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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게 불태운' KB, 패배는 성장의 에너지다

이원만 기자

입력 2018-03-22 10:04

수정 2018-03-22 14:57

'하얗게 불태운' KB, 패배는 성장의 에너지다
◇KB스타즈 토종 센터 박지수(가운데)가 21일 청주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우리은행과의 2017~2018 신한은행 여자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 득점에 성공한 후 외국인 선수 커리와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WKBL

"하얗게 불태웠어…."



복싱을 주제로 한 일본 만화 '내일의 조'에 나오는 명대사다. 주인공은 막강한 최종 상대를 만나 자신의 모든 것을 남김 없이 불사르며 일전을 펼치고는 이렇게 뇌까렸다. 링 위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낸 후 마치 하얀 재처럼 주저앉아있는 주인공의 모습은 열정의 끝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지난 21일 밤 여자프로농구 청주 KB스타즈 선수들의 모습이 마치 이와 같았다. KB는 이날 홈구장인 청주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신한은행 2017~2018 여자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5전3선승제) 3차전에서 말 그대로 사력을 다해 뛰었다. 홈팬들의 뜨거운 응원을 에너지 삼아 지칠대로 지친 몸을 내던졌다.

그러나 결과는 패배였다. 체력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57대75로 졌다. 이로써 KB는 이번 챔프전에서 3연패를 당하며, 안방에서 우리은행의 6년 연속 통합우승을 바라봐야 했다. 경기를 마친 안덕수 감독과 선수들은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경기 중에는 몰랐던 극도의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온 듯 했다. 이날 KB 선수들은 정말 '하얗게 불태웠'다.

사실 KB가 베스트 컨디션으로 우리은행과 만났다면 이렇게 일방적인 3연패 셧아웃은 당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시즌 초반부터 강력한 우리은행의 대항마로 떠오른 KB는 정규리그 막판까지 우리은행과 치열한 1위 다툼을 벌였다. 지난 시즌에 비해 한층 진화한 전력으로 무장한 덕분이었다. 특히 우리은행에 대해서는 막판 5, 6라운드에서 연승을 거두며 자신감을 갖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정규리그 우승을 놓치면서 험난한 일정이 펼쳐지고 말았다. 플레이오프에서도 인천 신한은행과 혈전을 펼치는 바람에 체력이 거의 바닥을 쳤다. KB는 지난 11일 플레이오프 1차전부터 이날 챔피언결정전 3차전까지, 10일간 무려 6경기를 치르는 강행군을 했다. 당연히 선수들이 지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KB 선수들은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을 다하며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켰다. 적장인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이 "솔직히 (KB 선수들이) 제대로 못 뛸 줄 알았는데, 정말 존경스러울 정도로 열심히 뛰었다"며 경의를 표할 정도였다. 비록 졌지만, KB는 패자의 품격을 지켜낸 것이다.

지난 시즌 KB는 리그 3위를 차지했다. 이번 시즌에는 2위로 올라 챔프전까지 경험했다. 안 감독은 부임 2년간 꾸준히 성장세를 이룩했다. 또한 '국보센터' 박지수 역시 프로 2년차인 이번 시즌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희망적인 건 이런 성장세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안 감독은 "지난해에 비해 올해 팀이 좀 더 나아진 점에 의미를 두고 싶다. 그리고 이 흐름이 다음 시즌에도 계속 이어져 더 좋은 결과를 내길 기대한다"면서 "박지수도 큰 선수가 됐는데,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있다"고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했다.

우리은행의 독주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대항마는 다음 시즌에도 KB가 될 듯 하다. 과연 KB 선수들은 이번 챔프전 패배의 아픈 기억을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을까.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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