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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도 못 찾아"…'선녀들', 독립영웅 최재형의 안타까운 최후…최희서 눈물 [종합]

이우주 기자

입력 2019-11-17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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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도 못 찾아"…'선녀들', 독립영웅 최재형의 안타까운 최후…최희서 …


[스포츠조선닷컴 이우주 기자] '선녀들'이 안중근 의사와 독립운동가 최재형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17일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선을 넘는 녀석들-리턴즈'(이하 '선녀들')에서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우수리스크로 향한 '선녀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를 따라 우수리스크로 가는 열차를 탄 멤버들. 멤버들은 가는 길에 안중근 의사와 관련된 퀴즈를 풀면서 갔다. 안중근 의사의 아명은 '안응칠'이라고. 설민석은 "1879년에 태어나셨다. 태어났는데 몸에 북두칠성 모양의 점이 있으셨다더라. 그래서 '응칠'"이라고 아명의 뜻을 설명했다.

안중근 의사는 학문에는 별 관심이 없으셨다고. 진사였던 아버지를 포함해 가족들이 모두 공부를 잘했지만 안중근 의사는 노는 것을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어머니인 조마리아 여사는 안중근을 단 한 번도 혼내지 않으셨다. 설민석은 "만약 어머니가 공부만 시켰으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그 역사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또한 설민석은 "언제부터 이 사람이 이런 정신을 가졌는지는 모른다. 평범하게 태어나 보통의 아이들처럼 자랐지만 슬픔과 격동의 역사 속에서 영웅의 삶을 살다간 것"이라 밝혔다.

쉬는 시간에도 설민석의 강의는 계속됐다. 그 때 유병재와 김종민은 케이크를 들고 왔다. 녹화일인 10월 10일은 설민석의 호적상 생일이라고. 설민석은 생일 소원으로 "모든 독립운동가 분들의 정신을 담아서 모두가 대동단결하여 승리하는 역사를 썼으면 좋겠다"고 빌었다.

이어 설민석을 위한 팬레터가 왔다. 12살, 7살의 시연·나연 자매가 설민석 덕에 역사에 관심에 가지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어떤 선물보다 감동적인 선물이었다. 설민석의 생일축하 후에는 최희서의 결혼을 축하했다. 최희서는 "동반자와 함께 다시 시베리아 열차를 탔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빈 후 "야. 나 지금 시베리아 횡단하고 있어. 여기서 많은 거 배우고 가고 더욱 더 성공한 모습으로 서울에서 만날게. 꼭 다음에 같이 오자"라고 남편에 애정 어린 영상편지를 보냈다.

멤버들이 도착한 우수리스크에는 최재형 선생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멤버들은 현재 기념관이 된 최재형 선생의 생가에 가기로 했다. 최재형 선생의 고택은 생각보다 소박하고 아담했다. 최재형 선생은 '페치카(난로) 최'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모두에게 따뜻하고 베풀며 살았던 사람이었다. 최재형 선생은 러시아에서 대중목욕탕까지 만들었다고. '페치카 최'라는 별명 다운 업적이었다.

안중근 의사의 거사 뒤에는 최재형 선생이 있었다. 최재형 선생의 딸 최올가 씨에 따르면, 안중근 의사는 최재형 선생의 집에서 생활하며 숙식을 해결하고 사격 연습까지 했다. 안중근 의사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최재형 선생의 가족은 안중근 의사의 가족들을 돌봤다.

기념관에서 일제의 만행을 되돌아보며 분노하던 멤버들. 최재형 선생은 1920년 4월 참변으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러시아와 일본이 연합하며 독립운동가들의 암흑기가 찾아왔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며 러시아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됐고, 1920년 적군이었던 볼셰비키 군이 일본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에 일본은 적군을 지지했던 독립운동가를 학살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보복이 두려웠던 가족들은 최재형 선생에 도피를 권유했지만, 최재형 선생은 가족을 두고 갈 수 없었고, 결국 4월 5일 최재형 선생은 일본군에 체포됐다. 최재형 선생은 모진 고문을 당하고, 재판 없이 총살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유해를 찾을 수 없게 봉토 없이 일부러 평평하게 묻었다고. 가족들이 유해를 돌려달라 했지만 일본은 갖가지 이유를 대며 이를 거절했다.

이후 멤버들은 최재형 선생이 순국했을 것이라 추정되는 장소로 갔다. 그러나 그 장소는 황량한 흙바닥일 뿐이었다. 아무 것도 없는 길거리가 순국 추정 장소라는 사실에 멤버들은 모두 충격을 받았다. 설민석은 "가슴 속에 선생님의 생애를 고이고이 묻어두는 것이 소중하지 않을까"라고 당부했다.

wjle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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