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 인터뷰] 오타니 스위퍼 보면서 내 슬라이더 통했을까 궁금…이정후 항상 마음으로 응원해 왔고, 오지환 잘해 기분 좋아

민창기 기자

입력 2024-01-15 10:29

수정 2024-01-19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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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 전 대표팀 감독. 스포츠조선 DB

한화 이글스 출신 좌완 투수 류현진(37)은 메이저리그에서 '78승'을 기록 중이고, 키움 히어로즈에서 성장한 외야수 이정후(26)는 6년 1억1300만달러(약 1486억원)를 받는 조건으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었다. 한국프로야구에서 최고가 되면 '탈 KBO리그'를 노려볼 수 있는 시대다. 야구 한류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선구자'가 있다. 울타리에 갇혀 한 발자국도 못 나가던 시절에 선동열 전 국가대표팀 감독(61)은 꿈을 불어넣었다.



비교대상이 없는 독보적인 투수 선동열은 1996년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해 최고 마무리로 활약했다. 1997년 '38세이브'를 올려 센트럴리그 구원왕이 됐다. 4년간 98세이브(10승4패·평균자책점 2.70)를 기록하며 한국야구를 빛냈다.

1990년 3월 21일, 스포츠조선 창간호 1면 주인공은 선동열이었다. '선동열 일본프로팀 간다'를 큰 제목으로 달았다. 일본 진출이 실현되기까지 6년을 기다려야 했지만, 스포츠조선은 국보(國寶)의 해외리그 도전을 예상하고 응원했다. 그 후로 34년이 흘렀다.

선 전 감독은 "'국보'라고 불러주셔서 영광이었고 감사했지만 부담이 컸다. 남들에 비해 실패보다 성공이 더 커 보일 뿐이지 '국보'라고 불릴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국보'라면 쭉 성공해야 하는데 일본에서 실패도 했다"라고 했다. 또 "그동안 과분한 사랑에 맞게 상대를 배려하려고 노력했다"라고 했다.

▶가슴을 뛰게 한 1990년 그해 봄

1985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한 프로 6년차. 선 전 감독은 "대학생 때부터 해외 진출 꿈을 갖고 있었다. LA올림픽, 세계청소년대회 등 국제대회에 출전하면서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다. 프로에 들어와서 꿈이 무산됐다. 당시엔 FA(자유계약선수) 제도가 없어 은퇴하지 않는 한 팀을 떠날 수 없었다"라고 했다.

우물을 떠나 더 넓은 세상으로 가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다. 그때 스포츠조선이 일본행 가능성을 알리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그는 "프로 초기에 우리 야구가 일본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일본 야구를 보면서 많이 배웠고 교류가 활발했다. 일본으로 전지훈련을 가면 관심을 보인 일본 야구인들이 있었다. 또 일본인 코치, 인스트럭터, 재일교포 야구인들이 우리 선수들을 지도했는데, 이런 분들을 통해 일본에 알려져 일본 진출 얘기가 나온 것 같다"라고 했다.

1991년 한일 슈퍼게임이 시작되고 일본을 상대하면서 충분히 통한다는 자신감이 생겼을 것이다.

"스포츠조선 1면을 보고 앞으로 일본에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던졌더라면

최고 투수 선동열이 20대 전성기에 메이저리그로 갔다면 어느 정도 성적을 거뒀을까.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 본 생각일 것이다. 선 전 감독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글쎄…. 미국으로 건너가 한 번 뛰어보고 싶은 꿈이 있었다. 내 공이 메이저리그에서 통할까, 선발로 던졌다면 두 자릿수 승을 올릴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아쉬움을 살짝 드러냈다. 그는 "오타니 쇼헤이(30·LA 다저스)가 스위퍼를 승부구로 사용해 잘하고 있는데, 결국 슬라이더에 가까운 구종이다. 나도 그런 계통의 공을 던졌으니까 통하지 않았을까. 물론 좋은 쪽으로 생각했을 때 그렇다는 얘기다"라고 했다.

이어 "내 구종이 단조로운 면이 있다. 불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에 갔다면 여러 가지 구종을 던졌을 것이다"라고 했다.

가보지 못한 길이 아쉽다.

선수로, 프로팀 감독으로, 대표팀 사령탑으로 한국야구의 최전선을 지켰다. 그는 류현진 김하성 등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후배들을 보면 뿌듯하고 대견하다고 했다.

"이정후도 참 대단하다. 아버지 이종범 코치가 좋은 어드바이스를 많이 해줄 것이다. 마음 속으로 항상 잘 되기를 응원하고 있다."

▶오지환이 잘하고 있어 기분 좋다

대표팀을 지휘했던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고도 곤욕을 치르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일부에서 성과를 폄훼했다. 성적이 안 좋은 선수를 뽑아 병역혜택을 줬다는 비난도 있었다.

국회 청문회에 불려 나간 선 전 감독은 결국 대표팀 감독직을 내려놨다. 그때의 굴욕감을 잊지 못할 것이다.

당시 병역특혜 논란에 있던 선수 중 한 명이 오지환(34·LG 트윈스)이다.

