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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① 조여정 "청룡 여우주연상, 재능 없는 내겐 성실함의 결과…믿음의 벨트 생겼죠"(인터뷰)

이승미 기자

입력 2019-12-08 12:41

수정 2019-12-11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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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조여정 "청룡 여우주연상, 재능 없는 내겐 성실함의 결과…믿음의 벨트…
제40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조여정이 본지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9.12.05/

[스포츠조선 이승미 기자] "어느 순간 연기가 그냥 제가 짝사랑하는 존재라고 받아들이게 됐어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더 열심히 했던 짝사랑. 근데 오늘 이 상을 받았다고 절대 사랑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지금처럼 씩씩하게 열심히 짝사랑 해보겠습니다. I'm deadly serious."



배우 조여정(38)은 줄곧 연기를 사랑했고, 관객들은 그녀의 연기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열매를 맺었다.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트로피가 그녀의 품에 안겼다.

하이틴 스타의 등용문이었던 패션 잡지 '쎄시' 모델과 '뽀뽀뽀'의 최연소 뽀미언니로 활약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기 시작한 이래 꾸준히 TV와 영화를 오가며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쌓아간 조여정. 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 속 러블리하고 통통 튀는 매력부터 '후궁: 제왕의 첩'에서 신분 상승과 욕망을 가지고 변해가는 복잡한 인물의 내면, '인간중독'에서의 유머러스하면서도 권력욕에 가득 찬 인물의 모습까지 캐릭터와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주며 대중에게 깊은 신뢰를 안겨왔다.

그랬던 그가 마침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으로 만개했다. 전 세계 평단 및 관객들에게 극찬을 받으며 칸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기생충'에서 조여정은 상류층 여성을 상징하는 연교 역을 맡아 최고의 연기를 보여줬다. 연교 특유의 순수함을 완벽히 연기하며 관객에게 예상하지 못한 순간 웃음을 안길 뿐만 아니라 스토리 전체에 생동감과 탄력을 불어넣은 조여정에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수상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시상식 이후 스포츠조선 사옥에서 다시 만난 조여정은 드라마 '99억의 여자'의 바쁜 촬영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밝은 웃음과 에너지로 가득했다. "아직도 수상이 실감이 안난다"는 조여정은 "드라마 촬영으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드라마 촬영 중에 수상을 하게 돼 더욱 좋더라. 촬영장에서도 정말 많은 축하를 받아서 더 행복했다. 우리 스태프들도 좋은 기운을 함께 나눠 가진 것 같고 드라마의 주인공이 상을 받아서 더욱 좋은 예감이 든다며 기뻐하더라. 서로서로 더욱 열심히 하게 되더라. 제가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느껴져 기뻤다"며 웃었다.

"저의 수상 덕분에 현장 분위기가 더욱 좋아진 느낌이다. 현장에서 장면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고 있는데 정웅인 오빠가 '감독님, 그렇게 하세요. 여우주연상 배우가 하는 말이 다 맞아요'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런 농담을 주고 받다보니 현장 분위기가 더욱 화기애애해 지더라.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는 오빠가 '조여정씨에게 기생할 거다'라고 말해서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시상식에서 상을 받을 때에도 담담하고 침착하게 받아온 조여정. 하지만 이번 청룡영화상에서는 유난히 뜨거운 눈물을 쉴 새없이 흘렸다. 눈물의 이유에 대해 묻자 조여정은 "그게 바로 청룡영화상이 갖는 무게 인 것 같다. 말로 설명하긴 힘들다. 청룡영화상 수상이란게 배우로서 어떤 목표나 완성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수상하는 순간 마음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고 답했다.

감동의 눈물을 흘리면서도 이번 시상식의 대표 유행어가 되어버린 "'기생충'이 받을 줄 알았는데"를 패러디한 "여주주연상만 '기생충'이 받을 줄 몰랐다"는 멘트부터 영화 속 연교의 대표 명대사인 '아임 데들리 시리어스(I'm deadly serious.)' 언급까지, 재치와 유머까지 보여준 조여정은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기생충이 받을 줄 알았는데' 릴레이를 마무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며 웃었다. "올해 청룡이 가장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바로 그 수상 소감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일단 이 릴레이를 나도 이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마지막에 '데들리 시리어스'라는 유머를 덧붙인 건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그 말을 했다는 것 자체를 돌아가는 차에 타고 나서야 생각났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워낙에 유머를 좋아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재미와 유머가 함께 하는 걸 좋아한다."

