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뉴스

[SC초점] '본분금메달', 걸그룹 몸무게 공개처형 꼭 필요했나

백지은 기자

입력 2016-02-11 09:35

more
 '본분금메달', 걸그룹 몸무게 공개처형 꼭 필요했나


[스포츠조선 백지은 기자] 불편하다.



10일 KBS2 설 파일럿 '본분금메달'이 베일을 벗었다. '본분금메달'은 상식 섹시 개인기 집중력 테스트를 통해 걸그룹의 반전 속내를 확인한다는 내용의 프로그램. 김구라 전현무 김준현이 MC를 맡았고 EXID 하니 솔지, AOA 지민, 애프터스쿨 리지, 여자친구 유주, 트와이스 다현 정연, 피에스타 차오루, 나인뮤지스 경리, 헬로비너스 나라, 베스티 혜연, 엔씨아, 박보람, 카라 출신 허영지가 출연했다. 방송이 끝난 뒤 이 프로그램을 향한 반응은 극과 극으로 갈렸다. 신선한 병맛 포맷에 환호를 보내는 쪽도 있다. 물론 일부에서는 이와 같은 부조리 앞에서도 웃어야 하는 걸그룹의 모습을 보여주며 대한민국 갑과 을의 관계를 풍자한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또 누가 봐도 불쾌한 상황에서 걸그룹의 진짜 인성을 보여주는 반전쇼라는 얘기도 있다. 실제로 최종 우승을 차지한 지민은 본인이 그토록 싫어하는 '사무엘 잭슨 닮은꼴' 놀림에도 꿋꿋이 웃음으로 대처했다. '보살 지민'이라는 찬사까지 받으며 훌륭한 인성을 보여줬다. 이와 같이 화려한 모습 뒤에 숨겨졌던 걸그룹의 바른 품성을 꺼내는 반전쇼라는 얘기다.

그러나 대부분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이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 자체에 의구심이 생긴다. '본분금메달'은 한마디로 극한 상황에서 걸그룹 멤버들이 '본분'을 지키고 있는지 확인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서 말하는 걸그룹의 '본분'이라는 것이 애매하다. '본분금메달'에서 제시한 걸그룹의 본분은 4가지다.

첫번째는 미모 유지. 어떤 상황에서도 비주얼을 유지해야 한다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상식테스트를 하던 중 바퀴벌레 모형을 던지고 출연진이 깜짝 놀라는 모습을 클로즈업해 슬로우 플레이 한다. 두번째는 정직성. 영하 13도의 추운 날씨에 밖에서 섹시 댄스를 추게 해놓고는 사실 무대를 체중계로 만들어 프로필 몸무게와 실제 몸무게를 비교하는 것으로 정직성을 체크했다. 세 번째는 리액션. 아이돌은 잘 웃고 좋은 리액션을 보여줘야 한다며 개인기를 하는 동안 다른 출연진이 어떤 리액션을 하는지를 비췄다. 마지막은 분노 조절 테스트. 집중력 테스트를 가장해 캔을 쌓도록 한뒤 이를 방해하며 분노 정도를 테스트한 했다.

사실 어떤 누구도 걸그룹에게 '이것이 너희들의 본분'이라며 잣대를 들이댈 권리는 없다. 따지고 보면 걸그룹의 진짜 본분은 노래 잘하고 춤 잘추는 것이다. 그러나 다큐가 아닌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프로그램을 본다고 해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리액션과 분노 조절은 방송인에게는 필수 요소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미모 유지와 정직성 테스트는 황당하다. 바퀴벌레 모형을 집어던지고도 미모를 유지하라며 카메라를 들이대는 모습은 아이러니 그 자체다. 더욱 불쾌한 것은 몸무게 공개 처형이다. 사실 프로필 몸무게는 아이돌 개인이 작성한 것도 아니고, 때와 상황에 따라 변동이 생길 수 있는 요소다. 그런데 몸무게 공개 처형이 어떻게 정직성을 테스트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더욱이 걸그룹은 방송인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그런데 개인의 동의도 없이 만천하에 몸무게를 공개한다는 것은 사생활 침해 수준이다. 혐오 물체를 들이대고 사전 예고도 없이 몸무게를 공개해도 웃으며 넘기는 걸그룹의 모습은 안쓰러울 뿐이었다. 걸그룹을 사람이 아닌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하며 이들의 인간 존엄성을 침해하는 일본 예능 프로그램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방송이었다.

과연 이번 방송이 수신료의 가치를 생각하겠다는 공영방송에서 내보낼 만한 프로그램이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필요가 있다.

silk781220@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