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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피플] 섬유채색화 명장 박송자 화백, "유구한 전통을 실생활에 더 접목해 나가겠다"

김형중 기자

입력 2015-07-26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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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유채색화 명장 박송자 화백, "유구한 전통을 실생활에 더 접목해 나가…
◇박송자 화백이 원주에 있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박 화백은 "섬유채색화의 유구한 전통을 되살려 나가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땀 한땀 수 놓듯 정성을 다해 붓질을 한다. 그런데 화선지가 아니라 실크에 그려 넣는다. 실크 위에서 새 생명을 얻은 연꽃은 봄바람에 흔들리는 처녀 마냥 새초롬하다. 윤기 흐르는 실크와 어우러져 요염한 자태를 뽐낸다.



박송자 화백(72)은 이렇게 반평생을 천에 그림을 그려왔다. 요즘 널리 쓰이고 있는 '섬유채색화'라는 용어를 만든 이도 바로 그다. 실크를 비롯해 면, 마, 무명, 삼베, 모시 등 온갖 천이 그의 손길을 타고 예술이 되었다.

"섬유채색화의 전통은 유구합니다. 조선시대 김홍도 신윤복이 기녀의 옷자락에 그림을 많이 그렸잖아요. 신사임당 역시 무명과 삼베에 꽃과 과일을 많이 그렸습니다."

박 화백은 '늦깎이' 화가다. 결혼 후인 30대 초반, 남편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미대에 다시 입학해 한국화를 시작했다. 마흔 무렵인 1980년대 초반 강원도 원주에 터를 잡은 뒤, 1990년부터 본격적으로 섬유채색화 작업에 몰두했다. 박 화백이 섬유채색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한국화를 왜 꼭 화선지에만 그려야 할까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과거 많은 분들이 삼베, 모시에 그림을 그린 게 생각났어요. 아, 이거구나, 실생활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에 그림을 그린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미술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지요."

박 화백 이전에도 사실 많은 화가들이 천에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섬유채색화가 미술의 한 장르로 정립되지는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기존 물감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빨면 색이 빠져 버렸다. 박 화백은 여기에 주목했다. 기존 물감이 아니라 섬유 물감, 즉 염료를 택했다. 색이 바랠 일이 없어졌다. "섬유 물감은 금방 굳기 때문에 조금씩 짜서 써야해요. 굉장히 비싸기도 하고요(웃음)."

박 화백의 작업은 굉장히 실용적이다. 손수건부터 시작해 넥타이, 방석, 스카프, 가리개, 커튼, 테이블보, 병풍, 한복 등 털과 나일론 종류만 빼고 천으로 되어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예술작품이 된다. 말 그대로 생활에 예술을 접목한다.

처음엔 시행착오가 많았다. 색을 내는 법이 화선지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정확한 농도를 찾기 위해 수 백 필의 천을 버렸다. 하지만 그러한 시련이 있었기에 지금의 섬유채색화가 가능했다.

"섬유채색화의 매력은 섬유의 질감을 그대로 살린다는 데 있어요. 실크처럼 엷은 것은 엷은 대로, 무명이나 삼베처럼 두꺼운 것은 두꺼운 대로 그 질감을 살리는 거죠." 실크에는 묽게, 무명이나 삼베에는 진하게 물감을 쓴다. 실크에는 연꽃과 모란 같은 꽃을 많이 그려넣고, 삼베나 무명에는 산수화와 풍속도, 인물화 등 투박한 것을 투영한다. 종이와 다른, 우아하고 기품있는 섬유채색만의 멋이 우러난다.

박 화백이 주로 원주에서 활동한 까닭에 섬유채색화는 전국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2011년 한국전통문화예술진흥협회에서 정식으로 섬유채색 분과가 생겼고, 2013년 국전에 섬유채색화 부문이 신설되면서 이제 원주를 벗어나 열기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박 화백과 그가 양성한 제자들이 꾸준히 활동을 펼쳐온 덕분이다.

"섬유채색화의 도록, 교과서를 집필해서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후학 양성에도 힘을 더 써서 섬유채색화의 전통을 살려나가고 싶습니다."

박화백은 2012년 전통문화예술진흥협회 선정 대한민국전통명장이 되었다. 늦깎이로 시작했지만 하나의 장르를 개척해가고 있는 명장, 박송자 화백이다.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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