주옥 같았던 조여정의 수상 소감 중 시청자의 가장 큰 감동을 자아냈던 건 단연 '짝사랑' 소감이다. 조여정은 수상 소감에서 '연기'를 짝사랑 하는 상대라고 표현하며 "짝사랑이기에 언제든 버림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랑이 이뤄질 수 없으니까 짝사랑을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진심어린 마음을 전해 보는 이들까지 뭉클하게 만들었다. 조여정은 이 수상 소감에 대해 "언제나 늘 생각했던 나의 진심"이라며 '연기에 대한 짝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연기는 내가 유일하게 너무나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이자 유일하게 잘하고 싶은 것인데, 언제나 내 노력에 비해 실력은 더딘 것 만 같고, 또 내 노력만큼 기대가 충족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연기가 마치 나를 바라봐주지 않는 느낌, 나 혼자만 원하고 좋아하는, 마치 짝사랑을 하는 느낌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십대 중반 이후부터는 뭔가 점점 욕심을 내려놓게 됐다. 어차피 짝사랑이라는 걸 인정하는 게, 내 마음이 덜 힘들 것 같았다."

그 짝사랑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절대 놓을 수도 포기할 수도 없었던 조여정. 조여정의 짝사랑을 포기할 수 없게 한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포기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오면, 연기가 꼭 나를 향해 한번 씩 웃어준다. '그래, 니가 항상 여기 있었구나!'라는 듯 한번 씩 웃어주면 놓칠 수가 없다. 힘들 때 마다 그 미소 같은 일들이 생긴다. 나는 여기까지이구나 싶을 때, 내 인내와 노력의 한계를 맞닥뜨리게 됐을 때 꼭 연기로 인해 감동 받고 행복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게 바로 나의 원동력이다. 이번의 이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트로피도 마찬가지다. 나의 짝사랑이 이뤄졌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뤄지지 않아도 괜찮다. 나의 짝사랑은 과정에 있고 완성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더욱 열심히 힘을 내서 할 수가 있다."'기생충'를 향한 뜨거운 사랑. 그리고 여우주연상 수상. 그리고 주연 드라마 '99억의 여자'의 뜨거운 반응부터, 그야말로 2019년은 '조여정의 해'였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도 실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조여정은 "주변에서 그런 말을 많이 해주셨지만, 사실 나는 그런 거창한 타이틀을 잘 느끼지는 못하고 있다. 다만, 그 어느 때보다 가장 열심히 일한 한 해임은 분명한 것 같다"며 웃었다.

"예전에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모두가 나에게 '올해는 당신의 해였어요'라는 말을 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때의 내 자신이 굉장히 멋진 상태일 줄 알았다. 전성기를 맞이했다면, 연기력이나 모든 면에서 내가 조금 더 나은, 훌륭한 사람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미완의 사람이다.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나에게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온 게 아니라 쉽기도 한다. 스스로 내가 충분한 사람인가 되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지금 보다 더 멋있는 사람이 될 거라는 자신도 없다. 다만 이렇게 계속, 지금과 같이 계속 스스로에 만족하지 않으면서 연기를 해나가는 사람이고 싶다."

조여정은 청룡영화상을 비롯해 2019년 이뤄낸 값진 성과들에 만족하는 배우가 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상의 의미는 앞으로도 성실하게 나아가야 한다는 교훈으로 남게 될 것이라며 미소지었다. "내가 많은 재능을 가지지 않은 배우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데 나는 재능이 많지 않다. 다만 몇 가지 되지 않는 재능 중 하나가 바로 성실함이다. 다른 재능은 몰라도, 앞으로도 계속 성실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기생충'은 그 성실함 끝에 만나게 된 축복 같은 작품이다. 그런 '기생충'으로 여우주연상까지 받게 되니 앞으로 더 성실하게 연기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성실함을 의심하지 말고 계속 성실해야겠다. 성실함, 그것이 나의 재능이라 믿게 됐다." 이승미 기자 smlee0326@sportshc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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