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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생 라켓소년'유수영의 상처투성이 손바닥 "청소년AG金 목표!"[진심인터뷰]

전영지 기자

입력 2021-11-22 17:10

수정 2021-11-23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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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생 라켓소년'유수영의 상처투성이 손바닥 "청소년AG金 목표!"
지난 국가대표선발전 중 혹독한 훈련과 잇단 경기로 상처투성이가 된 오른손. 유수영은 국가대표상비군은 '가짜 국가대표'라며 레전드 삼촌들을 이기고 '찐'국가대표가 될 때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배우 지현우를 닮았다"는 말에 "그런 말 좀 들었어요"라며 대수롭잖게 받아넘긴다. "2002년생이네요" 하자 "네! '한일월드컵 베이비'죠"라고 받아쳤다. 첫눈에 당차고 대찼다.



시드니패럴림픽 사격 금메달리스트, 이천선수촌장 출신의 정진완 대한장애인체육회장은 도쿄패럴림픽 후 장애인체육의 미래를 물을 때마다 "휠체어배드민턴(WH2)에 유수영이라는 10대 유망주가 있는데…"라고 자신있게 소개했었다. 회장님이 '강추'하시더라는 말에도 소년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네, 그러셨을 거예요. 아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죠." 또 싱긋 웃는다. 22일 경기도 이천선수촌에서 열린 바레인장애청소년아시안게임 결단식 현장에서 '대한민국 장애인체육의 미래' 유수영(19)을 만났다.

▶"휠체어배드민턴은 나의 운명"

유수영에게 4년 전 장애청소년아시안게임은 '첫 기억'이다. 2017년 휠체어배드민턴 라켓을 잡기가 무섭게 휠체어 조작도 익숙치 않은 상황에서 두바이청소년아시안게임에 나섰다.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탔는데 그때부터 환상이 깨졌어요. 8시간 이코노미 힘들더라고요." 힘들게 도착한 두바이에서 세계랭킹 1위, 7위 중국 에이스들이 포진한 '죽음의 조'를 맞닥뜨렸다. 1회전 통과도 못하고 짐을 싸야 했다. "평생할 긴장 거기서 다 한 것 같아요. 중3에게 아시안게임이라니… 휠체어도 잘 못타는데 미션 임파서블이었죠." 쓰라린 패배가 동기부여가 됐느냐는 뻔한 질문에 유수영은 고개를 저었다. "진 것보단 그때 심재열 감독님이 해주신 인생 이야기가 큰 동기부여가 됐어요. 실업팀 이적하시고 어깨부상으로 은퇴하시고 힘든 일이 많으셨는데 전임지도자가 되셨죠. 좋아하는 걸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면 저렇게 되는구나 배웠죠."

소년은 인터뷰 내내 거침없이 분위기를 주도했다. 4년전 당시 정진완 촌장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목표가 뭐냐는 질문에 "세계랭킹 1위"라고 했다니 말 다했다. 선천성 하지기형 장애를 타고난 그는 어릴 때부터 친구들과 운동을 즐겼다. "제가 나고 자란 곳은 전북 김제의 청하면이에요. 청하가 '푸른 새우'란 뜻이라는데 동네이름이 새우라니 재미있지 않아요?" 한다. "아이들과 목발 짚고 축구하고 시골이라 그런지 장애인이라 안놀아주고 그런 거 없었어요." 유수영은 김제중에 진학한 후엔 배드민턴의 매력에 푹 빠졌다. "친한 친구가 배드민턴을 쳐서 따라쳤는데, 제가 재능이 특출나더라고요. 체육선생님이 방과후 레슨을 해주셨는데, 비장애인들도 다 이겼죠. 완전 1티어였어요"라며 활짝 웃었다. 한발로 비장애인들을 다 이기는, 비범한 라켓소년을 눈여겨본 특수교사의 추천으로 대한장애인체육회 기초종목 육성 프로그램을 이수하게 됐고, 정진완 촌장의 눈에 띈 유수영은 청소년 국가대표로 아시안게임에 나가게 됐고, 태극마크를 달고 이천선수촌에 입촌했다. 유수영은 "드라마 같은 이야기죠"라며 웃었다. "선생님, 회장님, 감독님… 사람과 사람의 연결을 통해 운명처럼 여기까지 왔어요. 저도 나중에 감독이 되고 싶어요. 누군가의 꿈을 연결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두 번째 도전, 목표는 무조건 금메달!"

유수영은 자칭 '지고는 못산다는 승부욕'의 화신이다. 열아홉 나이에 두 번째 출전하는 청소년아시안게임 목표를 묻는 질문에 1초만에 "금메달!"을 외쳤다. "호랑이를 그린다 생각해야 고양이라도 그리죠. 겸손한 척할 필요 없어요. 이기고 싶으면 그렇다고 말하면 되죠. 누구나 1등하려고 운동하는 거 아니에요?"

이번 대회엔 도쿄패럴림픽 결승서 '세계랭킹 1위' 선배 김정준(43·울산중구청)을 이긴 '일본 신성' 가지와라 다이키(20)도 출전한다. 유수영은 도쿄패럴림픽 전경기를 본방사수했다. "결승전 보면서 정준삼촌 진짜 원망했어요. 삼촌이 금메달을 따셔야 저같은 후배들 어깨가 가벼운데… 일본선수니까 확실히 홈 이점이 컸어요"라며 웃었다. 유수영은 바레인에서 가지와라와의 진검승부, 복수혈전을 기대했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눈을 빛냈다. "전 휠체어속도는 정준삼촌도 이길 자신 있어요. 보완할 점은 실수를 줄여야 하고요. 결국 마지막은 지구력, 체력싸움이에요. 제가 가지와라보다 '한 살이나' 어리잖아요. 1년치의 체력을 더 보여드릴게요." 이날을 위해 지난 4년간 오른손 손바닥이 다 까지도록 훈련에 몰입해왔다. "저, 4년간 이를 갈았어요. 2017년 첫 대회와는 분명 다를 거예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유수영은 이후 무시무시한 로드맵도 내놨다. "올해 12월 국가대표선발전에선 (김)경훈삼촌을 이기고 내년엔 (김)정준삼촌을 이기는 게 목표예요. 젊은 피가 원래 무서운 거죠"라며 패기만만 도전장을 내밀었다. "오래 잘하는 선수,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되는 게 목표예요. 2024년 파리패럴림픽뿐 아니라 2028년 LA까지 바라보고 있어요"라며 활짝 웃었다.

거침없이 당당한 청춘의 취미는 뜻밖에 그림 그리기와 시집 읽기다. 장르가 모호하다는 학원물 비슷한 애니메이션 '스캣'과 안상현의 시집 '달의 위로'를 추천했다. 한때 게임 '오버워치'에 빠져 상위 0.1%에 들었다는 소년은 최근엔 그림을 그리기 위해 큰맘 먹고 갤럭시탭도 구입했다. "저는 운동도 취미도 한번 꽂히면 끝을 보는 성격이에요." 솔직화통, 다재다능한 'MZ세대' 라켓소년의 끝간데 없는 당돌함이 어쩐지 믿음직했다. 이천장애인국가대표선수촌=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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