시간에는 수면제인 '바비튜레이트'를 복용했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였다. 영화사는 강제로 마약성 약물을 그에게 복용시켰다. 바쁜 스케줄을 모두 소화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마약에 중독돼 환각 상태에서 살인까지 저지르는 경우도 있으며 자살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마약중독자 10명 중 4명이 실제 자살을 시도했고, 10명 중 6명은 치밀한 계획을 세운 것으로 나타났다.
마약은 이처럼 자신이나 타인을 헤칠 정도로 중독성이 강하다. 게다가 부가가치마저 높다. 높은 중독성과 부가가치는 마약 생산자와 유통자를 부추기는 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