선 전 감독은 "오지환이 2018년 초반, 1차 엔트리를 발표할 때까지 성적이 좋았다. 대회가 8월 말에 시작됐는데, 6월부터 성적이 급락했다. 만약 7~8월에 최종 엔트리를 정했다면 오지환을 안 뽑았을 수도 있다. 다만 대회가 시즌 중간에, 한여름에 열려, 선수 체력을 고려해야 했다. 젊은 선수, 힘 있는 선수를 뽑자는 의견이 있었다"라고 했다.

6년 전 28세 유격수 오지환은 리그 최고 선수 반열에 올랐다. 지난해 소속팀을 29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고 MVP를 탔다.

"오지환이 잘 돼 기분 좋다."

▶벌어진 한일 격차 줄일 수 있나

최근 한국야구는 각종 국제대회에서 고전했다. 이전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걸 확인하고 자성의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3월에 열린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선 졸전 끝에 또 예선 탈락해 충격이 컸다. 1~2회 대회 때 대등하게 맞섰던 일본은 압도적인 전력으로 14년 만에 우승했다. 한일간의 격차가 더 크게 벌어졌다.

선 전 감독은 학교 체육 정책의 변화가 엘리트 스포츠 약화로 이어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10년이 조금 넘은 것 같은데 학생 선수도 공부하는 쪽으로 정책이 바뀌면서 기본기가 약해졌다. 공부는 해야 하지만 학교에서 운동하는 절대 시간이 줄어 기술 훈련에 치중한다. 유소년 시기에 기본기 훈련을 소홀히 하면 좋은 선수가 나오기 어렵다. 요즘엔 프로에서 기본기 훈련을 시키는 일까지 있다. 엘리트 스포츠가 약해져 일본과 격차가 벌어졌다"라고 설명했다.

일본 구단엔 에이스급은 물론 10명 정도가 시속 150, 155km대 빠른 공을 던진다. 이런 투수들을 상대하는 타자들의 경쟁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반면, 국내에는 150km 이상을 던지는 투수가 팀당 1~2명 정도에 불과하다. 국제대회에서 우리 타자들이 상대 투수가 던지는 강속구에 적응하기 어렵다.

향후 국제대회 단기전에서 일본에 고전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일본 투수들은 투구시 골반에서 나오는 유연성이 놀라울 정도로 좋다. 유연성 강화 훈련을 잘 한 덕분이다. 또 체격이 크지 아닌데도 공의 수직 무브먼트가 좋다. 투구 때 지면에서 낮게 중심 이동을 하면서 오래 공을 끌고 간다. 시속 150km 공이 160km 가까운 느낌을 주는 이유다."

▶잊을 수 없는 세 장면

그에게 인생 경기를 꼽아달라고 했더니 세 장면을 이야기했다.

먼저 감독 데뷔 첫해 우승한 2005년 삼성 라이온즈. 42세 초보 사령탑 선동열은 노련했다. 팀을 정규시즌 1위로 이끌고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했다. 한국시리즈에서 두산 베어스에 4전 전승을 거두는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줬다. 스타 선수는 명장이 되기 어렵다는 편견을 깨트렸다.

1985년 7월 2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삼성전이 두 번째 경기다.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해 우여곡절 끝에 등판한 첫 경기다. 선 전 감독은 "1985년 후반기 첫 경기였고, 상대 선발 투수가 김일융 선배였다"라고 했다.

이 경기에서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7회까지 무실점 호투를 하다가 8회 5실점했다. 박승호에게 백스크린을 때리는 1점 홈런을 맞았다. 7⅔이닝 5실점하고 교체됐다.

세 번째 경기는 1999년 9월 30일 도쿄 진구구장에서 열린 야쿠르트 스왈로즈전. 9회말 2사후 5-4 리드 상황에서 등판해 두 타자를 안타, 볼넷으로 내보냈다. 2사 1,2루 위기에서 상대 주포 로베르토 페타지니를 2루수 뜬공으로 처리해 주니치의 우승을 확정했다. 페타지니는 그해 44홈런을 친 홈런왕이었다. 선 전 감독은 1999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하고 우승 헹가래를 받았다. 잊지 못할 경기다."

▶후회한 결정도, 성공도 실패도 해봤다

최고 투수 선동열에게 까다로운 타자가 있었다. 콘택트가 좋은 타자, 스윙이 간결한 타자를 상대할 때 천하의 선동열도 힘든 승부를 했다. "짧게 치는 이정훈, 강기웅 같은 타자가 어려웠다. 스윙이 큰 홈런타자는 상대적으로 편했다"라고 했다.

그에게 '요즘 타자 중에서 가장 까다로운 타자를 꼽아달라'라고 했다. 그는 "짧게 노려 치는 타자는 다 어렵다"라며 끝까지 선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선 전 감독은 "선배, 지도자로서 후배, 선수들을 섭섭하게 한 게 한두 번이었겠나.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차이가 있다. 오해를 산 일도 있었고 오해를 푼 것도 있다"라고 했다.

그는 2017년 스포츠조선과 인터뷰에서 삼성, KIA 감독 재임 때 유니폼을 벗은 양준혁, 이종범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구단이 세대교체를 명분으로 두 선수의 은퇴를 밀어붙였다. 현장 최고 책임자로서 악역을 맡아야 했다.

"후회한 결정도 있었고, 실패도 했고, 성공도 했다. 성공한 기억이 더 많다. 현장에 있을 때 못한 것들을 하고 있다. 가족 지인을 만나는 게 나쁘지 않다."

조만간 한국야구가 그를 부를 것 같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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