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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영화제①] 김민희, 기적을 만든 '은막의 신데렐라'

박영웅 기자

입력 2017-02-19 14:07

수정 2017-02-19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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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희, 기적을 만든 '은막의 신데렐라'


[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배우 김민희(35)가 데뷔 18년 만에 전 세계로부터 인정받는 은막의 신데렐라로 거듭났다.



지난 18일(현지시각) 열린 제67회 베를린영화제 폐막식에서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홍상수 감독, 영화제작전원사 제작)의 여주인공 김민희가 은곰상(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국내 배우로서는 베를린영화제에서 주연상을 수상한 첫 번째 사례다. 앞서 1987년 베니스영화제에서 '씨받이'(임권택 감독)의 강수연이, 2007년 칸국제영화제에서 '밀양'(이창동 감독)의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으로 수상한바, 김민희가 두 사람의 뒤를 이어 세계 3대 영화제가 선택한 '퀸'으로 거듭났다.

충무로의 쾌거, 아시아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김민희. 무엇보다 이번 김민희의 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은 그의 연기사(史)를 곱씹어 봤을 때, 기적 그 이상의 감동을 선사해 눈길을 끈다.

몽환적인 페이스와 늘씬한 몸매로 고교 시절 길거리 캐스팅된 김민희는 패션지 모델로 연예계에 입성, 당시 신민아, 김효진과 함께 모델 트로이카로 주목받았다. 이후 김민희는 1999년 KBS2 청소년 드라마 '학교2'로 연기 첫발을 디디며 배우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날카로운 눈매, 하얀 피부를 가진 그는 '학교2'의 반항아 신혜원으로 완벽한 싱크로율을 이루며 존재감을 드러냈고 곧바로 '라이징 스타'로 시청자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영화 '순애보'(00, 이재용 감독)를 통해 스크린에 진출, 안방극장과 스크린을 오가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

전형적인 서구형 미인들이 가득했던 2000년대, 동양적인 매력을 갖춘 김민희의 등장은 신선했고 새로웠다. 게다가 10대, 20대 여성들이 열광할 타고난 패션 감각까지 갖춘 그는 그야말로 '여성들의 워너비'였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연기 기본기가 없었던 그는 매 작품 국어책을 낭독하는 듯한 발성과 어색한 액팅으로 연기력 논란을 일으켰다. '발연기' 꼬리표는 김민희의 대표적인 흑역사였고 이런 김민희를 두고 대중은 포토월에서만 빛날 '패셔니스타'로 여겼다.

하지만 이런 김민희가 180도 달라졌다. 알게 모르게 연기에 목말랐던 김민희는 2006년 방송된 KBS2 드라마 '굿바이 솔로'를 통해 노희경 작가라는 인생 스승을 만나게 됐고 놀라울 정도로 성장했다. 잠들었던 김민희의 연기혼이 싹을 틔운 순간이었다. 그의 성장세는 무서울 정도로 빠르고 뜨겁게 타올랐다.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08, 권칠인 감독) '여배우들'(09, 이재용 감독) '모비딕'(11, 박인제 감독)으로 알을 깬 김민희의 연기는 나날이 진화했다.

그리고 '화차'(12, 변영주 감독)에서 배우 김민희의 배우 인생 2막이 열렸다. 서슬 퍼런 광기의 차경선을 연기한 김민희는 '발연기' 오명을 깨끗이 씻어낼 열연을 펼쳐 관객을 놀라게 만들었다. 김민희 인생 최고의 연기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화차' 이후 김민희는 '연애의 온도'(13, 노덕 감독)로 리얼한 현실 연기를 소화했고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연기력은 실패하지 않은 '우는 남자'(14, 이정범 감독)로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쌓더니 마침내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15)로 홍상수 감독과 인연을 맺게 됐다. 바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 '불륜설'의 시작이었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를 통해 홍상수 감독의 뮤즈가 된 김민희. 당시 김민희는 홍상수 감독과 그 작품에 대해 "홍 감독은 내 모습을 너무 잘, 많이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장면이나 대사 등 내 모습이 많이 담겨 있어 신기했다. 홍 감독은 늘 기적을 믿고 영화를 찍는다고 말하더라. 막연하게 기적이란 게 뭘까 궁금했는데 이 작품을 통해 기적이란 걸 느꼈다. 놀라운 경험이었다"며 감탄했다. 김민희에게 홍상수 감독은 기적이자 선물이었던 것.

김민희의 행보는 홍상수 감독을 만나면서 또 한 번 변했다. 비단 홍상수 감독만의 뮤즈가 아니었다. 충무로 모든 감독의 뮤즈가 된 김민희는 '깐느박'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16)에서 또 한 번 파격 변신을 시도했다.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된 귀족 아가씨 히데코를 맡은 김민희. 특유의 몽환적인 이미지로 미스터리한 히데코의 매력을 배가시키는 것은 물론 하녀 숙희(김태리)와의 농밀한 감정 연기를 소화했다. '아가씨'는 그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으로 초청, 전 세계 씨네필에게 배우 김민희의 이름을 알렸고 '제37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최고의 배우로 거듭났다.

충무로를 넘어 전 세계로부터 주목받는 배우로 떠오른 김민희. '아가씨' 개봉 후 홍상수 감독과 '불륜설'이란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았지만 걷잡을 수 없이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막을 수 없었다. '아가씨' 이후 자취를 감춘 김민희는 다시 홍상수 감독의 손을 잡고 관객을 찾았다. 홍상수 감독의 19번째 장편 상업영화인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1년 만에 컴백한 것. 내용 역시 김민희처럼 발칙하다. 유부남 영화감독 상원(문성근)과 사랑에 빠진 여배우 영희(김민희)가 사랑과 갈등을 겪으면서 그 본질에 대해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작품. 마치 지금 김민희가 처한 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한 듯한 작품이다.

자전적 이야기였던 탓인지 김민희는 연기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영희의 감정을 오롯이 스크린에 녹여냈다. 그 어떤 곳에서도 틈이 보이지 않았고 군더더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김민희가 곧 영희였고 영희가 곧 김민희였다. 베를린영화제는 이런 김민희에게 환희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그의 두 손에 반짝이는 은곰상을 안겼다. 이로써 김민희는 홍상수라는 독이 든 성배로 기적을 만든 '은막의 신데렐라'가 됐다.

soulhn1220@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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